[당신과 나의 마음] 여름을 무사히 보내는 방법

▲ 여름이 유난히 길게 느껴질수록 너무 완벽한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보내는 것이 좋다.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여름이었다."(문장의 마지막에 "여름이었다."를 붙임으로써 과장된 서사적 장엄함을 만드는 장난스러운 밈(meme)이 존재한다)라는 말로도 쉽게 마음이 달래지지 않는 뜨거운 계절을 보내고 있다. 

습도는 또 어찌나 높은지 물고기가 눈앞에서 헤엄쳐도 놀라지 않을 것만 같다. 

비는 예고 없이 쏟아지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며 갑자기 그친다. 

에어컨을 틀어도 시원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파워 냉방으로 틀어!"를 외치게 된다. 

밖을 걷다보면 느껴지는 건물 외벽 실외기의 열기는 그것대로 후끈하다. 

‘지구의 미래는 괜찮은 걸까? 아니 지구가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이 문제지만...’ 이라는 위기감이 들다가도 뜨거운 햇볕에 생각이 정지되면서 일단은 에어컨을 발명한 윌리엄 캐리어 선생에게 경의부터 표하고 본다.

덥고 습한 여름에 사람들의 생체 리듬은 당연하게도 요동친다. 

특히 수면이 그렇다. 

사람은 잠들기 전 심부 체온이 서서히 낮아지며 수면 준비에 들어가는데, 밤에도 25도 이상을 유지하는 열대야는 이 체온 하강을 방해한다. 그래서 더위에 지쳐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거나, 얕게 들었다가 자주 깨는 경우가 많아진다.

시원하라고 켜둔 에어컨 역시 문제다. 

실내 온도는 낮추되 찬 바람이 몸에 직접 닿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잘 조절하지 못하면 오히려 점막 자극이 자극되고 근육 긴장을 유발해 수면 중 미세각성이 반복된다. 그 결과 수면의 깊이는 얕아지고 다음 날 피로는 누적된다. 
 
식욕 또한 여름에 많이 흔들린다.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혈류가 피부로 몰리면 상대적으로 위장관으로 가는 혈류가 줄어들고 이로 인해 소화능력이 떨어진다. 

체온 유지에 에너지가 집중되고 자율신경이 쉽게 교란되면서 식욕을 담당하는 시상하부의 조절 기능도 일시적으로 둔화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저혈당과 탈수로 이어지고 뇌는 보상을 위해 자극적인 음식, 단순당이 많은 음식, 짠 음식 등을 더 갈망하게 된다. 
 
사람마다 각자 취약한 계절과 그렇지 않은 계절이 있기는 하지만 여름에는 짜증과 이유 없는 무기력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고온다습한 환경은 교감신경계를 과도하게 자극해 긴장을 높이고 이로 인해 우리는 사소한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쉽다. 

게다가 앞에서도 말했듯 더위로 인한 수면 부족과 탈수는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무너뜨려 기분 조절 능력도 떨어뜨리곤 한다. 그렇기에 여름에는 짜증을 내지 않기 위해, 그리고 너무 처지지 않는 상태로 지내기 위해 더 많은 심리적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렇게 여름이라는 계절이 우리의 마음에 원래 이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불필요한 자기혐오(“나는 왜 이렇게 쉽게 짜증을 내고 지치지? 참을성이 없나?”)가 줄고 감정 조절의 여지가 생기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시도를 할 수 있다. 

여름이 감정에 관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계절을 조금 더 잘 견딜 수 있게 된다. 
 
그러니 여름과 너무 맞서 싸우려 하지 않아도 된다. 

“이 더위 속에서도 나는 항상 평소 같은 기분과 태도, 업무 능력을 유지해야 해!”라며 무리하기 보다는 환경이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인정하는 것이 더 현명한 전략이다. 
 
수분을 충분히 보충하고 규칙적으로 식사하며 과도한 더위를 피하는 것, 그리고 수면 환경을 조절하는 것처럼 스스로를 돌보려는 일상의 작고 단순한 행동들이 몸과 마음의 균형을 회복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 

또한 에어컨 온도를 무작정 낮추기보다는 제습 기능을 함께 사용해 습도를 50~60%로 유지하고 에어컨 바람을 직접 쐬지 않는 것이 좋다. 

잠자리에 들어가는 시간과 나오는 시간을 날마다 대체로 비슷하게 지키는 것도 수면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여름이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시기일수록, 너무 완벽한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적당히’ 이 계절을 보내보기를 바란다. 

그러다보면 어느 날 수박을 먹으면서 “올해의 수박은 이게 마지막이구나. 여름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가 남아 있을 것이다.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 '출근길 심리학'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