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산업
- 이마트 미국 법인 7년 만에 '매출 2조' 조용히 성장, 정용진 공격적으로 전략 바꿀까
- 이마트 미국 법인이 현지 사업을 본격화한 지 7년 만에 전사 실적을 이끄는 캐시카우(현금창출원)로 자리 잡고 있다.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미국 유통사업을 운영하는데 역량을 갖춘 현지 기업을 인수 한 뒤 독자 경영에 맡기는 보수적 전략을 고수해 왔다.다만 미국 법인의 현지 시장 사업 경험이 축적되고, 정 회장이 미국을 중심으로 정·재계 네트워크를 크게 확장하면서 이마트가 미국사업에서 새로운 성장 전략을 가동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19일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이마트는 안정에 방점을 찍은 전략으로 미국사업에서 의미 있는 실적 성과를 가시화하고 있다.이마트 미국 법인 PK리테일홀딩스(PKRH)는 지난해 첫 연간 매출 2조 원을 달성한 데 이어 올해 1~3분기에도 매출 1조7476억 원을 기록하며 약 9% 성장세를 이어갔다. PK리테일홀딩스는 지난해부터 SCK컴퍼니(스타벅스 운영사) 다음으로 매출 규모가 큰 이마트 계열사로 올라섰다.영업이익 성장세는 더 가파르다. 지난해 42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01%, 올해 1~3분기 443억 원으로 64.7% 성장했다.이마트는 2018년 7월 PKRH를 설립하고 같은해 12월 미국 현지 유통기업인 '굿푸드 홀딩스'를 인수하며 미국 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사업 초기 굿푸드 홀딩스 인수와 확장에 투입한 자금은 약 6천억 원에 이른다.현재 굿푸드 홀딩스는 미국 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브리스톨팜스'(14개), '메트로폴리탄 마켓'(10개), '레이지에이커스'(5개), '뉴시즌스마켓'(21개), '뉴리프커뮤니티마켓'(5개) 등 5개 프리미엄 식료품 유통 브랜드를 통해 모두 55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PKRH에 인수될 당시 굿푸드 홀딩스 매장 수는 24개, 연간 매출은 6700억 원이었다. 7년 만에 매장 수는 2배 이상 매출은 3배가 훌쩍 넘게 뛰었다.이마트는 미국사업에서 보수적 전략을 고수하며 이 같은 성장을 일궈왔다.굿푸드 홀딩스 인수 뒤에도 기존 경영진을 그대로 유지해 사업을 독자적 운영에 맡겼다. 선진 유통 시장인 미국 대도시 상권에서 20~40년 이상 실제 매장을 운영해 온 실력 있는 유통기업을 인수해 미국사업을 연착륙시키겠다는 취지에서다.뉴시즌스마켓 매장 이미지. <굿푸드 홀딩스>업계에서는 이마트가 미국사업 전략을 보다 공격적으로 선회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국내 대형마트 산업에서 해외시장 확대는 지속 성장을 위한 필수 과제로 여겨진다. 시장 성숙기 진입과 경기둔화, 정부 영업 규제 등으로 국내 대형마트 주요 3사 국내 매출 증감률은 2023년 0.5%, 지난해 -0.8%를 기록했다.이마트는 베트남, 몽골, 필리핀, 라오스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 현지 기업과 마스터프랜차이즈(MF) 계약을 맺고 할인점 등 출점을 확대하고 있으나 아직 합산 매장 수가 20여 개로 미국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PKRH는 지난해 11월 대표이사와 이사진을 모두 교체했다. 여기에 정용진 회장이 정치 후원 단체 록브리지네트워크 아시아 총괄회장을 맡는 등 미국을 중심으로 정·재계 네트워크를 크게 확장하면서 이마트의 미국 사업 전략이 전환점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이마트의 미국사업 확장의 새로운 방향성과 관련해서는 이마트 자체 유통 브랜드의 현지 진출이 먼저 거론된다.애초 정 회장은 미국에 식료품점에 외식업을 결합한 독자 브랜드 'PK마켓'(가칭)을 2019년 출점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지연되다 2023년 이마트가 사상 첫 연간 적자를 기록하는 등 국내사업에서도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실상 무산됐다.업계 관계자는 "이마트 미국 진출 초기에는 현지 사업 운영 경험이 없었던 데다 중국사업을 철수한 직후라 투자에 소극적이었지만, 현지에서 6년의 경험을 쌓았고 이마트 국내 사업이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는 만큼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말했다.이밖에 PKRH가 미국 현지 유통 업체를 추가로 인수하거나, 굿푸드 홀딩스 경영에 개입해 공격적 출점 전략을 펼치는 방식도 가능하다.앞서 글로벌 유통업체 월마트는 2006년 5월 한국 진출 9년 만에 16개 매장을 이마트에 매각하고 사업을 철수했다. 전문가들은 월마트의 한국 사업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한국적 성향을 이해하지 못한 점을 꼽았다.정 회장은 월마트의 실패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봤다. 이 또한 이마트의 미국 초기 사업 전략 수립에 반영됐을 것으로 보인다. 그 전략적 방향성이 변곡점을 맞을지 주목된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