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최순실 악재’를 좀처럼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순실씨가 KEB하나은행 인사에 개입한 혐의를 놓고 유죄를 받으면서 김 회장이 인사청탁을 강요받은 ‘피해자’로 인정받을지, 부당한 영향력으로 또 다른 ‘강요’를 했다는 책임이 지워질지 시선이 쏠린다. 
 
김정태에게 '최순실의 KEB하나은행 인사개입'은 여전히 부담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재판부는 최씨가 이상화 전 KEB하나은행 글로벌영업2본부장의 특혜승진에 개입했다고 보고 '강요'에 유죄를 선고했다.

최씨, 박근혜 전 대통령,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정찬우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김 회장으로 이어진 인사청탁의 고리에서 김 회장 직전까지 모든 인물들에게 강요죄가 적용됐다. 

이 전 본부장은 2015년 독일법인장으로 근무하면서 최순실씨의 독일 현지 생활과 정유라씨의 특혜대출을 도왔다.

김 회장이 이들의 강요를 받고 다시 계열사 인사담당자에 강요를 해 부정인사의 꼬리를 이어가는 데 역할을 했다는 책임이 지워질지가 문제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을 두고 윗선의 지시와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을 한 단순한 희생자라는 동정론도 있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자가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하긴 힘들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이 전 본부장을 승진하라는 안 전 수석의 지시를 두 차례 거절했지만 결국 조직개편이 원래 검토되고 있던 사항인데다 안 수석의 말도 들었으니 여건을 만들어봐야 했다고 지난해 9월 증언했다.

이번 판결 내용을 놓고 법조계 의견도 엇갈린다. 김 회장이 강요에 의해 권한 밖의 일을 한 것이 확인돼 은행법 위반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의견과 김 회장과 KEB하나은행이 강요를 받은 피해자로 면죄부를 받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판결이 나온 뒤 하나금융 노조와 시민단체는 이 전 본부장 특혜승진 하나만 놓고 상황을 보지 말고 여러 정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금융 노조 관계자는 “최씨와 연루된 아이카이스트 대출에 김 회장과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이 직접 본사까지 찾으면서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과 최씨의 측근이 설립한 존제이콥스의 ‘줄기세포 화장품’을 KEB하나은행이 대량 구매한 것 등 다른 정황을 미뤄보았을 때 김 회장이 단지 희생자였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김 회장에게도 특혜승진과 관련한 책임이 인정될지는 검찰과 재판부의 판단에 달려있는 만큼 아직 정해진 바는 없지만 또 그 어느 것 하나도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아직 대법원 최종 판결이 난 것은 아니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운명이 엇갈린 재판부의 판단처럼 김 회장이 이번 인사청탁 사건과 관련해 어떤 길을 가게 될 지는 아직 물음표로 남아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양형 이유로 ‘박 전 대통령에게 어떠한 이익이나 특혜를 요구하였다거나 실제로 취득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며 이 부회장을 ‘겁박에 의한 피해자’로 판단했다.

하지만 신 회장을 두고는 “공무원의 요구에 의해 재물을 줄 때 ‘불이익에 대한 걱정’과 ‘공무원의 직무수행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보통 공존한다”며 “공무원에게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강요, 뇌물죄가 동시에 성립하면 그 상대방도 뇌물공여죄 성립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파악했다.

김 회장이 이번 사건에 직접적 책임이 인정되지 않아 형사적 처벌을 모면한다고 해도 금융당국의 징계까지 피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금융감독원은 김 회장의 인사개입이 은행법을 위반하는 것인지 최씨 1심선고 판결문을 들여다볼 것이라고 예고했다. 

은행법 35조에 따르면 금융지주회장이 은행 인사에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면 금융당국이 해임을 권고할 수 있다. 

김 회장이 단독후보로 추천되는 과정에서 금융당국이 회장 인선절차를 서두르지 말라고 한 권고까지 저버리며 갈등을 빚었던 만큼 김 회장은 모든 문제에서 혐의가 없음을 입증할 수 있어야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이에 앞서 함 행장은 지난해 11월 국정감사에서 이 전 본부장의 특혜승진 지시는 모두 함 행장이 스스로 한 일이라 주장한 바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