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진영 기자 lanique@businesspost.co.kr2017-01-02 00: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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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어록
생애
▲ 박근혜 전 대통령.
박근혜는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이다.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라는 영예를 안았고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적 발전을 재현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받았다.
그러나 임기 말년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박근혜 게이트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돼 직무가 정지됐으며 헌법재판소 심판이 진행됐다.
1952년 2월2일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해 ‘8·15 저격 사건’으로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사망하자 영부인 직무를 대행했다.
육영재단 이사장과 영남대학교 이사장, 정수장학회 이사장 등을 맡았다.
한나라당에 입당해 대구 달성군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5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한나라당의 대표최고위원을 거쳐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된 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변경했다.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박근혜 게이트로 번지면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돼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서 파면선고를 받았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74년부터 박정희 대통령이 숨진 1979년까지 ‘퍼스트 레이디’ 직무를 수행했다. 이 시기 국민정신 개조운동인 새마음운동에 참여했다.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했으며 영남대학교 이사장을 겸했다.
1994년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취임해 11년간 재직했다.
1997년 한나라당에 입당해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회창 후보의 지지를 선언했다.
1998년 4월 대구광역시 달성군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됐다.
이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까지 달성군에서 4선했다.
제 19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5선 국회의원이 됐다.
2002년 2월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의 당대표가 되었으나 그해 11월 제16대 대통령선거를 한 달 앞두고 한나라당과 합당하는 형식으로 복당했다.
2004년 3월 한나라당의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탄핵 역풍’ 속에서 한나라당을 이끌어 17대 총선에서 선방했다. 2005년 사학법 재개정 장외투쟁을 이끄는 등 총선승리를 위한 한시적 대표가 될 것이라는 일부의 예측을 깨고 2006년까지 대표로서 활동했다.
2007년 한나라당의 제17대 대통령선거 후보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했다.
2011년 12월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디도스 파문으로 사퇴하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출됐다.
2012년 2월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4월 제19대 총선에서 과반수의 의석을 확보하며 승리했다.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에 이겨 대통령에 당선됐다.
2013년 2월 25일부터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돼 2017년 1월 현재 직무가 정지됐다.
◆ 학력
서울장충초등학교를 1964년 마치고 성심여자중학교, 성심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0년 서강대학교에 진학해 1974년에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으나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사망으로 귀국했다.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초등학교 동창이다.
명예학위를 여러 차례 받았다. 1987년 중국문화대학 명예문학박사, 2008년 카이스트 명예이학박사 및 부경대학교 명예정치학박사, 2010년 서강대학교 명예정치학박사, 2014년엔 독일 드레스덴공과대학교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일본군과 대한민국 육군을 거친 군인 출신이다. 5•16 군사정변으로 정계에 등장해 1963년부터 1979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모친인 육영수씨는 옥천여자중학교 교사 출신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두번째 부인이다.
여성바둑연맹 총재인 박근령씨가 여동생, EG(구 삼양산업) 회장인 박지만씨가 남동생이다. 이외에도 박정희 전대통령과 전처 사이 자식인 박재옥씨가 이복언니다.
첫째 삼촌 박동희씨의 자녀 중 4선 국회의원을 지낸 박재홍 전 민자당 의원이 사촌오빠다. 셋째삼촌인 박상희씨의 자녀 중 사촌오빠인 박준홍씨는 대한축구협회 회장이었다. 박준홍씨의 누나 박영옥씨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부인이다. 박근혜와 김종필 전 총재는 사촌형부-처제 관계다.
셋째삼촌 박상희씨의 딸 박설자씨는 벽산그룹 김인득 창업주의 둘째아들 김희용 동양물산 회장과 결혼해 재계와 혼맥을 이었다. 김희용 회장의 형인 김희철 벽산그룹 회장은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누나 허영자씨와 결혼해 허 회장과 박근혜는 먼 사돈 관계다.
외가에서 육영수씨의 오빠인 육인수 전 의원이 박근혜의 외삼촌이다. 6~10대 국회에서 내리 5선을 지냈다. 육영수씨의 언니인 육인순 혜원학원 설립자는 남편 홍순일씨와 사이에 3남5녀를 두었다. 육인순씨의 맏사위가 농수산부 장관을 지낸 장덕진 전 의원, 둘째사위가 한승수 전 국무총리, 셋째사위가 유연상 전 영남대 재단 이사장, 넷째 사위가 경수종합금융 회장을 지낸 정영삼 한국민속촌 회장, 막내사위가 대한선주협회장을 지낸 윤석민 전 의원이다. 모두 박근혜의 이종사촌 형부들이다.
한승수 전 총리와 결혼한 박근혜의 이종사촌 홍소자씨의 사위가 김세연 의원이다. 김세연 의원의 삼촌이 김형수 전 한국맥도날드 대표이고 김형수 대표의 장인이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다. 박태준 회장의 며느리 정지윤씨는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의 부인인 정지선씨의 언니다.
이외에도 방송인 은지원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모 박귀희씨의 손자로 박근혜와 5촌 관계다.
◆ 상훈
2007년 한국언론인연합회는 발표하는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에서 정치발전부문 최고대상을 받았다.
2009년 법률소비자연맹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법률대상 시상식’에서 입법부문을 수상했다.
국회의원 시절 가장 모범적이고 신사다운 의정활동을 펼친 의원에게 주어지는 ‘백봉 신사상’을 4년 연속(2007•2008•2009•2010) 수상해, 최다 연속 수상 기록(4회) 보유자다.
2013년 영국 여왕이 국빈방문시 외국 국가원수에게 수여하는 ‘바스 대십자 훈장(Grand Cross of the Order of the Bath)’을 받았다.
◆ 상훈
2007년 한국언론인연합회는 발표하는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에서 정치발전부문 최고대상을 받았다.
2009년 법률소비자연맹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법률대상 시상식’에서 입법부문을 수상했다.
국회의원 시절 가장 모범적이고 신사다운 의정활동을 펼친 의원에게 주어지는 ‘백봉 신사상’을 4년 연속(2007•2008•2009•2010) 수상해, 최다 연속 수상 기록(4회) 보유자다.
2013년 영국 여왕이 국빈방문시 외국 국가원수에게 수여하는 ‘바스 대십자 훈장(Grand Cross of the Order of the Bath)’을 받았다.
어록
“대통령으로서 철학과 소신을 갖고 국정을 운영해 왔다. 대통령의 직무와 판단이 있는데 어떻게 지인이 모든 것을 다했다고 엮을 수 있나. 최순실씨는 몇십 년 된 지인이다. 그렇다고 지인이 모든 것을 다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2017/01/01,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탄핵 가결 23일 만에 입장을 표명하며)
“국민들께 미안한 생각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저를 도와줬던 분들이 뇌물이나 뒤로 받은 것 하나 없이 일을 열심히 한 것인데 고초를 겪어 마음이 아프다. 기업인들이 압수수색 등 어려움을 겪는 것이 미안하고 마음 편할 날이 없다.” (2017/01/01,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삼성 합병은 당시 국민들과 증권사들의 관심사였다. 헤지펀드의 공격으로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의 합병이 무산된다면 국가적·경제적으로 큰 손해다. 20여개의 국내 증권사 중 한두군데만 빼고는 다 찬성했고 어떤 결정이든 간에 국가의 올바른 정책 판단이다. (삼성 합병을) 도와주라고 한 적이 없는데 (특검이) 나를 엮은 것이다” (2017/01/01,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진 배후로 자신이 지목되는 것과 관련해)
“보도를 보니까 굉장히 숫자가 많더라.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2017/01/01,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마침 그날 일정이 없어서 관저에서 일을 챙기고 있었다. 그날 사건이 터졌다는 것을 정상적으로 계속 보고받으면서 체크하고 있었다. 대통령으로서 내가 할 것은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밀회를 했다’고 이런 식으로 나오니까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2017/01/01,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대통령뿐 아니라 모든 사람은 사적 영역이 있다. 일일이 무슨 약을 먹었다고 알리고 까발리는 것은 민망하기 그지없다. 그런 것으로 국가에 손해를 끼친 일은 한 번도 없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이런 병을 이렇게 치료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닌가. 어느 나라에서 대통령이 무슨 병을 앓고 어떻게 치료했는지 리스트로 만드느냐.” (2017/01/01,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프로포폴 등 각종 주사 의혹에 대해)
“특별히 어떤 데를 도와주고 이득주라고 한 적 없다. 다만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하니.. 자격이 없으면 안되지만 실력이 있는데 덩치가 작아 기회를 못갖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 생각했다” (2017/01/01,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의 미용 시술을 맡았던 김영재 원장이 특혜를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최순실씨와 KD코퍼레이션 측이) 아는 사이였다는 것은 보도를 보고 알았다.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부탁하는 것은 금기다.” (2017/01/01,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에 앞서 검찰은 공소장에서 최순실 씨가 박근혜, 안종범 전 경제수석과 공모해 현대차그룹에게 자동차 엔진 흡착제 제조업체인 KD코퍼레이션과 납품계약을 하도록 강요했다고 적시했다. KD코퍼레이션은 정유라씨의 초등학교 학부형 이모씨가 소유하고 있는 회사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 (2016/11/04, 대국민담화에서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고위 공직자들도 골프를 치라고 했는데 왜 안 치나?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 의무감으로 골프를 쳐달라.” (2016/09/24, 장·차관 워크샵에서 김영란법 시행으로 골프업계가 어려워졌다고 걱정하며)
“안중근 의사께서는 차디찬 하얼빈의 감옥에서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2016/08/15, 광복절 중앙경축식 경축사에서 뤼순 감옥을 하얼빈 감옥으로
잘못 말하며)
“정신을 집중해서 화살을 쏘면 바위도 뚫을 수 있다.” (2016/01/04, 신년 인사회에서 마음과 힘을 하나로 모으면 해내지 못할 일이 없다며)
“사람 나고 법 났지 법 나고 사람 났나요?” (2015/12/16, 경제관계 장관회의에서 식품 전문회사 대표가 환경규제때문에 신규투자와 수출길이 막히게 됐다고 건의하자 규제를 완화하라고 관련 부처들에게 지시하며)
“자기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고, 역사를 잘못 배우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 밖에 없다.” (2015/11/10, 국무회의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역사를 모른다고 하면 혼이 빠진 인간이다. 역사를 잘못 알고 돌아다니는 것은 영혼이 썩는 것이다.” (2015/10/31, 제15차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올바른 역사교육은 사명이라고 강조하며)
“아까 뵈니 인상도 좋으시고 말씀도 참 잘하시는데 예전에 왜 저보고 그년, 이년이라고 그렇게 하셨잖아요.” (2015/10/22, 청와대 5자 회동에서 이종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과거에 자신을 비난했던 것을 언급하며)
“전체 책을 다 보면 그런 기운이 온다.” (2015/10/22, 청와대 5자 회동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관련해 현행 검정교과서가 한국사를 부끄러운 역사로 기술한다고 말하며, “부끄러운 역사로 보이는 게 어디냐”는 물음에)
“정말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 (2015/04/25, ‘한·브라질 비즈니스포럼’ 인사말에서)
“기가 충만하게 쌓이게 되면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다.” (2015/08/07, 대한민국 학군단(ROTC) 대표단과 대화에서)
“이 풀은 그 가치를 우리가 알아내기 전까지는 잡초였다. 잡초에서 뭔가를 발굴해 내서 창조적으로 해석하면 그게 신데렐라같이 대박을 터뜨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찾으면 좋을 것이다.” (2014/09/21, 제51회 방송의 날 축하연에서 문화와 산업의 융합을 강조하며)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행위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는 살인과도 같은 행태였습니다.” “국민들이 못 믿는 공무원은 그 자리에 있을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2014/04/21, 세월호 침몰 사태로 열린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2014/04/16,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아 상황을 점검하며)
“쓸 데 없는 규제는 우리의 원수이자 암 덩어리다.” (2014/03/10,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규제 개혁을 강조하며)
“한 마디로 ‘통일은 대박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2014/01/06, 신년 기자회견에서 평화통일 구축 방안에 대해 묻자)
“찌라시에 나오는 그런 얘기들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2014/12/07, 새누리당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오찬에서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을 놓고)
“지금 저랑 싸움하시자는 거예요?” (2004/04/09,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현해서, 손석희씨가 ‘경제 회생론’의 근거를 물으며 IMF환란을 언급하자 박근혜는 “한나라당은 새롭게 거듭나는 정당”이라며 정확한 답변을 피했다. 이에 손석희씨가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약속을 하시는 것 같은데 유권자들은 과거를 보고 판단하지 않느냐”고 묻자 발끈하며)
“그러니까 제가 대통령 하겠다는 거 아니겠어요?” .(2012/12/16, 대선후보 3차 TV 토론회에서 문재인 전 대표가 과학기술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가 무엇을 했냐고 묻자)
“정부가 자의적으로 쓸 수 있는 재량 지출을 줄이고 세입 확대는 비과세 감면제도를 정비한다거나, ‘지하경제를 활성화’해 매년 27조, 5년간 135조원을 마련할 것이다.” (2012/12/10, 대선후보 2차 TV 토론회에서 문재인 후보가 복지재원 확보방안을 묻자)
“저는 오늘로 지난 15년 동안 국민의 애환과 기쁨을 같이 나눠왔던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 (2012/11/25, 제18대 대선 후보 공식 등록을 앞둔 기자회견에서 – 국회의원직을 대통령직으로 잘못 말해 구설수에 오름)
“제가 이공계 출신이니 뭔가 DNA가 다르지 않겠느냐 …… 제가 과학인들의 열정이 솟아나도록 모든 것을 걸고 한번 해보겠다.” (2012/10/8, 카이스트 본관에서 대전 지역 과학기술연구원들과 간담회를 가지며)
“같은 대법원에서 상반된 판결이 나온 것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 조직에 몸담았던 분들이 최근 여러 증언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지 감안해 역사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한 것.” (2012/09/11, 박범진 전 한성디지털대 총장이 명지대 국제한국학연구소가 출간한 학술총서 `박정희 시대를 회고한다’에서 “인혁당 사건은 조작이 아니다”라고 증언한 것에 빗대서)
“몇 십년 전 역사라 지금도 논란이 있고 다양한 생각이 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역사가 객관적인 판단을 해 나가지 않겠는가. 역사의 몫이고 국민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유신에 대해 당시 아버지가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그렇게까지 하면서 나라를 위해 노심초사했다. 그 말 속에 모든 것이 다 함축돼 있다고 생각한다.” (2012/09/10,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에서 유신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인혁당 사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 (인혁당 사건 유족에 대한 사과 부분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느냐는 답을 한번 한 적이 있다.” (2012/09/10,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에서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역사적 판단에 맡기고 유족에 대한 추가적 사과나 입장 변화는 없다고 밝히며)
“역사적인 사건의 인물들과 화해를 해야 하지 않느냐. 계속 역사적으로 갈등이 됐던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 (2012/08/29, 전태일 열사의 유가족과 친구를 만나려 했으나 거절당한 후)
“과거에 묻혀 사시네요.” (2012/08/08, 경선 토론회에서 임태희 후보가 5.16에 대한 견해를 묻자)
“5·16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지 않으냐. 아버지 자신도 다시는 나같이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셨다.” (2012/08/07,새누리당 대통령 경선 후보 토론회에서)
“네거티브에 시달려 멘붕 올 지경” (2012/08/06,새누리당 제18대 대통령후보자 선거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5·16은 아버지로서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을 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생각, 반대 의견을 가진 분도 있기 때문에 옳으니 그르니 하기보다는 국민과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2012/07/16,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토론회에서)
“파업이 너무 장기화되고 있는데 노사가 서로 슬기롭게 잘 풀었으면 좋겠다” (2012/06/22, 봉사활동 중 기자들의 2012년 MBC 노조 총파업에 대한 질문에)
“바쁜 ‘벌꿀’은 슬퍼할 겨를도 없다” (2012/01/02,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해 고 육영수 여사 서거 당시 심정을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바쁜 꿀벌(busy bee)은 슬퍼할 겨를도 없다(The busy bee has no time for sorrow)’를 잘못 빗대며)
“병 걸리셨어요?” (2011/09/07, 인천고용센터 방문 도중 한 기자가 ‘안철수 신드롬’을 묻자)
“복지에 (돈보다) 중요한 건 사회적 관심”, “한국말 못 알아들으세요?” (2011/01/23,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회원들과 연 불우아동 후원모임에서 기자가 사회적 관심이 무슨 의미인지 질문하자)
“아버지의 궁극적인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셨습니다.” (2009/10/26, 현충원에서 있었던 박정희 대통령 30주기 추도식에서 추도문에서)
“거짓으로 한나라당이 과연 집권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께서 애국심과 애당심으로 바로 잡아 주십시오.” (2007/08/17, 이명박 후보와의 경선 대결을 이틀 앞두고)
“‘이산화가스’, ‘산소가스’를 배출하는데, 그 이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준비를 잘해서 법적인 조치를 하든지 정부가 지원을 해야한다” (2007/7/21 한나라당 대선 후보 TV 토론회에서 이명박이 교토의정서와 관련 ‘이산화탄소’ 배출 해결책에 대해 묻자 부정확한 표현으로 답변하며)
“‘줄푸세 정책’으로 우리 경제를 확실히 살려놓겠습니다. ‘줄푸세’는 줄이고, 풀고, 바로 세우자는 것입니다. 세금과 정부규모는 줄이겠습니다. 불합리한 규제는 과감히 풀겠습니다. 법질서와 원칙은 바로 세우겠습니다.” (2007/05/29, 한나라당 대선주자 정책비전대회 기조 연설에서)
“저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가족도 없어서 저에게는 대한민국이 가족이고 국민이 최우선입니다.” (2007/05/23,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가진 세종로포럼 초청 특강에서)
“국민을 위한 일이라면 백 번이라도 수첩공주를 하겠다.” (2007/04/05, 공주영상대에서 열린 특강에서)
“참 나쁜 대통령이다. 국민이 불행하다.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 안 보이나” (2007/01/09, 노무현 전 대통령이 4년 연임제 개헌을 제안하자)
“대전은요?” (2006/05/22, 지방선거 유세 중 피습사건으로 입원 상태에서, 한나라당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전해받은 후)
“당 대표를 하나의 얼굴마담으로 생각하느냐”, “정치에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욕먹는 게 낫다.” (2004/09/23,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자신의 리더십에 대한 당 내 비판에 정면 대응하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은 저의 모든 것을 걸고 막아내겠습니다.” (2004/09/09, 기자회견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에 대해)
“내가 누구로부터 조종받는다는 말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 (1990/11/08, 육영재단 이사장 직을 사퇴하는 기자회견에서 최태민 목사의 운영 관여를 묻자)
◆평가
‘보수의 구원투수’ ‘선거의 여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98년 4월 대구 달성군 재보궐선거에서 안기부 기조실장 출신의 거물 엄삼탁을 꺾으며 국민회의의 동진을 막았다. 2004년 3월 한나라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천막 당사’를 치고 여러 차례 기자회견을 통해 사태를 수습했다. 비록 제17대 총선에서 원내 1당의 자리는 내주었지만 한나라당은 121석을 차지하며 선전했다.
2011년 12월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 파문으로 사퇴하자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전면에 나섰다.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2012년 4월 11일 제19대 총선에서 152석을 과반석을 지켰으며 제18대 대선에서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개인보다 국가를 우선하는 태도가 배어있는 모습으로도 회자된다.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후 첫 마디는 “휴전선은 이상 없습니까?”, 2006년 지방선거 지원유세 도중 ‘커터칼 테러’를 당한 후 병원에서의 첫 마디도 “대전은요”였다고 한다. 20대 시절부터 영부인 역할을 대행했던 삶이 행동 전반에 녹아있다는 것이다. 이를 놓고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자세냐' '개인 희생을 당연시하는 국가주의’로 보느냐로 관점이 엇갈렸다.
일각에서 사람을 잘 믿지 못한다고 평가된다. 구체적 정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버지가 측근의 총에 숨진 후 측근들이 줄줄이 등을 돌린 것이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통 부재의 지적이 있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 의원들에게 열린우리당과의 ‘4자회담’에서 “수첩에 할 말을 적어와 그 말만 반복해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기분”이었다는 열린우리당 인사들의 소감이 대표적이다. 당 의원들에게조차 ‘발신번호표시 제한’으로 연락하고, 심지어 참모들조차 그가 주요현안에 대해 누구와 상의하는지 모른다 말한 적도 있다. 철저한 ‘비밀주의’ 소통 원칙을 고수해, ‘수첩공주’, ‘불통’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과거의 이런 의혹들은 2016년 말 밝혀지기 시작한 최순실씨의 존재로 다소 규명이 되었다.
권위주의적, 회피적 태도 문제가 거론됐다. 2004년 MBC 라디오 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서도 경제 문제에 대해 질문하자 “지금 저하고 싸움하시자는 거예요?”라고 대답해 논란이 되었고 2011년 9월 ‘안철수 열풍’에 대해 기자들이 여러 번 생각을 묻자, “병 걸리셨어요?”라고 답하는 등 질문조차 불편한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원론적 수준에서 짧은 말을 던지고 ‘복지 예산 삭감’이나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등 민감한 사안 앞에서는 침묵한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시위가 있었던 2008년 6월이 대표적 예다. 박근혜는 “근본 대책이 나와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만 한차례 한 뒤 줄곧 침묵을 지켰다. 대신 그는 당을 떠난 친박 측근들의 복당 문제를 논의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사쿠데타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박근혜는 박정희 대통령의 5·16 군사정변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필요했다는 견해를 비쳤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후보 청문회에서는 ‘남북 대치상황에서 국민을 구하기 위한 구국혁명’으로, 2012년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초청 토론회에서는 ‘불가피하게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 직전 논란이 커지자 박근혜는 ‘5•16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대통령 임기 초반부터 인사 실패 문제로 큰 비판을 받았다. 처음으로 중용한 윤창중 전 대변인은 2013년 미국에서 성추행 파문을 일으켰다. 김병관 전 국방부 장관 후보자 역시 ‘의혹 백화점’으로 후보에서 낙마했고 문창극 서울대 초빙교수는 과거사와 관련한 교회 강연이 논란돼 국무총리 후보에서 떨어졌다. 박근혜의 이런 인사방식은 폐쇄적이고 불투명한 비선의 과정을 거친 ‘수첩인사’의 실패라고 비판받는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역시 2016년 임명 당시 ‘황제 대출’, ‘흙수저 막말 논란’을 일으키며 야권에서 해임건의안을 의결했지만 박근혜는 사상 최초로 해임건의안을 무시하고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12년 7월 김문수 당시 경기도지사에게 “박근혜는 사자가 아니라 칠푼이”라고 말해 아직까지 화제가 되고있다. 김 전 대통령은 김문수 전 지사가 “지금은 토끼가 사자를 잡는 격”이라며 당 대선 경선을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박근혜에게 지지율이 밀리는 점을 비유하자 이같이 말했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16년 12월8일 박근혜 비판을 담은 책 ‘오만과 무능-굿바이, 朴의 나라’를 출간했다. 그는 ‘박근혜의 입’으로 불리기도 했던 친박 인사였지만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와 갈라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그는 이 저서에서 “박근혜 시대는 퇴행이자 박정희 시대의 복사판”이라며 소통이 불가능한 반민주적이고 권위적인 ‘박의 패러다임’ 속에서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최씨 일가에 대한 생각도 털어놨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박근혜는 최태민씨와 관련한 이야기만 나오면 이성을 잃었다고 떠올리면서 “최태민씨는 박근혜가의 ‘강렬한 권력 욕망’ 이라는 과녁을 정확히 맞추었고 두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관계가 됐다”고 둘을 묘사했다.
전여옥 전 의원은“최태민 일가라는 유령 집단은 ‘박의 나라’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특권층이 돼 날뛰었다”며 “박근혜는 그들의 꼭두각시였다”고 평가했다.
박근혜는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5% 미만이라는 최악의 지지율로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했다는 평을 들었다. 결국 12월9일 탄핵소추가 가결됐다.
◆ 기타
2007년 공개된 생활기록부에 따르면 초등학교 1학년 때 “특정 아동들과만 노는 습관이 있음”, 초등학교 3학년 때 “자존심이 강한 어린이”, 4학년 때는 “약간 냉정한 감이 흐르는 편”이라는 평가가 있다.
성심여고 시절 생활기록부에는 “매사가 훌륭하나 지나치게 어른스러움이 흠이다”, “지나친 신중성 때문에 과묵한 편”이라고 적혀있다.
이공계 출신으로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졸업할 때 학점도 4.0 만점에 3.82로 매우 높았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후 이산화탄소를 이산화가스라고 잘못 말하거나 센서 달린 신발을 인공지능의 사례로 혼동하는 등 이과 계열 전공자답지 않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는 인연이 오래되었다. 1976년 전두환이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발탁되어 처음 박근혜와 조우했다. 당시 오빠-동생으로 부르며 막역한 사이라는 소문이 있었으나 박근혜 측은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후 악연이 깊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권을 잡은 뒤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하했다. 국립현충원에서 유족들의 추도행사를 금지하고 박근혜가 이끌던 ‘새마음봉사단’도 해산했다. 다만 생계비 명목으로 비자금을 주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중앙정보부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최태민 관련 자료’에는 최태민 목사가 당시 박근혜 뒤에서 비선 실세로 행세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자료는 “봉사단을 사단법인으로 개편한 뒤 박근혜가 총재로 취임해 형식상 모든 업무를 관장했지만 실질적으론 비공식 고문격인 최태민이 전권을 위임받아 행정부, 정계, 경제계, 언론계 등 각 분야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분석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주한미국대사관의 정부 보고자료에 따르면 버시바우 전 주한미대사는 2007년 “최태민이 박근혜의 인격형성기에 몸과 영혼을 완전히 통제했다는 소문이 있다”며 “최씨의 자녀들이 엄청난 양의 부를 축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근혜가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았을 당시인 1990년 8월 박지만씨와 박근령씨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진정코 저희 언니는 최태민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다”며 “최태민의 손아귀에서 불쌍한 언니를 구해달라”는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최태민 목사의 사위이자 최순실씨의 전 남편인 정윤회씨 역시 국회의원 시절 박근혜의 보좌관을 맡는 등 최측근으로 활동했다. 정윤회씨는 2014년 말 ‘정윤회 동향문건 파동’으로 대중에 회자됐다. 정씨가 비선실세로서 각종 국정운영에 관여한다는 내용의 문건이었다.
검찰은 해당 문건이 허위라고 결론내리고 문건 유출자인 조응천 당시 비서관과 박관천 행정관 등을 기소했다. 박 전 행정관은 당시 검찰조사에서 “우리나라 권력서열 1위는 최순실, 2위가 정윤회, 박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이 된 박근혜는 2001년 한나라당 부총재 자격으로, 2004년 한나라당 대표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났으나 그 후 따로 만난 적은 없다.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선출된 뒤에도 전두환 전 대통령만 찾아가지 않았다. 2013년 전두환씨 일가의 압수수색에 대해서도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다.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해소하기 위해 일찍부터 SNS를 활용했다. 2004년 2월 22일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만들었다. 이명박, 정동영 등 당시 정치적 경쟁자보다 ‘미니홈피 열풍’에 수개월 빨리 참여해 선점효과를 누렸다. 미니홈피에 인사말이나 메모를 일부 공개하는 것 외에도 난치병 환자를 돕는 바자회를 열거나 후원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홈페이지 개설 넉 달 만에 방문자가 1백만 명을 돌파했고 백만 첫 번째 방문자 권순호 군과 일일데이트를 가져 이슈를 끌었다.
‘패션 정치’로 유명하다. 방미 때는 녹색과 푸른색 계열 의상을 입고 방중 때는 붉은색 의상을 입어 시선을 모았다. 대통령 당선 이후 좀 더 밝고 과감한 의상을 시도하면서 상황에 맞는 컬러 정치를 시도했다. 남대문시장에서 ‘박근혜 스타일’로 중년 여성들 사이에 큰 이슈가 되었다.
2014년 4월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이러한 ‘컬러 정치’가 비판받기도 했다.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전국이 침통한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의 파스텔톤 파란색 재킷, 그 위에 달린 브로치가 오바마의 짙은 무채색 복장과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JTBC가 2016년 10월 입수한 태블릿PC에서 ‘오방낭’과 관련한 파일이 발견되면서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당시 행사 소품으로 등장했던 오방낭이 최순실의 개입으로 제작됐다는 의혹이 나왔다. 박근혜와 최순실씨가 종교로 얽힌 관계라는 것이다.
오방낭은 오행 사상을 담은 흑, 백, 청, 홍, 황 등 방위를 표시하는 다섯 가지 색으로 장식한 주머니로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부적 등이 담겨 있다.
2013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에서 박근혜는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희망이 열리는 나무’ 제막식에 참석해 국민의 희망 메세지가 담긴 오방낭을 개봉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그런데 행사 때 쓰인 오방낭은 색의 위치가 전통적 사용법과 달라 주술적 의미를 담아 고의로 바꾼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는 이전부터 ‘우주’, ‘혼’, ‘기운’ 등 주술적 의미의 단어들을 자주 입에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2016년 10월26일 “박근혜가 최태민·최순실 두 사람의 ‘사이비종교’에 씌워 이런 일을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은 2016년 12월29일 방송된 JTBC ‘썰전’에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최순실씨를 12월26일 찾아가 나눈 대화내용 일부를 공개했다.
그는 “밀월 관계에 금이 간 건지 애초부터 상하관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씨에게서 박근혜 대통령을 위하는 마음을 전혀 읽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혹시 당신이 죽어 대통령이 탄핵에서 살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자 답변을 하지 않고 ‘박근혜를 대신해서 내가 왜 죽어’라는 분위기로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은 2016년 12월27일 채널A에서 방송된 ‘외부자들’에서 20여 년 전 최순실씨와 처음 마주쳤을 때의 이야기를 전했다.
전 의원은 “96년 쯤 대구방송에서 토크쇼를 진행할 때 초대손님으로 온 박근혜와 점심을 먹었는데 최순실씨와 최순득씨가 동석했다”며 최순실씨가 박근혜에게 반찬을 놓아주는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고 꼽았다.
그는 “최순실로부터 반찬을 받은 박근혜의 모습이 마치 유치원 선생님에게 붕어빵을 받은 유치원생같았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최씨가 함께 식사하던 대구방송의 임원에게 “거기 있는거 이리 좀 줘 보라”며 반찬을 젓가락으로 가리키던 모습이 정말 교양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 방송에서 이른바 ‘우비사건’ 일화도 소개했다. 2005년 비가 내렸던 대구 지하철 희생자 추모식에서 박근혜가 입고있던 우비의 모자를 스스로 올려쓰지 않아 곤욕을 치렀다는 것이다.
당시 전여옥 전 의원은 박근혜의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비가 내리자 주변 의원들이 “우비 모자를 씌워 드리라”며 성화를 부렸다고 한다.
전 전 의원은 일어나서 씌워주면 ‘무수리를 자처하는 아부’라는 얘기가 나올 것이고 안 씌워주면 ‘알력 다툼’이라는 비난이 나올 것 같아 괴로웠다고 설명했다.
그가 주변의 재촉에도 5분을 버텼지만 박근혜는 끝까지 아무말도 없이 미동이 없었다고 한다.
전 전 의원은 “(모자를 씌워주려고) 일어나자 카메라 플래시가 엄청터졌고‘실컷 찍으세요’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모자를 씌워드렸다”며 “그때까지도 미동이 없어 참 냉혹한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