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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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은 국민경제자문회의의 부의장이다.
▲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국민경제의 발전 전략과 주요 정책 방향 수립에 힘쓰고 있다.
1958년 12월16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민주화 운동에 발을 담근 뒤 정계에 입문했다.
정계 입문 당시 진보 계열로 분류됐으나 1990년대 중반 여러 운동권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보수로 전향했다.
김성식은 제15대 총선 당시 통합민주당 후보로, 제16대 총선에선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04년 손학규 경기도지사 시절 정무부지사를 지낸 뒤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서울 관악갑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국회에 입성했다.
김성식은 이후 당 쇄신을 촉구하며 2011년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제19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국회 재입성에 실패했다. 제20대 총선에서는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당 최고위원과 정책위의장 등 당직도 맡았다.
김성식은 이후 일선 정치를 떠나 2021년부터 2025년까지 법무법인 화우의 고문을 맡는 등의 ‘정중동’의 활동을 하며 지내다 약 10년 만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을 맡았다.
- 경영활동의 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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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임명
김성식이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임명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12월28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김성식을 임명했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경제 분야의 대통령 직속 헌법 기구로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해 대통령에게 직접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 이 대통령이 의장을 맡고 김성식이 장관급 부의장을 맡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2025년 12월2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성식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소신이 뚜렷한 개혁 성향의 재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 위원장 등 탁월한 정책 역량을 인정받아 온 분”이라며 “구조적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AI 전환을 이끌 다양한 혁신과제를 이끌 인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김성식은 임명 소감에서 이 대통령과 일면식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성식은 2025년 12월2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명예롭고 무거운 공직임을 직시하고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며 “이재명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다. 저에게 부의장 직책을 맡긴 것은 국민경제자문회의 본연의 역할을 더욱 충실하게 해달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능한 국정으로 성과를 거두어야 나라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이는 대통령의 어깨에만 놓여진 과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에게 참으로 절실한 과제”라며 “그런 마음으로 저는 경제와 민생 분야에서 저의 미흡한 역량이라도 보태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바른미래당 탈당 후 무소속 출마해 낙선
김성식은 2020년 2월6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했다.
김성식은 2020년 2월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바른미래당은 수명을 다했다”며 “잘못된 합당의 주역들이 분란의 축이 됐고 결국 당을 이리저리 찢어버렸다”고 탈당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당 대표는 비상한 전환점을 만드는 대신 파국의 인사로 쐐기를 박아버렸다”며 “힘을 합치고 당을 바로 세우려는 시도들은 무력했고 저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김성식은 2020년 3월3일 무소속으로 제21대 총선 서울시 관악구 갑 선거구 출마를 발표했다.
상대 후보는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후보, 김대호 미래통합당 후보였는데 김대호 후보가 30~40대 비하 및 노인 비하 발언으로 제명되면서 후보자 자격을 상실했다. 이에 유기홍 후보와의 1:1 양강 구도가 성사되면서 야권 단일화 효과를 누리게 됐다.
그러나 득표율 33.5%, 약 5만 표를 받으며 낙선했다. 오히려 4년 전 국민의당 시절보다 근 5천 표, 5%포인트가 줄어들은 수치다. 유기홍은 8만3천 표를 얻어 약 5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이후 김성식은 관악구 지역 신문을 통해 차기 총선 불출마 의사를 밝혔다.
김성식은 2021년 12월8일 지역 신문 ‘관악저널’에 “저는 이제 관악의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국회의원 총선 등 모든 선거에 더 이상 출마하지 않으려 한다”며 “미래 세대들이 관악과 나라의 정치를 새롭게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김성식은 언론을 통해 양당제 자체를 비판하며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을 것을 밝혔으며 법무법인 화우 정책분석 태스크포스(TF) 고문으로 영입됐다.
△국민의당에서 바른미래당까지
김성식은 2016년 2월1일 안철수 의원이 주도한 국민의당에 전격 합류했다. 이후 김성식은 다음날인 2월2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열린 창당대회에서 최고위원에 지명됐다.
김성식은 2016년 4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당 후보로 서울시 관악구 갑 선거구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
김성식은 2016년 하반기에는 당 정책을 총괄하는 정책위원회 의장과 최고위원직, 정부 예산을 감시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는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업무, 당해 예산을 결산하고 다음해 예산을 세우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와 저출산고령화대책 특별위원회까지 겸직했다. 이후 업무 과중을 사유로 예산결산특별위원직을 사임하기도 했다.
김성식은 박근혜 탄핵 정국 동안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지속했으며 박근혜 탄핵 소추안에는 “국민 편이냐, 박 대통령 편이냐에 모든 의원은 자신의 직을 걸고 결단해야 한다”며 찬성했다. 이후 2017년 3월10일 탄핵이 선고될 때까지 박근혜 대통령 퇴진 운동에 참여했다.
이후 김성식은 2017년 12월25일 ‘촛불의 분노를 넘어 국민들이 삶의 꿈을 꿀 수 있게, 더 큰 민심을 담아내어 집권하는 당으로 혁신’을 모토로 재선의 권은희 의원과 러닝메이트로 국민의당 원내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2017년 12월29일 열린 당 경선에서 주승용·조배숙 의원에 밀려 패했다.
김성식은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캠프 총괄선거대책부본부장·전략본부장에 임명됐고 대선 이후에는 국민의당 복지 및 조세재정 개혁 태스크포스(TF)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김성식은 2018년 2월13일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한 바른미래당에 합류했다.
김성식은 또한 2018년 제7회 지방선거 이후 문재인 정부로부터 협치내각 구성을 위한 산업통상자원부장관직을 제의받았지만 이를 거절했다.
△한나라당 탈당
▲ 김성식 의원(왼쪽)과 정태근 의원이 2011년 11월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식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선거관리위원회 디도스 공격 등 연이은 악재로 홍준표 대표 체제가 무너지고 들어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쇄신안을 거부하자 2011년 12월13일 재창당 수준의 쇄신을 요구하며 동료 의원인 정태근 의원과 함께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김성식은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 후보로 서울특별시 관악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전직 지역구 국회의원인 유기홍 민주통합당 후보에 밀려 2위로 낙선했다.
이후 김성식은 2012년 10월7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진심캠프에 공동선거대책본부장으로 합류했다.
그는 2014년 1월22일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다시 한번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으나 2014년 3월2일 새정치연합이 민주당과 통합 이후 신당 창당을 발표하자 합류를 거부하고 근신에 들어갔다.
△국회 입성
김성식은 2008년 제18대 총선에서 서울시 관악갑 선거구에 출마해 현역 의원이었던 유기홍 통합민주당 후보를 꺾고 세 번의 낙선 끝에 국회에 입성했다.
김성식은 한나라당 내 몇 안 되는 ‘개혁 소장파’로서 국회에 입성한 뒤 3선급 초선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을 역임하며 부자 추가 감세 철회, 대학 등록금 경감, 청년창업 등 일자리 예산 증액, 보육 지원 정책 강화, 저소득 근로자에 대한 사회 보험료 지원 정책, 비정규직 차별해소 정책 등을 주도했다.
그는 또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으로 활동하며 이명박 정부의 법인세 인하를 막고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정3법’(국가재정법, 공공기관의 운용에 관한 법률,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을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2012년에는 협동조합 기본법을 주도적으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정계 입문부터 보수 전향까지
김성식이 정계에 입문했다.
김성식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던 통합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서울시 동대문구을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현역 지역구 의원이었던 김영구 신한국당 후보에 밀려 13.48%의 득표에 그쳤고 3위로 낙선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당해 한나라당을 창당하면서 김성식은 한나라당에 합류하게 됐다. 한나라당 입당 후 부대변인을 지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시 관악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이훈평 새천년민주당 후보에 밀려 2위로 낙선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관악구 갑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유기홍 열린우리당 후보에 밀려 2위로 낙선했다.
그러나 김성식은 원외 인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로 현직 국회의원이 맡는 경제 및 예산 관련 7개 국회 상임위원회를 관장하는 한나라당 제2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경제·예산 담당)에 선임되기도 했고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제안으로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경기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 당시에는 손학규 선거캠프에서 정무특별보좌역으로도 활동했다.
△민주화 운동
김성식이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김성식은 1977년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에 77학번으로 진학했다. 이후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김성식은 1978년 10월 유신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가 구속됐다.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뒤 1986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정책실 기획부장으로서 물가, 임금, 복지정책 등을 담당했다. 이때 민주화 운동에 헌신하다 체포돼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았다.
노태우 정부 당시 사면복권 됐는데 당시 민주화 유공자 보상금을 지급받았으나 수령을 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비전과 과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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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전과 과제김성식은 ‘구조적 경제위기 극복’과 ‘인공지능(AI) 전환을 통한 경제 혁신’을 위한 경제정책 수립 및 자문의 과제를 안고 있다.
▲ 김성식 바른미래당 의원이 2019년 6월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김현준 국세청장 후보자에게 질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합리적 중도 성향의 경제 전문가로서 이재명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에서 경제 정책 수립 및 집행에 이바지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는다.
국민경제자문회의는 경제 분야의 대통령 직속 헌법 기구로 주요 경제 정책에 대해 대통령에게 직접 조언하는 역할을 한다.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은 합리적 중도 관점에서의 경제 정책 자문을 통해 대통령실과 내각을 지원해야 한다.
특히 AI 및 신성장 동력 자문 등 국가 과학기술 역량과 연계한 AI 전환, 생산성 향상 방안 모색 등이 주요 과제로 제시된다.
덧붙여 소통 및 정책 신뢰도 확보 또한 주요 과제다.
보수 출신 인사로서의 발탁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이견을 조율하고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김성식은 정치적 일선을 떠나 전문성을 인정받아 중용된 만큼 이재명 정부의 높은 기대를 받고 있다.
◆ 평가김성식은 중도 개혁 성향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 김성식 의원이 2020년 3월3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4·15 총선에서 서울 관악갑에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식은 한나라당과 국민의당을 거친 재선 국회의원 출신으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와 4차 산업혁명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한 ‘정책통’이다.
이재명 정부의 대통령실은 김성식을 두고 “구조적 경제 위기 극복과 인공지능(AI) 전환 등 혁신과제를 이끌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재명 정부의 김성식 임명과 관련해 여야를 가리지 않는 인사를 통해 ‘능력 중심·경제 실용’ 국정 운영을 본격화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메시지라는 평가가 정치권에서 나왔다.
아울러 김성식은 ‘합리적 중도’ 인사로도 꼽힌다.
김성식은 15대 총선 당시 통합민주당 후보로, 16대 총선에선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2004년 손학규 경기도지사 시절 정무부지사를 지낸 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서울 관악구 갑 선거구에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국회에 입성했다.
그는 당 쇄신을 촉구하며 2011년 한나라당을 탈당했고 19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대 총선에선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당 최고위원과 정책위의장 등 당직도 맡았다.
그의 잦은 탈당 및 합류도 그의 성격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성식은 정치적 상황 변화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여러 정당을 옮기며 탈당을 반복해 왔고 이는 그의 정치 이력에서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김성식의 잦은 이적과 탈당을 두고 개인의 정치적 신념과 당의 방향성 차이, 당내 갈등 등이 주요 원인으로 언급됐으며 당이 대의를 잃었다는 판단이 잦은 탈당의 배경이 되곤 했다고 평가받는다.
- 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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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선거 운동으로 벌금형
김성식이 의원직이 유지되는 수준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이광만 부장판사)는 2008년 11월18일 김성식에게 벌금 80만 원을 선고했다.
공직선거법은 이 법 위반으로 100만 원 이상을 선고받으면 당선이 무효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김성식의 의원직에는 영향이 없었다.
재판부는 “선관위에 문서를 배부해도 되는지 사전에 문의했고 규정을 잘 모르는 직원이 잘못된 답변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유사 사례에 대한 대법원 판례도 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몇 차례 회답했다”며 “선관위 홈페이지를 찾아보는 등 좀 더 노력했다면 위법임을 알 수 있는 것이므로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예비 후보자는 개별 유권자에게 직접 명함을 주며 지지를 호소할 수 있을 뿐인데 행사에 참석해 다수의 유권자 앞에서 전체를 대상으로 인사하며 지지해달라고 한 것은 이런 한계를 벗어난 것”이라며 공소사실 모두에 대해 유죄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미리 선관위에 문의하는 등 나름대로 선거법을 지키려 노력했고 당원 교육에 참석한 사람에게만 문서를 배부했으며 축구회 시무식 등 선거법을 위반한 행사가 김 의원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고 경쟁 관계의 다른 예비 후보도 참석해 인사말을 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김성식은 2008년 18대 총선 운동 기간 전에 선거구 내 축구회 시무식 등에 참석해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을 호소하고 당원 모임에서 홍보물을 배포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불구속기소 됐었다.
- 경력/학력/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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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1984년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 정책기획부장이 됐다.
▲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원회 의장(오른쪽)이 2016년 10월1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991년 서울시의원선거에 민중당 후보로 출마했다.
1992년 한국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을 맡았다.
1993년 사단법인 나라정책연구원 정책기획실장을 지냈다.
1994년 시사 평론가로 활동했다.
1996년 통합민주당 부대변인·정책실장을 지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선거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한나라당 서울관악구갑지구당 위원장을 맡았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선거에 한나라당 서울관악구갑 후보로 출마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한나라당 제2정책조정위원장(경제·예산 담당)을 지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선거에 한나라당 서울관악구갑 후보로 출마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경기도 정무부지사를 맡았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서울 관악구갑, 한나라당)이 됐다.
2008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08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일자리특별위원회 위원이 됐다.
2008년 한나라당 초선위원모임 ‘민본 21’ 초대 간사를 맡았다.
2011년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기획재정·정무·예산결산 담당)이 됐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관악구갑에 출마했다.
2012년 안철수 대통령후보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이 됐다.
2014년 ‘국민과 함께하는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2016년 국민의당 최고위원이 됐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서울관악구갑, 국민의당)이 됐다.
2016년 국민의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지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국민의당 서울관악구갑지역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6년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6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2016년 국회 저출산·고령화대책특별위원회 위원이 됐다.
2017년 국민의당 수권비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2017년 국민의당 제19대 안철수 대통령후보 중앙선거대책본부 총괄부본부장 겸 전략본부장이 됐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국민의당 복지 및 조세재정개혁태스크포스(TF) 위원장을 지냈다.
2017년 국회 4차산업혁명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됐다.
201년부터 2020년까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를 역임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바른미래당 서울관악구갑지역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2020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위원이 됐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서울관악구갑에 출마했다.
2021년 국회의장직속 국회국민통합위원회 경제분과 위원으로 활동했다.
2021년 법무법인 화우 고문을 맡았다.
2025년 12월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에 임명됐다.
◆ 학력
1977년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4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왔다.
◆ 가족관계
배우자와 딸 하나를 두고 있다.
◆ 상훈
2018년 국회예산정책처 창립15주년 공로패 국회의장 표창을 받았다.
◆ 기타
10년 전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16년 8월25일 게재한 ‘국회공보 제2016-78호(제20대국회신규의원재산공개)’를 보면 김성식은 본인과 모친의 아파트 총 4억600만 원, 본인과 배우자, 모친 등이 예금 2억2097만4천 원, 본인과 모친의 채무 3억4191만4천 원 등을 포함해 총 2억9504만7천 원을 신고했다.
저서로 ‘김성식의 초선탐구생활 - 국회의원? 뭐하는 사람이야!’(2011), ‘한국경제의 새틀을 찾아’(2009) ‘통계로 풀어보는 서울시행정’(1991) 등이 있다.
육군 제15보병사단에서 군 복무를 시작해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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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롭고 무거운 공직임을 직시하고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이재명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다. 저에게 부의장 직책을 맡긴 것은 국민경제자문회의 본연의 역할을 더욱 충실하게 해달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유능한 국정으로 성과를 거두어야 나라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이는 대통령의 어깨에만 놓여진 과제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에게 참으로 절실한 과제다. 그런 마음으로 저는 경제와 민생 분야에서 저의 미흡한 역량이라도 보태고자 한다.” (2025/12/28,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으로 임명된 소감을 밝히며)
▲ 김성식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018년 5월2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는 이제 관악의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고 국회의원 총선 등 모든 선거에 더 이상 출마하지 않으려 한다. 미래 세대들이 관악과 나라의 정치를 새롭게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드리고자 한다. 20년 넘게 관악에서 정치를 하면서 구민들로부터 과분한 성원을 받아왔다. 이제는 제가 물러날 때다. 관악 정치가 미래로 나아가는 변화의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2021/12/08, 지역 신문 ‘관악저널’에서 이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낡은 싸움질 정치를 새 시대의 문제해결 정치로 바꾸는 디딤돌이 되겠다.” (2020/03/03, 자신의 블로그에서 21대 총선 출마를 발표하며)
“며칠간 참담한 심경으로 묵언의 시간을 보냈다. 이제 말씀드려야 할 때다. 바른미래당은 수명을 다했다. 잘못된 합당의 주역들이 분란의 축이 됐고 결국 당을 이리저리 찢어버렸다. 당 대표는 비상한 전환점을 만드는 대신 파국의 인사로 쐐기를 박아버렸다. 힘을 합치고 당을 바로 세우려는 시도들은 무력했고 저도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국민과 당원들께 참으로 부끄럽고 송구합니다.” (2020/02/05,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바른미래당 탈당 이유를 설명하며)
“새정치의 뜻을 잃지 않는다면 통합도 나름 길이 될 수 있다. 잘 되길 기원한다. 어느 길이 절대 선인지 가늠할 능력조차 제겐 없다. 다만 새로운 대안 정당을 만들어 우리 정치 구조 자체를 바꿔보려는 꿈이 간절했기에, 그 꿈을 나누는 과정에서 쌓은 업보는 제가 안고 가야 하기에, 저는 고개부터 숙이고 오랜 기간 홀로 근신하고자 한다. 고민은 없다. 꿈을 가슴에 묻는 아픔이 있을 뿐이다. 그 또한 저의 부족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014/03/02, 자신의 블로그에서 새정치연합이 민주당과 통합 이후 신당 창당을 발표하자 합류를 거부하며)
“안(철수) 후보와 함께 하는 새로운 정치의 작은 홀씨가 되고자 한다.” (2012/10/07, 공평동에 위치한 안철수 후보 대통령 선거캠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합류를 밝히며)
“현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국정 운영이 나를 힘들게 했다. 국회를 도구화하려는 청와대를 향해 반대표를 던지고 기권표를 던지는 것이 매우 피곤했다. 나의 내면에는 그 어떠한 형태의 억누름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긴급조치 시대 속을 살았던 저항의 DNA가 있는 것 같다. 청와대가 해달라고 하니까 밀어붙이기식으로 하는 것은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소속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라는 국회의원의 임무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자유인 김성식과는 맞지 않다.” (2012/01/18,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 탈당 이유를 밝히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