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2020년 2월, 지주사 한진칼은 2월7일 이사회를 열고 재무구조·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한 경영 쇄신안을 발표했다. 

5년6개월이 지난 현재 한진그룹 당시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매각 대상으로 발표한 비핵심자산 가운데 다수를 매각하면서, 재무건전성 개선에 상당부분 성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조원태 한진그룹 경영쇄신 5년 '절반의 성공', 3대 부실 계열사 매각은 여전히 숙제

▲ 한진그룹이 비핵심자산, 비주력사업 매각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발표한지 5년6개월이 지나면서 한진그룹의 재무건전성이 크게 개선됐다. 다만 제주칼호텔, 한진인터내셔널, 왕산레저개발 등의 부실 계열사의 매각은 여전히 진척되지 않고 있다. <한진그룹>


다만 아직 제주칼호텔, 왕산레저개발, 한진인터내셔널 등 당시 매각을 검토한 비핵심 계열사들 매각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이들의 경영 부실이 그룹 재무건전성을 더 개선하는 데 발목을 잡고 있다.

그룹 주력 계열사 대한항공이 향후 아시아나항공과 통합을 앞두고 기단 현대화, 노선 확대 등 대규모 투자 자금이 필요한 가운데 부실 계열사의 매각이 시급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한진그룹 계열사 칼호텔네트워크의 인천 그랜드하얏트호텔 일부 매각에 따라 한진그룹이 2020년 발표한 재무구조 개선 계획에서 ‘살생부’ 목록에 올랐던 비핵심 자산 절반이 정리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진그룹 계열사 칼호텔네트워크는 지난 23일 그랜드하얏트인천 웨스트타워를 2100억 원에 파라다이스그룹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앞서 한진칼이 지난 2024년 4월 미국 하와이에 위치한 리조트 운영법인 와이키키리조트호텔을 1400억 원에 대명소노그룹에 처분한 뒤, 약 1년 반만에 호텔 자산을 추가 매각하는 것이다. 

한진그룹은 그간 △대한항공 송현동 부지 5579억 원 △대한항공 기내식·기내면세 사업 7900억 원 △공항버스 사업 96억 원 △골프사업 계열사 230억 원 등의 비핵심자산 매각으로 유동성을 확보했다.

이에 따라 한진그룹의 재무건전성 지표는 지난 5년 간 크게 개선됐다.

지주사 한진칼은 2019년 연결기준으로 총차입금 9508억 원, 부채비율 107.0%, 차입금의존도 41.1%를 기록했다.

당시 한국신용평가는 “항공기, 물류 인프라 등에 대한 투자부담으로 2019년 말 주요 계열사 합산기준 부채비율은 536.3%, 차입금의존도는 60.2%, 총차입금 20조2000억 원에 달한다”며 “계열 재무부담이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한진그룹의 재무구조 개선 노력으로 2023년 말에는 주요 계열사 합산 한진그룹의 부채비율은 170.1%, 차입금의존도는 35.4%로 낮아졌다. 

2024년 말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그룹 합산 부채비율은 250.7%, 차입금의존도는 39.9%로 늘어났지만, 재무적으로 부실했던 아시아나항공을 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19년과 비교해 한진그룹의 재무건전성이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다.

해당 기간 국내 3대 신용평가사 가운데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BBB였던 한진칼 신용등급을 ‘A-’로 2단계 상향했다.

다만 아직 제주칼호텔, 왕산레저개발, 한진인터내셔널 등의 매각은 5년이 넘도록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가 지난 7월 제주칼호텔(2022년 운영종료) 인수 타당성 검토 결과 사업성이 부족하다며, 인수의사를 철회하면서 제주칼호텔 매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앞서 2022년에는 제주드림PFV(무궁화신탁)가 제주칼호텔을 950억 원에 인수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가 잔금을 납부하지 않아 계약이 파기되기도 했다.

왕산레저개발은 인천 중구 왕산해수욕장에서 해양레저시설 ‘왕산마리나’의 운영사다. 대한항공은 2020년 칸서스자산운용-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고 1300억 원에 매각하고자 했으나 이 역시 무산됐다.

왕산레저개발은 2016년 설립된 이후로 지속적으로 적자를 내고 있다. 대한항공이 해당 기간 왕산레저개발에 출자한 금액만 누적 1394억 원에 이르는 등 재무적 부담을 떠안았다.

한진인터내셔널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호텔과 오피스 등으로 구성된 상업빌딩 ‘월셔그랜드센터’ 운영법인이다.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다. 

총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지은 월셔그랜드센터가 2017년 개장했지만, 사무실 임대실적 부진으로 적자를 지속했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경영은 더욱 악화됐다.

대한항공은 2023년 2월 9300억 원, 2024년 6월 5510억 원을 추가 출자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 계획 발표 이후에도 한진인터내셔널에만 1조4910억 원을 투입했다. 한진인터내셔널은 올해 상반기에도 매출 658억 원에 순손실 563억 원을 거두며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경영쇄신 5년 '절반의 성공', 3대 부실 계열사 매각은 여전히 숙제

▲ 대한항공이 8월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소재 윌러드호텔에서 보잉, GE에어로스페이스와 70조 원 규모의 항공기 및 엔진 구매 양해각서를 체결한 가운데 (왼쪽부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스테퍼니 포프 보잉 상용기 부문 사장 겸 최고경영자, 러셀 스톡스 GE에어로스페이스 상용기 엔진 및 서비스 사업부 사장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항공>


실적 부진 계열사들 매각이 지체되면서, 대한항공의 추가 재무 부담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한항공은 오는 2027년 예정된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앞두고, 운영효율이 높은 차세대 기종을 도입하는 기단 현대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예고한 상태다.

대한항공의 올해 상반기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회사는 2033년 3월까지 61조9428억 원을 투자해 차세대 항공기를 도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 지난 8월 말 한미 정상회담 기간에 대한항공은 보잉·GE에어로스페이스·CFIM 등과 합산 70조 원 규모의 항공기·항공엔진을 도입하겠다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대한항공은 2022년부터 2032년까지 연평균 3조 원 이상의 자본적지출(CAPEX)을 집행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상회담에서 구매하기로 한 항공기의 실질 투자금액은 25조 원 내외이며, 2030년 말부터 연간 2조5천억~3조 원 수준의 투자 지출이 이어질 것으로 추정한다”고 분석했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