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영활동의 공과
- 비전과 과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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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생명보험사 오너 중 유일하게 경영에 참가한 인물이다. 교보생명의 건실한 재무구조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줬다.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교보생명의 내실성장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처음 교보생명 경영에 참여했을 때는 반발을 많이 샀다. 2006년 임원들이 집단으로 사의를 표명하는 일도 발생했다. 산부인과 의사 출신이 보험회사 경영을 알지 못한다는 평가도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포브스는 2010년 5월 글로벌판에서 신창재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며 ‘한 번도 경영인을 꿈꾸지 않았던 의사 출신이나 교보생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평소 격의 없는 소통방식을 보여주려 노력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직접 우수 재무설계사를 시상하는 ‘고객만족대상’ 시상식에 참여해 개그맨들과 함께 공연을 펼치거나 샌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다.
은행 인수를 여러 번 시도했으며 2014년 들어 우리은행 인수를 공식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보험업계 전문가들은 신창재가 ‘어슈어뱅크’(보험사가 소유한 금융사)를 만들려는 것으로 봤다.
이들은 신창재가 우리은행을 인수해 교보생명의 몸집을 불리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그는 2008년에 교보생명 창립 50주년을 맞아 2015년까지 교보생명을 자산 100조 원에 연간 1조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리는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대형 생명보험사들 중 유일하게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았을 정도로 외부 경영간섭에 민감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외국계 주주들의 지분 비중이 높은 교보생명 특성상 경영권 방어에 힘을 쏟고 있다.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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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1987년부터 1995년까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일했다. 1993년 11월부터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교보생명그룹과 인연을 맺었다.
1996년 11월 아버지의 부름으로 교보생명 부회장에 임명되면서 기업 경영에 참여했다. 2000년 5월 교보생명 회장직을 물려받은 뒤 지금까지 대표이사 회장직을 맡고 있다.
2010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G20 비즈니스서밋에서 금융분야 한국대표를 맡기도 했다.
◆ 학력
서울 중앙중학교와 경기고를 거쳐 1978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1989년 동 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산부인과 전공을 택해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다.
◆ 가족관계
아버지인 신용호는 교보생명 창업주로 ‘대산’이란 호로 더 잘 알려졌다. 1958년 교보생명을 창업한 뒤 현재 규모로 기업을 키웠다. 어머니 유순이는 가정주부로 2012년 별세했다. 삼촌인 신용희 전 회장은 신용호 창업주의 교보생명 창업을 도운 뒤 부사장과 회장직을 역임했다.
동생인 신문재 전 교보핫트랙스 대표는 2012년 계열분리를 한 뒤 서적문구 도소매업 회사인 ‘디자이너이미지’ 를 창업했다. 여동생인 신영애와 신경애는 회사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촌인 신인재 필링크 사장은 교보생명 주식 3.5%를 보유 중이다. 다른 사촌인 신동재는 2000년까지 교보생명그룹 부동산관리 전문 자회사인 교보리얼코 회장을 지냈다가 별세했다. 신평재 전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 이사장도 사촌이다.
부인이었던 정혜원 봄빛여성재단 이사장은 2010년 별세했다. 정혜원 이사장과의 사이에서 장남 신중하와 차남 신중현이 태어났다. 신창재는 2013년 11월 40대 초반 나이의 여성과 재혼했으며 새로 맞이한 아내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 상훈
2001년 한국능률협회 최고경영자상을 받았다. 2003년엔 한국기업윤리학회에서 제1회 기업윤리대상을 수상했다. 2004년 한국전문경영인학회에서 주는 한국CEO대상을 탔다.
2008년에는 IMI 경영대상 사회공헌 부문상을 수상했다. 2010년 제19회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을 탔다. 2012년에는 매경이코노미가 선정한 ‘올해의 CEO’에 들어갔으며 같은해 ‘올해의 아시아 최고 보험경영자상’을 수상했다.
◆ 상훈
2001년 한국능률협회 최고경영자상을 받았다. 2003년엔 한국기업윤리학회에서 제1회 기업윤리대상을 수상했다. 2004년 한국전문경영인학회에서 주는 한국CEO대상을 탔다.
2008년에는 IMI 경영대상 사회공헌 부문상을 수상했다. 2010년 제19회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을 탔다. 2012년에는 매경이코노미가 선정한 ‘올해의 CEO’에 들어갔으며 같은해 ‘올해의 아시아 최고 보험경영자상’을 수상했다.
-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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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혁신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경영층부터 ‘업’의 본질을 잘 알고, 나부터, 윗사람부터, 쉬운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2005/11/25, 교보생명 임원들과 함께 3주간 FP 교육과정에 참여하면서)
“내가 망원경으로 산을 본다면, 사원들은 산기슭에서 나무 하나하나를 아는 현장 전문가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걸 내가 건드리는 건 좋지 않다.” (2010/05/20,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기업 경영에 대해 대답하며)
“지금까진 자생적 성장만 추구했으나 인수합병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좋은 매물이 있다면 언제든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다.” (2011/01/26,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교보생명의 인수합병 전략에 대해 물어보자)
“우리은행 매각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이 나오면 인수를 검토할 계획이다. 10년 전부터 은행이 하나 있으면 (포트폴리오 구성에)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왔다.” (2014/01/03,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교보생명의 우리은행 인수 의사를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 평가
생명보험사 오너 중 유일하게 경영에 참가한 인물이다. 교보생명의 건실한 재무구조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줬다.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교보생명의 내실성장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처음 교보생명 경영에 참여했을 때는 반발을 많이 샀다. 2006년 임원들이 집단으로 사의를 표명하는 일도 발생했다. 산부인과 의사 출신이 보험회사 경영을 알지 못한다는 평가도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포브스는 2010년 5월 글로벌판에서 신창재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며 ‘한 번도 경영인을 꿈꾸지 않았던 의사 출신이나 교보생명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다’고 평가했다.
평소 격의 없는 소통방식을 보여주려 노력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직접 우수 재무설계사를 시상하는 ‘고객만족대상’ 시상식에 참여해 개그맨들과 함께 공연을 펼치거나 샌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다.
은행 인수를 여러 번 시도했으며 2014년 들어 우리은행 인수를 공식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보험업계 전문가들은 신창재가 ‘어슈어뱅크’(보험사가 소유한 금융사)를 만들려는 것으로 봤다.
이들은 신창재가 우리은행을 인수해 교보생명의 몸집을 불리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그는 2008년에 교보생명 창립 50주년을 맞아 2015년까지 교보생명을 자산 100조 원에 연간 1조 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리는 기업으로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대형 생명보험사들 중 유일하게 기업공개(IPO)를 하지 않았을 정도로 외부 경영간섭에 민감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외국계 주주들의 지분 비중이 높은 교보생명 특성상 경영권 방어에 힘을 쏟고 있다.
◆ 기타
보유 주식 가치가 2013년 말 기준으로 1조9914억 원에 이르러 국내 100대 그룹 총수 중 6위를 차지했다. 금융그룹 총수 중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에 이어 두 번째로 순위가 높다. 같은 시기 교보생명은 재계 순위 43위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출신으로 다른 직업을 가진 ‘경의회’(경계를 넘나드는 의사회) 모임 회원으로 여기엔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 박용현 전 두산그룹 회장, 김철준 한독약품 대표, 신상진 전 새누리당 의원 등이 속해 있다.
지난해 11월 결혼한 40대 초반의 여성은 이화여자대학교 교직원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