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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왼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오른쪽) <뉴시스>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형제 리스크’가 또 다시 터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이 박삼구 회장의 경영 복귀를 저지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2006년부터 이어지는 형제갈등은 올해로 9년째에 접어들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주주총회가 오는 27일 열린다. 이 주총에서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그룹(금호석화)이 박삼구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에 반대할 거라고 금호석화는 24일 밝혔다. 금호석화의 한 관계자는 “현재 그룹의 경영실적이 부진한 데에 박삼구 회장의 책임이 크다”라며 “이번 주총에서 2대주주로서 아시아나항공을 지키는데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삼구 회장이 지속적으로 동생 박찬구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는 까닭은 형제가 나란히 아시아나항공의 실질적인 1·2대 주주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아시아나항공의 지분은 없지만 금호산업과 금호석화를 통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는 금호산업이다. 아시아나항공 지분 30.08%를 보유하고 있다. 박삼구 회장은 금호산업 지분 7.23%로 금호산업을 지배하고 있다. 박삼구 회장의 아들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도 금호산업 지분 6.96%를 보유하고 있어 부자의 지배력은 공고하다.
금호석화는 아시아나항공 지분 12.61%를 가진 2대 주주다. 금호석화의 최대주주는 지분 10%를 보유한 박철완 금호석화 상무인데, 박찬구 회장의 형인 고 박정구 금호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하지만 박찬구 회장과 그의 아들 박준경 금호석화 부장이 각각 6.67%와 7.17%의 금호석화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실질적 지배자는 박찬구 회장 부자이다.
현재 상황에서 박삼구 회장의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인 만큼 박찬구 회장의 반대표는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하지만 박찬구 회장은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의 상호출자구조를 노리고 있다. 양 사의 상호출자구조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주총에서 금호석화가 금호산업을 제치고 아시아나항공의 최대 의결권자로 올라설 수 있다.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과 상호출자구조에 놓이게 된 것은 지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호산업은 2009년 말 유동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기업어음(CP)을 발행했는데 아시아나항공이 이 기업어음의 일부를 매입했다. 금호산업은 지난해 9월 모든 기업어음을 상환하지 못하고 일부를 출자전환했는데,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790억원 상당의 기업어음도 포함됐다. 이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10월부터 금호산업 지분을 12.83%나 보유하게 됐다.
문제는 두 회사가 상호출자구조로 묶이게 되면 주총에서 의결권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두 법인이 서로 지분을 10% 이상 보유하면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회사로 지정돼 의결권 행사가 제한된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30.08%를 보유하고 있고 아시아나항공도 금호산업의 지분 12.83%를 보유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은 대기업집단의 상호출자를 발생 후 6개월 이내에 해소토록 하고 있는데 아시아나의 해소 시안은 오는 4월22일이다.
박삼구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의 경영에 복귀하고 의결권을 행사하려면 아시아나항공이 가진 금호산업 지분을 주총 전까지 10%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2대 주주인 금호석화가 최대 의결권자로 등극한다. 박삼구 회장으로선 최악의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박삼구 회장은 일단 25일 총수익맞교환(TRS, Total Returns Swap) 방식으로 아시아나항공의 금호산업 지분 일부를 매각한다. 박삼구 회장은 주총인 27일 전에 금호산업 주식 161만3800주(4.90%)를 매각해 의결권을 되찾기로 했다. 나머지 261만798주(7.93%)의 매각은 오는 4월21일 이뤄질 예정이다. 2차 매각방식은 대표이사에게 위임한다고 공시했지만 업계는 1차와 동일한 형태로 진행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박삼구 회장이 1차 지분매각을 통해 일단 급한 불을 끄겠지만 아직 안심하기 어렵다. 박찬구 회장이 매각과 관련해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박찬구 회장이 이번 총수익맞교환 방식의 매각을 물고 늘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박삼구 회장이 이 방식을 선택한 까닭은 혹시 모를 배임 의혹을 사전에 피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금호산업이 아직 워크아웃 상태인 만큼 시장에 그대로 내놓을 경우 제값을 받기 어렵다. 따라서 박삼구 회장은 제3세력을 우호지분으로 유치하는 이런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박삼구 회장은 이 방식에 따라 지난 21일 종가인 1만2150원을 기준으로 총 513억2887만 원을 회수할 수 있다.
그러나 총수익맞교환 방식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매수측에 최소 투자수익과 투자손실을 보전해줘야 한다. 매각 후 금호산업의 주가가 떨어지면 그만큼의 손실보전 위험을 안게 되는 것이다. 업계는 이런 상황이 연출될 경우 박삼구 회장이 박찬구 회장 측으로부터 배임으로 고발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또 채권단의 승인도 아직은 미지수다. 아시아나항공의 지난해 실적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112억3500만 원의 영업손실과 1146억6490만 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따라서 채권단이 박삼구 회장이 아닌 박찬구 회장의 편에 설 가능성도 없지 않다.
금호석화는 이미 아시아나항공의 이번 매각 결정에 법적 조치를 할지 검토하고 있다. 금호석화 관계자는 “총수익맞교환 방식은 진정한 매각(진성매각)이 아니며 오직 상호출자제한 해소를 위한 대출거래와 다르지 않다”며 “아시아나항공이 매수측에 확정금리를 약속하고 손실보전을 제공한 것은 공정거래법상 탈법”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