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을 촉발한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법관 사찰과 재판 개입 등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 부장판사는 23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며 "이 자리에 서게 된 것만으로도 한없이 참담하고 부끄럽지만 검찰에 출석해 진술하게 된 이상 아는 대로 사실대로 진술하겠다"고 말했다.
▲ 이규진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23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한 이 부장판사를 상대로 각종 의혹들에 어디까지 관여했는지, 누구의 지시를 받고 누구에게 보고했는지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장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재임 시절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사법행정에 비판적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법관들에게 압력을 넣은 혐의를 받는다.
이현숙 전 통합진보당 전북도의원이 2015년 제기한 지방의원 지위 확인 소송과 관련해 재판부 심증을 미리 빼내는 한편 선고 기일을 연기하고 '이 소송은 헌재가 아닌 법원 권한'이라는 내용을 판결문에 적어달라고 요청했다는 의혹도 있다.
검찰은 이 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에게 법관사찰을 비롯한 의혹 문건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단서를 잡고 증거를 인멸해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검찰은 최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의 PC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2017년 2월 법관사찰 등 의혹 문건들이 대거 사라진 흔적을 발견하고 당시 심의관들로부터 "이 부장판사 지시로 문제가 될 만한 문건을 지웠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 부장판사가 연루된 각종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의 배경에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이 있었다고 보고 '윗선'의 개입 여부를 집중적으로 캐묻고 있다.
이 부장판사는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 난 이탄희 판사에게 "기조실 PC에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고 말했다가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을 촉발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 의혹은 세 차례 법원 자체조사를 거치면서 청와대가 개입한 재판 거래 의혹으로 확대됐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