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준형 롯데지주 대표이사 사장(왼쪽)과 고정욱 롯데지주 대표이사 사장. 두 사람은 3년 만에 부활한 롯데지주 공동대표이사의 주인공이 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3년 만에 롯데지주에 투톱체제를 부활시키면서 ‘전략·기획통’인 노준형 사장과 ‘재무통’인 고정욱 사장 등 2명의 베테랑을 공동대표이사로 선임한 것은 이런 사정을 고려한 결단으로 해석된다.
무게감 있는 인사를 수장에 앉혀 그룹 경영의 키를 강하게 틀어쥐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롯데그룹이 갈팡질팡하는 신사업에서 앞으로 이렇다 할 성과를 내느냐 마느냐는 노 사장과 고 사장의 역량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평가이다.
16일 롯데그룹 안팎에 따르면 롯데지주가 11월 말 실시된 정기 임원인사에 따른 조직정비를 얼추 마무리하고 새 시스템 가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다른 계열사로 전출된 기존 임원의 업무를 다른 계열사에서 새로 부임한 임원들이 대부분 인계하면서 관련 부서의 향후 업무 계획이 대강 정리됐다는 뜻이다. 사업 총괄 체제 폐지에 따른 후속 인사가 예정되어 있지만 인사 직후 어수선했던 상황은 대부분 정리된 것으로 파악된다.
롯데지주에서 생겨난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오너인 신동빈 대표이사 회장을 제외한 전문경영인 공동대표이사 체제의 부활이다.
최근 인사에서 경영혁신실장을 맡고 있던 노준형 사장과 재무혁신실장을 맡고 있던 고정욱 사장은 기존 역할을 내려놓고 롯데지주의 공동대표이사를 맡게 됐다. 롯데지주가 두 명의 공동대표이사를 둔 것은 2022년 말 이후 3년 만이다.
롯데지주는 이전까지 대체로 송용덕·황각규 공동대표이사, 송용덕·이동우 공동대표이사 등 쌍두체제를 유지하다가 2022년 말부터 이동우 전 부회장의 원톱체제로 운영됐다.
조직의 운영방식을 뜯어보면 노준형 사장이 큰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전략과 기획’ 파트를 맡아 롯데그룹의 방향성을 총괄해 지휘할 예정이다.
노 사장보다 한 해 빨리 사장 직함을 단 고정욱 사장은 ‘재무와 경영관리’ 파트를 맡아 노 사장의 그림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한 조력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경영인 베테랑들이 롯데지주의 지휘봉을 공동으로 잡은 것을 놓고 신 회장이 롯데지주에 이전보다 더 많은 힘을 실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롯데그룹 각 계열사들은 사업 총괄 체제가 존속할 때만 하더라도 인사와 재무 등 주요 현안을 놓고 각 사업군 총괄대표에게 보고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운영했다.
하지만 해당 체제 폐지에 따라 앞으로는 어지간한 현안을 롯데지주와 직접 소통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롯데지주가 대부분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게 된 만큼 그만큼 권한도 더 커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 아니겠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롯데그룹 안팎에 놓인 위기를 극복하려면 롯데지주의 계열사 장악력이 더 커져야 한다고 보고 베테랑을 투입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노준형 사장은 경영의 밑그림을 그리는 조직에서만 최소 20년 이상 몸담은 전략 전문가다. 롯데이노베이트 전략기획팀장 거쳐 경영지원부문장, 전략경영본부장, 롯데정보통신 DT사업본부장 역임한 뒤 2023년 롯데지주 ESG경영혁신실장으로 부임했다.
고정욱 사장은 재무 분야에서 잔뼈가 굵었다. 롯데그룹의 금융 계열사인 롯데캐피탈에서 경영전략본부장으로만 7년 가까이 일했고 이후 롯데캐피탈 대표이사도 지냈다. 2021년 말 롯데지주로 자리를 이동해 재무혁신실장(CFO)을 4년째 맡았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지주 관계자는 “사업 총괄 체제가 해체되고 실무형 조직으로 전환하면서 각 계열사를 1대 1로 상대하며 필요한 업무를 지원하는 일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힘이 세졌다기보다는 바쁜 조직이 됐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이전에는 롯데지주 공동대표이사의 직함이 대부분 부회장이었지만 이번에 사장급으로 내려온 만큼 롯데지주의 권력이 더 커졌다고 보기 애매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두 대표 모두 사장으로 승진한 지 이제 1~2년 된 ‘젊은 사장’인 만큼 계열사에 대한 그립을 강하게 쥘 수 있는 힘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롯데그룹이 공식적으로 ‘실무형 조직’이라는 점을 공표한 만큼 장악력을 높일 명분도 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두 사장의 권한이 어느 정도 될 것인지와 별개로 롯데지주에게 중요한 일은 따로 있다. 바로 새 체제를 통해 얼마만큼 빨리 위기 극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것인가이다.
신동빈 회장은 2022년 바이오&웰니스, 모빌리티, 지속가능성, 뉴라이프플랫폼 등 네 가지 분야를 롯데그룹의 새 성장 동력으로 꼽고 이를 집중 투자해 성과를 내겠다는 청사진을 내걸었지만 가시적 성과는 거의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바이오&웰니스의 한 축이었던 롯데헬스케어는 설립 3년도 지나지 않아 청산됐고 미래차 산업을 위해 과감하게 인수했던 2차전지 소재 관련 계열사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그룹의 재무 체력에 부담을 주는 처지로 전락했다.
뉴라이프플랫폼과 관련해 롯데정보통신을 통해 투자해온 메타버스 사업은 투자자들의 관심에서 벗어난 지 오래됐다.
그나마 롯데바이오로직스 정도만이 사업 본궤도에 오른 처지인데 이조차도 앞으로 가시적인 결실을 맺기까지는 시간과 자금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그룹의 주요 축인 유통과 화학, 식품 계열사에서 획기적인 수익성 개선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신사업 추진 동력마저 떨어지는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데 롯데그룹 안팎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