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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마음] 충청도 화법과 교토 화법, 그리고 방어기제 

반유화 yoowha.bhan@gmail.com 2024-10-04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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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마음] 충청도 화법과 교토 화법, 그리고 방어기제 
▲ 교토 화법에는 없는 방어기제가 충청도 화법에는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유머화(humor)이다. 사진은 주요 등장인물들이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드라마 '소년시대'의 한 장면. <쿠팡플레이>
[비즈니스포스트] “기사님, 빨리 좀 가주세요!”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  

“이거 채소값 좀 깎아주세요.” “냅둬유~ 우리집 염소 새끼나 먹이게.” 

“이 차 연비가 좋나요?” “기름 냄새만 맡아도 굴러가유.”

돌려 말하면서도 해학이 넘치는 ‘충청도 화법’에 대한 농담은 이제는 스테디셀러 수준에 이른 것 같다. 거기다 사람들이 각자 겪은 에피소드를 꾸준히 제보하면서 관련 콘텐츠는 점점 더 풍부해지고 있다.  

완곡어법이라는 면에서 충청도 화법과 유사해 함께 자주 언급되는 ‘교토식 화법’도 있다. 
 
“따님의 피아노가 많이 늘었던데요.” (피아노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는 뜻) 
“차 한잔 하고 가세요.” (빨리 집에 가시라는 뜻) 

두 화법을 심리적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의 측면에서 보면 공통점과 차이점이 존재한다. 방어기제는 심리적인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동원하는 무의식적인 수단을 의미하는데, 먼저 두 지역의 공통적 방어기제인 수동공격(passive aggressiveness)을 살펴보자. 

수동공격이란, 대상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간접적인 방법을 통해 불편하게 하는 방식을 말한다. 시킨 일을 잊어버리거나 미루기, 계속 실수하기, 괜찮다고 대답하지만 그렇지 않은 태도 보이기, 비꼬는 느낌으로 말하기 등이 수동공격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수동공격은 직접적으로 화를 내거나 정면대결할 때 발생할 감정적 불편함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교토인은 피아노 소리가 시끄럽다고 대놓고 말함으로 인해 긴장을 겪는 것, 타인을 통제하는 까다로운 사람 취급을 받는 것, 상대의 분노 반응을 마주하는 것을 피하고 싶다.

그렇다고 말없이 시끄러운 소리를 감내하기에는 억울한 마음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직접 공격하지는 않되 어떤 식으로든 소리에 대한 언급을 하는 선에서 타협을 본다. 

충청도인이 모는 택시에서의 대화를 보자. 잘못도 없이 재촉받아 불편함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굳이 따질 일까지는 아니며 긴장을 감당하는 일 역시 부담스럽다. 그렇지만 자신에게 운전을 빨리 해야할 의무는 없다는 사실은 전달하고 싶다. 그렇기에 책임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넌지시 알려준다.    

그런데 교토 화법에는 없는 또다른 방어기제가 충청도 화법에는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유머화(humor)이다. 수동공격이 대부분의 방어기제와 더불어 미성숙한 방어기제로 분류되는데 반해, 유머화는 이타주의, 승화와 더불어 몇 안되는 성숙한 방어기제로 여겨진다.

유머화를 통해 부정적 감정을 재미있게 드러냄으로써 서로의 갈등을 줄이고 그 시간을 더 즐겁게 만들 수 있다.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냐는 기사의 말에 불쾌한 사람보다는, 아마도 피식 웃으며 여유를 갖게 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듣고 나면 하하 웃게 되면서 멋쩍어지는지 아니면 등골이 서늘해지는지 여부를 유머화가 가르는 것이다. 

충청도 화법과 교토 화법은 대체로는 재미 삼아 입에 오르내리지만, 간혹 속을 알 수 없는 지역이라 그렇다는 식으로 부정적인 취급을 받을 때도 있다. (특히 교토 화법이 그렇다.)

이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방어기제는 투사(projection)다. 투사란, 우리 마음 안에 있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이나 욕구를 타인에게 돌려서 타인에게 그것이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행위를 말한다. 외도에 대한 갈망이 있는 사람이 배우자의 외도를 의심하며 추궁하는 행동은 투사의 한 예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나의 욕구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자 하는 욕구를 충청도인과 교토인들에게 투사하면서 가볍게는 재미로, 무겁게는 지역색을 비판하는 행동을 하곤 한다.

우리나라 문화를 보자. ”용돈은 무슨 용돈이야, 넣어둬“(고맙다는 뜻)라는 말에 정말로 돈을 도로 가져가는 사람은 없으며,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우리가 굳이 따로 볼 일은 없을 거라는 뜻)는 말에 서둘러 그 자리에서 약속을 잡았다가는 눈치 없는 사람이 된다. 

우리나라나 일본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시아 사회를 흔히 고맥락(high context) 즉, 상황적 단서를 중시하고 간접적이고 암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구사하는 문화로, 서구 사회를 저맥락(low context) 즉, 직접적인 언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는 문화로 여기지만, 고맥락 사회든 저맥락 사회든 직접적으로 타인에게 거절감을 줄 수 있는 언어표현을 주저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서구인들이 아시아인들의 속마음을 도대체 알 수 없다고 말할 때가 많다지만, 미국인의“interesting!”(관심없다는 뜻)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어쩌면 서구인은 아시아인에게, 아시아인은 일본인에게, 일본인은 교토인에게, 그리고 한국인은 충청도인에게 갈등 회피와 의뭉의 욕구를 투사하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이렇듯 충청도인과 교토인들이 우리 욕구의 혐의를 어느 정도는 대신 짊어져주고 있으며 그 덕분에 우리의 마음이 조금은 가벼운 셈이니, 놀려도 적당히만 놀리면서 즐기자.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 '출근길 심리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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