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배터리용 전해액 사업을 하는 엔켐이 자칫 채무 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말까지 상환해야 하는 금액이 4천억 원에 육박하는데, 경영 악화에 따라 자금 조달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오정강 엔켐 대표이사는 오는 11월 조기상환 청구일이 도래하는 약 240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 일부 조건을 변경해 상환 시점을 연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엔켐 연말 2400억 전환사채·1500억 차입금 상환 '시한폭탄', 오정강 부도 위기 내몰리나

오정강 엔켐 대표이사가 공격적 생산 설비 투자를 단행했으나, 수요 부진이 지속되며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올해 말까지 전환사채 조기 상환분 약 2400억 원과 단기 차입금 1500억 원 상환을 막지 못하면 부도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엔켐>


이번 상환 시점 변경안이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지만, 1500억 원에 달하는 단기 차입금 만기가 연말로 다가오고 있는 것도 문제다. 

엔켐은 연내 나스닥 상장사와의 합병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세계 배터리용 전해액 시장이 중국에 잠식당한 가운데 회사가 안정적 경영 실적 기반을 회복할 수 있을지가 회사의 생사를 가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12일 관련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엔켐이 창사 이래 최대 경영위기를 맞고 있다.

엔켐은 오는 27일 14회차 무기명식 이권부 무보증 전환사채의 일부 조건 변경을 위한 사채권자 집회를 개최한다.

핵심은 오는 11월29일 조기 상환일이 도래하는 2382억 원 규모의 14회차 전환사채 상환 시점을 3년 뒤인 2029년 11월29일까지 연기하자는 것이다.

회사는 지난 2023년부터 선제적으로 북미와 유럽, 중국 등 지역에서 전해액 생산설비 증설 작업을 진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투자금 조달을 위해 대규모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차입 규모를 늘렸으나, 예상보다 수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며 자금난이 심화했다.

최근 세계 전해액 시장이 중국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이 치명적 영향을 미쳤다. 중국 전해액 기업들의 대규모 증설과 중국산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확산으로 한국 전해액 기업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배터리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세계 전해액 시장 점유율의 87.5%를 중국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다. 

엔켐은 올해 1분기 매출 841억 원, 영업손실 242억 원을 냈다. 지난 2024년과 2025년에는 각각 504억 원, 784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공장 가동률이다. 올해 1분기 엔켐 전해액 공장의 가동률은 8.1%에 그쳤다. 지난해 공장 가동률 10.77%보다도 더 떨어진 것이다.
 
엔켐 연말 2400억 전환사채·1500억 차입금 상환 '시한폭탄', 오정강 부도 위기 내몰리나

▲ 엔켐 아메리카의 조지아 전해액 공장 전경. <엔켐>


엔켐은 14회차 전환사채 채권자들에게 상환 연장을 대가로 담보와 추가 수익을 제시할 것으로 전해졌다. 만기 상환 할증금을 기존 대비 15% 상향하고, 미국 법인인 엔켐 아메리카 지분 49%와 폴란드·헝가리 법인 지분 100%를 담보로 내걸었다.

회사 측은 지난달 외부평가기관인 삼도회계법인이 엔켐 아메리카의 기업 가치를 약 4억 달러(5657억 원)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지분 49%는 2772억 원에 달해 14회차 전환사채 원금을 넘는다.

다만 이번에 책정된 기업가치가 미국 나스닥 상장사 더그로우허브와의 합병을 전제로 평가됐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엔켐과 엔켐아메리카, 더그로우허브는 지난 7월 역삼각 합병 계약을 체결했다. 합병이 완료되면 엔켐 아메리카는 더그로우허브의 완전 자회사가 되며, 엔켐은 합병법인의 지분 85%를 확보하게 된다.

최근 더그로우허브는 나스닥으로부터 상장폐지 결정을 받았으나, 오는 12월2일까지 신규 상장 기준을 충족하는 조건으로 상장이 유지됐다. 이로써 합병 관련 불확실성은 완화됐으나, 아직 완료되지도 않은 합병을 전제로 매긴 기업가치에 의구심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1분기 말 기준 엔켐 아메리카의 장부상 가치는 1385억 원, 폴란드·헝가리 법인의 장부상 가치는 227억 원이다.

또 올해 발행한 15회차(187억 원), 16회차(75억 원), 17회차(30억 원) 전환사채 채권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거론된다. 15~17회차 전환사채의 조기 상환일은 내년 1월 도래한다. 이 가운데 14회차 전환사채 상환일만 미루는 것을 채권자들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여기에 올해 안에 상환해야 하는 단기 차입금 1500억 원도 고민 거리다. 1분기 말 기준 회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 73억 원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장 유력한 방안은 엔켐 아메리카가 합병 이후 4억 달러의 가치를 앞세워 투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회사 측은 이를 통해 최대 2억 달러(283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엔켐 아메리카의 실적 역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게 변수다. 엔켐 아메리카는 지난해 매출 1640억 원 순손실 31억 원을 냈다. 2024년과 비교해 매출은 26.5% 감소하고, 순손익은 적자 전환했다.

엔켐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14회차 전환사채가 가장 큰 부담인 만큼, 이번 조건 변경이 승인되면 다른 차입금과 전환사채에 대한 대응 여력도 함께 높아질 것”이라며 “하반기 실적 개선과 해외 자금조달 확대 등을 통해 전반적으로 유동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재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