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리포트 2월] 대치동 은마아파트, 몰아준 표에도 돌아선 정부·지자체

▲ 은마아파트와 주변 일대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윤심’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국민의힘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유력 당권주자인 김기현 의원은 1월29일 은마아파트를 찾았다. 강남 대표 단지인 은마아파트에서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모습으로 풀이된다.

김 의원은 당내 주류인 친윤석열(친윤)계 대표 주자로 유승민·나경원 전 의원 등 거물급 후보들이 잇따라 불출마하면서 당 대표로 뽑힐 가능성이 점차 커지는 상황이다. 최후 경쟁상대인 안철수 의원만 제친다면 당권을 거머쥘 수 있다.

은마아파트는 최근 국토교통부 및 서울시와 GTX-C 노선 문제를 놓고 강하게 부딪히고 있다. GTX-C 노선이 은마아파트 지하를 통과하도록 설계됐는데 주민들은 안전 문제 등을 제기하며 우회를 요구하는 반면 정부는 기존 계획을 강행하려는 태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은마아파트를 방문한 자리에서 GTX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과거 가족이 은마아파트에 산 적이 있다며 빚을 갚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와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한 행정조사에 들어간 지 두 달 만인 1월17일 수사의뢰 4건, 과태료부과 16건 등 52건의 부적격 사례를 적발해 제재했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입주자대표회의가 GTX 반대집회에 아파트공금 9700만 원을 사용했는데 관련 자료가 없는 점 등을 문제 삼았다.

이번 행정조사는 은마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2002년 설립된 지 20년 만에 처음 이뤄진 것일 뿐 아니라 국토부가 개별 아파트 단지를 놓고 행정조사를 진행한 첫 사례였다. 이 때문에 GTX-C 노선 관련 갈등에 따른 표적조사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여기에 원희룡 장관은 행정조사 결과를 발표한 날 SNS에 “은마아파트 재건축 관계자의 근거 없는 선동 때문에 30만 수도권 주민의 발을 묶어 놓을 수 없다”며 “재건축은 해야 하지만 GTX가 내 발밑으로 지나가서는 안 된다는 극단적 이기주의를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도 높은 비난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지난 연말 언론인터뷰에서 은마아파트의 GTX 반대를 두고 “주민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지는 않으나 올바르지 않다”며 “주민들이 협조하길 바란다”고 압박을 가했다.

여당 지역구 의원 역시 별반 힘이 되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유경준 강남병 의원은 지난해 11월 간담회에 원 장관과 함께 참석해 “님비 현상은 국가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사실상 정부·지자체와 같은 목소리를 냈다.

주민들로서는 자신들의 편에 서서 입장을 대변해줄 힘있는 기댈 곳이 절실하게 필요한 형편이다. 김 의원의 은마아파트에 관심이 더욱 집중되는 이유다.

그동안 은마아파트가 숙원사업인 재건축 추진 의지 등을 바탕으로 정부여당에게 보낸 압도적 지지를 고려하면 GTX-C 노선 문제를 두고 차갑게 돌아선 원희룡 장관과 오세훈 시장 등이 야속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은마아파트는 보수성향이 짙은 서울 강남에서도 여당의 가장 든든한 텃밭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은마아파트 주민들 사이에선 원 장관이나 오 시장 등을 두고 “배신당했다”, “뒤통수 맞았다”는 말이 나온다.

4424세대의 대단지인 은마아파트는 주민 2만여 명이 살고 있어 대치2동 선거구의 표심을 절대적으로 좌우한다. 

지난해 6·1 지방선거에서 대치2동은 오세훈 시장에게 82.4%의 표를 몰아줬다. 압구정동(88.7%), 대치1동(85.9%), 도곡2동(85.6%) 등 대표적 부촌에 이어 오 시장이 네 번째로 높은 득표율을 얻은 곳이다. 대치2동 선거인이 많기 때문에 오 시장에게 투표한 사람 수만 보면 강남구 선거구 가운데 대치2동이 1만2400여 명으로 가장 많았다.

6·1 지방선거 기준 대치2동 선거인 2만7천 명 중 절반 이상은 은마아파트 주민으로 추정된다. 관내 다른 아파트인 미도맨션1·2차(2436세대), 우성1차(476세대), 대치쌍용1·2차(994세대)를 다 합해도 은마아파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득표율로 봤을 때 극단적으로 은마아파트를 제외한 나머지 대치2동 주민 모두가 오 시장을 찍었다고 가정해도 은마아파트 주민의 60% 이상은 오 시장에게 표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는 대치2동 다른 주민들 가운데서 이탈표가 없지 않았을 테니 그만큼 은마아파트에서 오 시장에게 간 표가 더 많은 것으로 여겨진다.

오 시장은 2021년 4월 보궐선거 때도 대치2동에서 81.0%를 득표했다. 강남구 전체 득표율보다 7.8%포인트나 더 표를 얻었다.

역대 최고 수준의 박빙으로 치러진 20대 대선에서도 대치2동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큰 힘이 돼줬다. 전국 기준 48.6%, 강남에서 66.5%를 득표한 윤 대통령은 대치2동에서 75.5%를 득표했다. 

지방선거와 비슷하게 득표율만 보면 압구정동이나 도곡동보다 낮지만 강남구에서 윤 대통령이 유일하게 1만5천 표 이상을 얻은 선거구가 대치2동이었다.

지역구 의원인 유경준 의원 역시 다르지 않다. 유 의원은 21대 총선 때 대치2동에서 67.5%를 득표해 지역구 전체 득표율 64.8%를 2.7%포인트 상회했다. 김디모데 정책&건설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