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개편하면서도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
[비즈니스포스트]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시계가 국회의 보험업법 개정 추진으로 빨라지고 있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삼성물산을 지주회사로 만드는 방안이 가장 간명하지만 막대한 자금이 소요된다.
이에 따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오너일가의 그룹 지배력을 약화시키지 않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 삼성생명법,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앞당긴다
1일 재계에 따르면 국회에서 보험업법 개정안, 이른바 ‘삼성생명법’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이재용 회장 등 삼성 오너일가는 삼성물산을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이 회장 등 오너일가가 삼성물산 지분 33.46%(
이재용 지분 17.97%)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기타계열사’의 연결고리로 이어진다.
그러나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면 ‘삼성생명→삼성전자’의 고리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사가 계열사 주식을 기존 ‘취득원가’가 아닌 ‘시장가격’ 기준으로 총 자산의 3%까지만 보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다.
보험사의 투자안정성을 높이자는 취지인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쥐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8.69% 중 약 26조 원에 해당하는 8.3%를 처분해야 한다. 삼성화재도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1.49% 가운데 약 2조6천억 원에 이르는 0.8%를 매각해야 한다.
결국
이재용 회장 등 오너일가의 삼성전자 지배력이 약화되는 것인데 이를 피하려면 삼성물산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넘겨받는 방법이 가장 간단하다.
하지만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하는 데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에서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에 올라선다면 공정거래법 요건 상 지주회사로 전환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회사 지분 30% 의무보유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삼성물산이 현재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5.01%에 불과하다. 추가적으로 25%, 약 86조 원 규모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매입할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으로는 건설부문의 매각.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매각, 삼성SDS와 합병 등이 제기된다”며 “하지만 위와 같은 방안을 실행한다고 가정해도 삼성물산 지주회사 전환에 필요한 자금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보험업법 개정인이 시행되면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지 않더라도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로 지위가 변경돼 지주회사로 강제전환될 수밖에 없다. 현재 삼성전자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의무적으로 처분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1대 주주가 돼 지주회사로 강제전환되는 것을 피하려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 가운데 3.1%를 처분해 지분율을 낮추는 수밖에 없다.
홍라희 라인 전 리움미술관장(삼성전자 지분율 1.96%)에 이은 삼성전자의 2대주주가 되어 지주회사 전환 의무를 해소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물산이 매각해야 하는 삼성전자 주식이 모두 12.2%에 달해 삼성 지배주주 일가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8.5%까지 떨어질 수 있다.
삼성 오너가와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현재 20.75%에서 8.5%로 축소된다면 사실상 지배력을 상실하게 되는 셈이다.
▲ 삼성그룹 지배구조(왼쪽)와 보업업법 개정을 가정한 삼성 금융계열사의 삼성전자 지분율 변화. <유안타증권> |
◆ 이재용, 삼성전자 지배력 어떻게 유지하나
삼성생명 등이 매각할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물산이 아닌 삼성전자가 자사주로 인수하는 시나리오도 제기된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다. 그러나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매입함으로써
이재용 회장 등 오너일가의 의결권이 상대적으로 강화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 필요할 때는 자사주를 우호세력에게 넘겨 오너일가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활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12월7일 삼성전자가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할 수 있도록 법적 제약을 없애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추가로 발의했다.
보험업법 개정에 따라 삼성전자 주식 물량이 대거 시장에 쏟아져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주는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인데 이는
이재용 회장이 삼성전자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매입하는 방안에도 문제는 있다.
삼성전자가 삼성생명으로부터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는 방식으로는 삼성 지배주주 일가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기존 수준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우호세력에게 넘기는 것은 삼성전자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보험업법 개정안 대응을 위해 삼성전자가 매입해야 할 자사주 규모는 약 46조 원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막대한 재원을 주주환원이 아닌 계열사의 지분 처리와 오너일가의 지배력 확보에 활용하는 것은 향후 삼성전자 이사회의 책임 논란을 야기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오너일가의 삼성전자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삼성전자의 기업분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삼성전자를 투자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한 뒤 삼성전자 투자회사는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삼성생명·삼성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사업회사 지분 10.22%를 인수하고 삼성물산은 삼성그룹 금융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투자회사 지분을 인수하는 시나리오다.
이에 따르면 삼성물산→삼성전자 투자회사 →삼성전자 사업회사 구조로 지배구조가 재편된다.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한다면 삼성물산이 지주회사로 올라서는 데 필요한 자금이 대폭 줄어드는 동시에 오너일가의 지배력도 기존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
삼성전자 투자회사와 사업회사의 분할 비율이 3대 7로 정해진다고 가정할 때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투자회사의 지분 10.22%를 매입하는데 필요한 자금은 약 10조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삼성물산으로서는 충분히 마련할 수 있는 금액으로 여겨진다.
다만 이와 같은 기업분할이나 기업합병은 일반 주주들 사이에서 분할비율 등을 놓고 자칫 논란이 벌어질 수 있어 신중하게 추진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
특히
이재용 회장은 현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합병' 문제로 재판까지 받고 있는 상황인 만큼 삼성전자 기업분할을 추진하기에 더욱 부담스러울 수 있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3개사는 2020년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지배구조 개편 관련 자문을 요청했는데 관련 보고서가 나오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