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김대기 대통령비서실 실장

김대기 대통령비서실 실장.

김대기는 대통령비서실 실장이다.

윤석열정부의 첫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해 손발을 맞추면서 국회, 경제계, 시민사회와 소통해 윤석열 정부의 연착륙을 이끌어 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1956년 11월16일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22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을 시작한 뒤 기획재정부 전신인 경제기획원과 기획예산처에서 사회예산심의관, 재정운용기획관, 예산실장을 지냈다.

노무현정부에서 대통령 경제정책비서관으로 일한 데 이어 이명박정부에서는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과 통계청장을 거쳐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정책실장을 겸임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고 나서는 공직에서 물러나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의 사외이사를 맡았다.

선 굵은 업무 스타일에 조정·조율 능력이 뛰어나다. 상사, 부하직원과 친화력이 좋다.

경영활동의 공과


△대통령 비서실장 임명
김대기는 2022년 4월13일 윤석열 정부의 첫 비서실장으로 내정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 전문가이면서 정무 감각을 겸비하고 있고 다년간의 공직 경험을 바탕으로 성공적 국정운영을 뒷받침할 전문가"라고 내정 이유를 설명했다.

애초 윤석열 당선인이 비서실장으로 권영세·원희룡·장제원·장성민·김한길 등 정치인을 기용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관료 출신으로 가닥을 잡고 김대기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을 놓고 최종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기는 인선 발표 직후 질의응답에서 "그동안 관례였던 정치인이 아니고 관료인 저를 시킨 것은 당선인의 철학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며 "청와대가 국정을 통제하고 지휘하고 군림하는 측면을 배제하고 이제는 국정을 지원하고 국민에 봉사한다는 차원에서 해보라는 취지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실은 2실 5수석 체제로 개편됐다. 비서실과 국가안보실, 경제수석·사회수석·정무수석·홍보수석·시민사회수석이다. 문재인 정부의 3실 8수석 체제에서 정책실장과 민정수석, 일자리수석, 인사수석이 폐지됐다.
[Who Is ?] 김대기 대통령비서실 실장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가 2022년 4월13일 서울시 종로구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열린 2차 내각 발표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이후
김대기는 2013년 2월 공직을 떠나 한화생명 고문을 시작으로 SK이노베이션, 현대두산인프라코어, 두산중공업, 한화생명, 맥쿼리인프라에서 사외·감독이사를 맡았다.

2015년 3월 SK이노베이션 사외이사에 선임됐고, 비슷한 시기에 두산인프라코어 사외이사에도 선임됐다. 두 회사에서 2018년 3월 무렵까지 사외이사로 일했다.

2019년 3월에는 두산중공업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이후 2022년 3월29일 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됐다. 대통령 비서실장에 내정된 뒤인 2022년 4월29일 사외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사외이사로서 이사회 출석율이 100%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SK이노베이션에서는 3년 동안 4차례 이사회에 불출석했다. 두산인프라코어에서도 3년 동안 4차례 불출석했다.

두산중공업에서는 첫해에 1회 불출석했지만 나머지 2년 동안에는 모두 출석했다.

김대기는 2020년 7월28일부터 최근까지 맥쿼리인프라의 감독이사로도 재직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을 지내는 등 중용됐음에도 이명박 정부 출범 뒤 2008년 3월 차관급인 통계청장으로 영전했다.

통계청장을 지낸 뒤 2009년 4월부터 언론·종교·체육 정책을 지휘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을 맡아 매끈한 일처리 솜씨를 보여줬다. 정부 대변인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문체부 시절 과거의 '대한늬우스' 형식을 차용한 4대강 살리기 홍보광고를 내보냈다. 신문과 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미디어 관련법 홍보광고도 내놓았다.

2011년 2월부터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을 맡았고 2012년 8월부터는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겸직하며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는 2013년 2월까지 대통령실에 재직했다.

김대기는 2012년 경제수석으로서 주미대사와 무역협회장을 연이어 맡은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준비 및 경제계 지원을 진행하며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도 청와대에서 경제수석과 경제금융비서관으로 함께 일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공직에서 물러났다.

△노무현 정부 시절
김대기는 참여정부 출범 직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몸담으며 참여정부의 국가정책 수립에 관여했다.

참여정부 때는 기획예산처에서 예산기준과장, 행정문화예산과장, 국방예산과장, 사회예산심의관, 재정운용기획관을 거쳤다.

기획예산처 사회예산심의관일 때 임대형 민자사업(BTL) 도입에 기여했다. 재정운용기획관으로서는 톱다운 예산제도 도입, 성과관리 강화 등 참여정부의 재정분야 4대 혁신과제 수립과 추진을 주도했으며 예산과 기금을 포함한 통합재정 운영을 통해 재정의 효율성을 높였다.

참여정부 중후반기인 2006년 6월부터 2007년 5월까지는 대통령비서실 경제정책비서관으로 근무했다.

경제정책비서관 시절 '외국의 경제위기 회복 사례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외환위기의 진정한 극복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다.

김대기는 보고서에서 거시경제 지표 회복에 안주하기보다 근본적으로 경제체질을 개선해 성장잠재력을 높이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분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 근무를 마친 뒤 기획예산처에 재정운용실장으로 복귀했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Who Is ?] 김대기 대통령비서실 실장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내정자(오른쪽)와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이 2022년 5월1일 서울시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자회견장에서 대통령실 인선 발표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을 받던 중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의 첫 청와대 비서실장이 되는 만큼 국정목표를 수행하는 데 조율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장관급인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 보좌, 대통령 참모진 지휘, 정부·국회와의 국정 전반 조율, 정부 인사 총괄 등의 중책을 맡는다. 이 때문에 역대 정권에서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 자리는 무게감 있는 정치인이나 대통령의 최측근이 맡는 것이 관례였다.

윤석열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잘 보좌하는 것이 김대기의 우선적인 역할이다.

윤석열 정부 초기에 대통령의 지지율을 끌어올려 정부의 국정 운영에 힘이 실릴 수 있도록 하는 일도 중요하다.

김대기가 대선 기간 뚜렷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점에 비추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서 실질적인 역할을 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선이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대통령실과 내각, 당을 아우르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김대기윤석열 당선인이나 국민의힘 인사들과 호흡을 맞춘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만 경제관료 출신으로서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추경호 경제부총리 후보자 등과 원활하게 소통하며 정책 분야에서 손발을 맞추기는 쉬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책실장이 폐지된 만큼 비서실장으로 일하며 정책조율 업무 쪽에 좀 더 무게를 실을 가능성이 높다.

◆ 평가
[Who Is ?] 김대기 대통령비서실 실장

▲ 2012년 7월17일 김대기 청와대 경제수석(오른쪽)과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기획예산처를 거친 정통 경제관료다.

김영삼 정부 이후 새 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정무형 인사들이 기용됐던 것과 달리 관료 출신인 김대기가 비서실장으로 내정된 데는 정권 초기 국정운영의 중심을 경제 활성화에 두겠다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도 정통 경제관료 출신이다.

김대기는 복지 포퓰리즘과 반기업 정책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갖고 있고 윤 당선인의 민간 주도 경제성장 정책 기조에 찬성하는 시장주의자 성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예산과 재정 분야에서 공직생활을 했으며 재정건전성의 중요성도 강조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경제기획원, 재경부 산하 예산청 등에서 사무관 시절을 보내면서 분석과 기획, 예산편성 등에서 두각을 보였다. 이후 예산 분야의 요직을 거치면서 빠르고 정확한 판단력을 인정받았다.

예산청 시절 행정문화예산과장을 역임해 문화 분야의 각종 사안에도 밝다.

기획예산처가 재정경제부와 통합되지 않았으면 장관감으로 거론됐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원칙을 중시하고 꼼꼼함과 치밀함을 갖췄다. 그러나 소탈하고 친화력이 좋아 동료들의 신뢰가 두텁다. 2005년 기획예산처 직원 여론조사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상사'로 뽑히기도 했다.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과 경기고등학교 71회 동기다. 2021년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과 함께 최재형 후보의 '경제팀'으로 거명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최중경 전 장관이 경제수석을 지낸 직후 김대기가 그 자리를 이어받은 인연이 있다.

사건사고
[Who Is ?] 김대기 대통령비서실 실장

▲ 2011년 4월29일 김대기 청와대 경제수석(왼쪽)이 서울 중구 필동 동국대 창업보육센터에서 열린 제85차 국민경제대책회의에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간기업 사외이사 활동 논란
김대기가 공직에서 퇴임한 뒤에 맥쿼리인프라에서 감독이사를 지낸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감독이사는 사외이사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맥쿼리인프라는 호주계 인프라 투자회사로 도로·도시가스·철도 등 공공이 발주하는 인프라 사업에 투자해 이익을 가져가는 상장 펀드다.

인프라 사업에 투자해 수익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정부·지방자치단체와 소송을 자주 벌이며 여러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이 때문에 그동안 퇴직 관료들을 '방패막이'로 영입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2012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가 지하철 9호선 사업 협상 때 서울시가 맥쿼리인프라에 특혜를 줬다며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2014년 서울시에 불리하게 협약이 변경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했다.

김대기는 이 외에도 두산인프라코어 사외이사, SK이노베이션 사외이사, 두산중공업 사외이사 등을 거친 경력이 있는데 다른 공직자 출신 사외이사들처럼 이사회에서 '거수기' 역할을 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김대기는 6년 동안 SK이노베이션,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의 이사회 안건에 대체로 찬성하거나 일부 회의에 불참했을 뿐 반대 의견을 거의 내지 않았다. 2017년 11월29일 SK이노베이션 이사회에서 '베트남 중소기업 개발기금 출연' 안건에는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안건은 다수결로 가결됐다.

△방역지침 위반 논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는 시기에 김대기가 방역지침을 어긴 사실이 알려졌다.

2021년 2월 JTBC는 김대기와 이웅열 전 코오롱그룹 회장 등 10여 명이 경기 고양시 골프장에 모여 식사를 했다고 보도했다.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 지침을 위반한 것이다.

김대기는 이 모임의 주재자로 지목됐다. 김대기는 "경제 관련 강연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며 "최근 돌아가는 경제상황을 조금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청은 참석자들에게 각각 1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경력/학력/가족
◆ 경력
[Who Is ?] 김대기 대통령비서실 실장

▲ 2013년 8월13일 김대기 청와대 정책실장(오른쪽)이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1978년 제22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1992년 경제기획원 경제교육조사과장(서기관)으로 일했다.

1996년 재정경제원 예산기준과장을 맡았다.

1998년 예산청 행정문화예산과장에 임명됐다.

2002년 기획예산처 국방예산과장과 정부개혁기획팀장을 거쳤다.

2004년 기획예산처 사회예산심의관(부이사관)을 맡았다.

2005년 기획예산처 예산총괄심의관으로 일했다.

2005년 기획예산처 재정운용기획관(이사관)에 임명됐다.

2006년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을 맡았다.

2007년 기획예산처 재정운용실장(관리관)에 임명됐다.

2008년 통계청장을 맡았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으로 옮겼다.

2011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을 맡았다.

2012년 청와대 정책실장을 겸임했다.

2015년 두산인프라코어 사외이사에 선임됐다.

2015년 SK이노베이션 사외이사에 선임됐다.

2019년 두산중공업 사외이사에 선임됐다.

2022년 4월 대통령 비서실장에 내정됐다.

◆ 학력

1975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9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부인 이윤정과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두고 있다.

◆ 상훈

2005년 12월31일 기획예산처에서 우수공무원으로 뽑혀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 기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13년 3월 내놓은 고위공직자 재산등록사항을 살펴보면 공직에서 물러나기 전 김대기는 자신과 가족들의 재산을 합쳐 모두 16억9907만 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김대기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동안 SK이노베이션과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사외이사로 일하며 4억1천만원 정도를 받은 것으로 파악된다.

SK이노베이션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사외이사·감사위원에게 지급된 1인당 평균 보수액은 약 2억4천만 원이다. 같은 시기 두산인프라코어가 사외이사·감사위원에게 지급한 금액은 약 1억7천만 원이다.

이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두산중공업에서 약 1억61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7월부터 최근까지 맥쿼리인프라의 감독이사로도 재직하며 연간 약 7천만 원 정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밖에 2013년부터 한화생명 고문을 맡아 사외이사의 평균 수령액인 6천만~7천만 원 수준의 고문료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1979년 8월5일 입대해 1980년 10월7일 육군 일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2013년 '덫에 걸린 한국경제'(김영사)를 출간했다.

어록
[Who Is ?] 김대기 대통령비서실 실장

▲ 2010년 6월29일 김대기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국회 도서관에서 열린 국회문화관광산업연구포럼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관례였던 정치인이 아니고 관료인 저를 시킨 것은 당선인의 철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국정을 통제하고 지휘하고 군림하는 측면을 배제하고 이제는 국정을 지원하고 국민에 봉사한다는 차원에서 해보라는 취지가 있는 것 같다. 당선인이 생각하는 국정철학은 국민통합과 경제살리기 두 분야인데 경제 쪽을 아주 중요시하는 것 같다. 그런 면을 감안해서 저를 부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2022/04/13, 윤석열 정부 2차 내각 인선 발표 뒤 질의응답에서)

"지난 35년 동안 공직생활을 하면서 원 없이 일했고 힘들었지만 보람도 컸다. 이제 휴식을 취하며 뒤를 돌아볼 계획으로 차마고도를 가려고 한다. 그동안 한국경제 성공신화에 대한 책은 많이 나왔지만 정책실패를 예방하는 책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후배 공직자들의 성공을 위해 '정책실패'와 관련된 책을 쓰려고 한다." (2013/02/22, 차기 정부 출범과 함께 공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히며)

"대기업들이 단기적 이익에 집착하기보다는 중소기업과 공생발전을 통한 장기 번영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 대기업들은 공생발전을 위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골목상권에 진출해 중소기업과 경쟁하기보다는 자유무역협정으로 확대된 새로운 경제영토에 적극 진출해야 한다." (2012/10/10, 전경련 주최로 열린 제4차 경제정책위원회에서)

"역사를 돌이켜보면 경제가 어렵고 불투명해진 상황을 되돌리려면 보통의 노력으로는 힘들다. 바로 강력한 혁신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2011/12/21, 현대경영 인터뷰에서)

"장애인 체육은 그 나라의 국격을 보여준다." (2010/01/26, 제7회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개회식과 제10회 밴쿠버 동계장애인올림픽 선수단 결단식에 참석해)

"정부 부처를 쪼개서 분산하는 것에 따른 비효율성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사실 세종시 문제의 당사자는 공무원인데 공무원의 목소리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민간 기업으로 따지면 본사는 어디에 있되 경리부는 다른 데 가고 인사부는 또 다른 데 가는 그런 경우다. 정부 청사를 옮기는 것의 경제적 효과는 없다. 공무원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지금 정치권력이 너무 드세서 겁이 나서 말을 못하고 있다. 지역균형발전도 중요하지만 국정비효율 문제도 그만큼 중요하다. 국가가 잘못되면 지역도 없는 것 아니겠느냐." (2009/12/03, 문화체육관광부 기자간담회에서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과 관련해)

"대한 늬우스-4대강 살리기'에 대해 안 좋게들 많이 썼던데 '대한뉴스 부활이다, 독재정권 부활이다' 하는 것은 맞지 않다. SK도 그런 식으로 광고한다. 일종의 광고기법이다. 그렇게 하니까 이슈화가 된다." (2009/06/25, 기자간담회에서 대한늬우스 홍보광고와 관련해)

"소비자만족지수는 민간 연구소, 한국은행, 통계청 이렇게 세 기관이 모두 발표한다. 발표 주기와 조사대상 집단도 모두 달라 사실상 자원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점을 정비한 정부 통계지수 개편 방안을 준비하겠다." (2008/05/07, 매일경제 인터뷰에서)

"국민이 외면하는 통계, 정책에 도움이 되지 않는 통계는 과감히 정리하겠다." (2008/04/04, MBN 뉴스광장에 출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