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조현식 부회장의 법률대리인과 조희경 이사장의 언론 대리인의 말을 종합하면 한 달 전 조현식 부회장이 성년후견 개시 심판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내놓은 뒤로 조현식 부회장과 조희경 이사장은 한 번도 의견을 나눈 적이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조현식 부회장의 법률대리인은 “가족끼리 대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희경 이사장의 언론대리인도 “조 이사장은 지분을 넘긴 절차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고 있지 경영권 승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며 “조 부회장과 서로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고 괜히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아 따로 연락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조양래 회장의 둘째딸인 조희원씨도 최근 조양래 회장과 조현범 사장에게 본인 명의의 계좌에 있던 자금을 임의로 사용했다며 출금내역을 설명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낸 것으로 알려지지만 조현식 부회장과의 연대 가능성에 관해서는 계속해서 부인하고 있다.
조희원씨는 언니인 조희경 이사장과도 전혀 연락을 주고 받지 않는 것으로 확인된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삼남매가 성년 후견개시 심판에서 아직 공개적으로는 연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은 것이다.
조 부회장이 8월26일 공식 입장을 내고 뒤늦게 큰누나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아버지 조양래 회장을 대상으로 낸 성년후견심판 절차에 참여하겠다고 밝히고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도 사실상 누나들을 설득할 카드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아버지 조양래 회장과 동생 조현범 사장쪽이 최근 주로 기업의 인수합병이나 기업지배구조 관련 소송을 맡으며 이 분야에 강점을 지닌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하면서 사실상 성년후견 개시 심판뿐 아니라 경영권 분쟁에도 단단히 준비할 태세를 갖춘 만큼 확실한 패를 준비하기 전에 공식 입장을 내기가 어려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조현식 부회장이 경영권 뒤집기를 노리고 있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건 누나들을 설득할 카드를 마련하는 일에 매달릴 것으로 바라본다.
법원이 조양래 회장의 건강을 두고 노령 등 정신적 제약으로 사무를 처리할 능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해도 효력이 과거 사건까지는 미치지 않는다. 조양래 회장이 6월 조현범 사장에게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지분 전량을 매각한 일이 바로 무효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조현식 부회장이 경영권 분쟁에서 승기를 잡으려면 동생 조현범 사장을 상대로 벌일 민사소송과 그 뒤가 더욱 중요하다. 애초 조 부회장과 동생 조현범 사장이 팽팽한 지분율을 보유했던 만큼 판을 뒤집는 데까지는 나아가려면 누나 조희경 이사장과 조희원씨 도움이 절실하다.
한국테크놀로지그룹 남매들은 조양래 회장이 조현범 사장에게 보유 지분 전량을 매각하기 전 기준으로 각각 조희경(0.83%), 조희원(10.82%), 조현식(19.32%), 조현범(19.31%) 지분을 쥐고 있었다.
조현식 부회장의 법률대리인에 따르면 조현식 부회장은 성년후견 개시 심판과 관련해 10월5일 안으로 공식적으로 ‘참가인’을 신청할지를 발표한다.
성년후견 개시 심판이 청구되면 피고인의 가족들은 ‘관계인’ 자격을 부여받는데 따로 ‘참가인’ 신청을 하면 ‘청구인’과 사실상 동등한 자격으로 재판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참가인' 신청은 애초 재계와 시장의 예상대로 조 부회장이 동생인 조현범 사장과 경영권 분쟁까지 싸움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를 내보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조현식 부회장의 누나들이 겉으로는 연대설을 부인하고 있지만 각자의 셈법을 들여보다면 조 부회장의 편에 설 가능성도 아직 열려 있다.
조희경 이사장은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서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지만 당장 성년후견 개시 재판에서는 조현식 부회장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조현식 부회장은 우선 성년후견 개시 재판이 끝난 뒤 그룹의 사회공헌활동 확대를 약속하는 방식으로 조희경 이사장을 적극 설득하는 데 나설 수도 있어 보인다.
조희경 이사장은 아버지 조양래 회장이 평소 재단에 기부하는 최선의 방안을 전문가와 논의하는 사회공헌사업에 높은 관심을 보여왔는데 갑작스레 가족과 한 마디 논의 없이 조현범 사장에게 지분 전량을 넘겨 준 것을 문제삼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양래 회장이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이 관여하고 있는 두 재단 '한국타이어나눔재단'과 '함께 걷는 아이들' 재단에 각각 지분 10%씩을 넘기면 조희경 이사장이 간접적 방식으로 그룹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둘째 누나인 조희원씨도 조현식 부회장과 관계를 살펴봤을 때 지분 다툼이 본격화하면 조현식 부회장 편에 설 수도 있다. 조현식 부회장은 현재 둘째누나 조희원씨 아들의 희귀질환 치료를 돕기 위해 회삿돈 1억1천만 원을 부당하게 지원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