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롯데케미칼이 마주한 현안들을 김 사장에게 맡겨 화학사업의 그림을 완성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19일 실시된 롯데그룹 2020년도 임원인사에 따르면 1월1일을 기일로 탄생하는 롯데케미칼과 롯데첨단소재의 합병법인인 통합 롯데케미칼을 김 사장이 대표이사로서 이끈다.
롯데케미칼은 원래 신 회장, 김 BU장, 임병연 사장 등 3인 공동대표이사체제로 운영돼 왔기 때문에 이번 임원인사로 김 사장의 명목상 지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롯데그룹이 이날 임원인사를 하면서 김 사장이 통합 롯데케미칼을 이끈다고 밝힌 만큼 김 사장이 단독대표이사 아니면 신동빈 회장과 공동대표이사를 맡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풀이한다.
롯데 화학사업에서 김교환 사장의 무게가 더 커진 셈이다.
신 회장은 기초소재사업 중심의 롯데케미칼이 고부가제품 중심의 롯데첨단소재를 흡수합병하는 만큼 화학사업의 경력이 풍부한 김 사장이 전면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기존 임병연 롯데케미칼 대표이사는 화학사업의 전문가라기보다는 그룹 정책본부 비전전략실장, 가치경영실장 등 지주사 차원의 전략가에 더 가까운 인물이었다.
신 회장은 김 사장이 해외사업에서 보인 역량에도 무게를 두고 이번 임원인사를 결정했을 공산이 크다. 현재 롯데케미칼은 미국과 인도네시아에서 대규모 설비투자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롯데케미칼이 말레이시아 자회사인 롯데케미칼타이탄을 통해 진행하는 인도네시아 석유화학단지 조성사업은 신 회장의 숙원사업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동남아 사업에서 역량을 보인 김 사장에 책임을 맡긴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은 2014년 롯데케미칼타이탄의 대표이사에 올라 당시 100억 원대에 불과했던 영업이익을 2016년 5130억 원까지 끌어올렸다.
이 성과를 인정받아 2017년 롯데케미칼 대표이사에 임명된 뒤 인도네시아에 4조 원을 들여 기초유분 생산단지를 만드는 사업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신 회장이 구속수감되면서 모든 계획이 일시정지 상태에 놓였다.
신 회장이 다시 복귀한 뒤 사업 추진이 재개됐고 롯데케미칼이 롯데첨단소재를 흡수합병하기로 결정되면서 사업계획이 변경됐다.
완공목표가 애초 2021년에서 2023년으로 미뤄지는 한편 롯데첨단소재가 생산하는 인조대리석의 원재료 3차부틸알콜(TBA)의 생산설비가 추가되면서 사업규모도 4조 원에서 5조 원으로 불어났다.
김 사장은 롯데케미칼이 미국에 추가로 가스화학설비를 짓는 투자계획을 추진하는 데도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미국 현지법인인 롯데케미칼USA를 설립해 에탄 분해설비(ECC)를 짓기 시작했는데 신 회장이 수감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김 사장이 설비의 완공까지 성공적으로 지휘했다.
에탄 분해설비(ECC)로 나프타보다 저렴한 셰일가스를 투입해 에틸렌을 생산하는 설비다. 일반적 나프타 분해설비(NCC)가 10% 안팎의 영업이익률을 보이는 반면 이 설비는 23%에 이르는 영업이익률을 보이며 높은 수익성을 입증하고 있다.
이날 임원인사로 기존 임 대표는 통합 롯데케미칼의 기초소재사업 대표로 이동한다. 첨단소재사업 대표는 이영준 롯데첨단소재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해 내정됐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김 사장이 전면에 나서는 역할을 맡게 돼 기존의 대표이사체제가 아닌 다른 형태로 체제가 바뀔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게 됐다”며 “다만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어 2020년 1월1일 롯데케미칼의 롯데첨단소재 합병이 실시되고 조직개편이 이뤄진 뒤에야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