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엔드게임’이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불을 붙이면서 정부와 국회가 논의 중인 스크린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9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을 살펴보면 어벤져스:엔드게임은 26~28일 동안 전체 영화 상영 횟수의 79.4%를 차지했다.
2위 ‘뽀로로 극장판 보물섬 대모험’의 8.5%보다 10배 정도 많이 상영됐다. 이 기간에 어벤져스:엔드게임을 한 차례 이상 내보낸 스크린 수도 2835개로 전체 3058개의 92.7%에 이르렀다.
일부 영화관에서 모든 스크린을 어벤져스:엔드게임에 배정하거나 기존의 상영 예정영화를 교체한 사례도 확인됐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이 국내 스크린을 사실상 싹쓸이하면서 영화계의 다양성과 관객의 영화 선택권이 스크린 독과점으로 제한되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노광우 영화평론가는 “관객이 다른 영화를 보고 싶은데도 아예 볼 수 없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스크린 상한제가 도입된다면 지금처럼 한 영화가 전체 스크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은 최소한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는 SNS를 통해 “어벤져스:엔드게임 외에 다른 영화를 어디서 보란 말인가”라며 “스크린 상한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런 여론에 힘입어 정부와 국회의 스크린 상한제 도입 논의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영화비디오법 개정안을 토대로 스크린 상한제의 도입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개정안은 복합상영관을 대상으로 같은 영화가 프라임 시간대(오후 1~11시)에 상영되는 전체 영화 횟수의 50%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내용을 뼈대로 삼고 있다.
우 의원은 법안을 발의하면서 “일부 영화가 상영관을 과다하게 침해하면서 다양한 영화가 상영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할 기회를 제한하고 있다”며 “문화정책적 관점에서 특정 영화의 과도한 상영관 독점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박 장관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 영화가 글로벌시장에서 커 가려면 다양하고 좋은 영화가 많이 나와야 한다”며 “이를 위해 스크린 상한제가 필요하다”고 화답했다.
그는 4월 중순에 스크린 상한제 도입을 주장해 왔던 ‘반독과점 영화인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을 만나 향후 추진 과제를 논의하기도 했다.
스크린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CJ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로 대표되는 대규모 복합상영관들의 스크린 독과점문제와 맞물려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세 복합상영관 브랜드는 2017년 기준 국내 영화관 수의 92%를 차지했다. 이들은 좌석 점유율이 높아 매출을 올리기 쉬운 흥행 영화에 상영관을 몰아주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스크린 상한제가 시장의 자율성을 해친다는 반발도 만만찮다. 현재 논의되는 법안으로는 영화관이 ‘우회로’를 고를 가능성을 막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예컨대 영화관이 특정 영화를 장기 상영하거나 프라임 시간대를 영화 2~3개로 채우면 영화의 다양성과 관객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정책목표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
영화계의 한 종사자는 “특정 영화를 상영하는 스크린 수만 제한하면 영화관이 흥행 영화의 하루 상영 횟수를 제한하되 상영 기간을 늘리는 방식 등을 선택하면서 다른 영화가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약점을 보완할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호 의원실 관계자는 “스크린 상한제를 둘러싼 영화계의 이야기가 분분한 점을 고려하고 있다”며 “상반기 안에 스크린 상한제의 도입과 관련된 토론회를 열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면서 제도 개편에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