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은 무거운 자리다. 더욱이 은행은 당국의 규제를 강하게 받는 산업이다.

그런 만큼 은행장이 현직을 유지한 채 재판을 받게 되면 아무래도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경영 차질의 우려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판을 받게 되는 사안이 개인비리가 아니라 다툼이 충분하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현직에서 물러나는 것 자체가 선례를 만든다는 점에서 또 다른 부담이 될 수도 있다.
KEB하나은행장으로 재판 받는 함영주의 무거운 짐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이 1일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으로 영장질실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함영주 KEB하나은행장이 이런 처지에 놓여있다.

함 행장은 검찰이 은행 채용비리 혐의로 재판에 넘긴 이 가운데 유일한 현직이다.

과거 재판 리스크에 놓인 행장들은 미리 자리를 내려놓곤 했다. 재판을 받으면서 회사의 굵직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데는 신속함도 안정감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지난해 11월 신입사원 채용비리 논란이 불거진 지 열흘 만에 사임의사를 밝혔다.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도 2010년 12월 검찰이 불구속기소한 날 자리에서 물러났다.

재판에 넘겨지면 억울함 마음을 품지 않는 사람이 드물지만 함께 기소된 다른 은행장들 사안과 비쳐보면 억울한 구석이 있다는 동정론도 나온다.

기소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과 박인규 전 대구은행장, 성세환 부산은행장 등은 모두 채용비리에 깊숙이 관여하며 직접적 지시를 내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전 행장은 합격자를 최종 결정할 권한이 있는 책임자로 누군가에게 면접기회를 더 준 것을 인정했다.

박 전 행장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일곱 차례에 거쳐 시험 점수 조작 등의 방법으로 우수 거래처와 사회 유력인사, 임직원 자녀, 운전기사의 자녀 등 24명이 부정 채용되는데 직접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반면 함 행장은 충청사업부 본부장을 맡았을 당시 지방자치단체장의 비서실장 자녀의 입사를 도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시종일관 부인하고 있다.

함 행장은 KEB하나은행이 채용과정에서 남녀 성별비율을 따로 둬 ‘남녀고용평등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도 받는데 검찰은 함 행장이 인사의 최종 결재권자라는 점에서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전반적 실무를 직접 맡은 인사부장이 따로 있고 함 행장은 다만 결재라인에 최종책임자로 있었을 뿐인데 너무 가혹하다는 항변도 나온다.

함 행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 법원이 “함 행장의 혐의에 다툼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한 점도 이런 사정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함 행장으로서는 고민이 깊고도 넓을 것이다. 무엇보다 은행장이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KEB하나은행에 리스크를 안겨주지 않을까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근혜 게이트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하나금융투자의 하나UBS자산운용 지분인수 심사를 보류했고 아직까지 소식이 없다.

금감원은 금융회사의 대표가 은행의 건전한 운영을 해치는 행위를 한다면 해임 권고나 문책경고 등을 내릴 권한을 지니고 있다.

금감원은 함 행장의 1심 결과를 지켜본 뒤 움직이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금융지주 경영진들은 외부 충격이 있을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본래의 계획을 계속 밀고 나가는 모습을 보인 만큼 당분간 함 행장 역시 흔들림 없이 직무수행을 이어나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함 행장은 아직 형도 확정되지 않은 만큼 거취를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며 “성실히 재판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죄 추정의 원칙도 무겁고 도의적 책임론도 일리가 있다. 이 모두 KEB하나은행의 선택이고 감당해야 할 몫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