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사장
김경배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 사장


김경배는 1964년 9월20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성남서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경양학과를 졸업 뒤 1990년 현대정공에 입사했다.

현대정공에 입사한 뒤 10년간 정주영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수행비서를 맡은 데 이어 2007년부터 2년간 정몽구 현대차그룹 비서실장에 발탁되면서 정 회장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했다.

현대정공, 현대건설,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 그룹 주요 계열사를 거친 뒤 2009년 현대글로비스로 자리를 옮겨 대표이사를 맡았다. 내실경영으로 현대글로스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대에 걸쳐 오너를 보좌하면서 오너일가의 신뢰가 매우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덕에 초고속 승진은 물론 그룹 역사상 최연소 CEO 기록도 세웠다.

그는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현대글로비스를 대표를 맡으면서 정의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경영활동의 공과
비전과 과제/평가
◆ 평가

정주영 명예회장 수행비서와 정몽구 회장 비서실장을 역임하면서 그룹 내부에서 ‘왕의 남자’로 불린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말년을 가까이서 보필했으며 정몽구 회장의 의중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현대글로비스 대표를 맡으면서 정주영 명예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던 그가 정의선 부회장까지 3대를 이어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란 말도 나온다.

수행비서를 맡으며 몸에 밴 진중함과 우직함이 엿보인다. 2010년 7월23일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 취임 1주년을 맞았지만 기자간담회나 기념행사 없이 조용히 보냈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경영에 몰두하겠다는 게 김 대표의 의중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너 일가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2007년 8월 상무로 승진한 뒤 2009년 4월 전무로 승진했고 그 뒤 한 달 만에 부사장으로 또 승진했다.

현대차그룹 역사상 ‘최연소 대표’이자 ‘장수 CEO’로 꼽힌다. 2009년 45세의 나이로 현대글로비스 대표로 선임됐다. 현대글로비스는 2007년 이후 그가 선임되기 전까지 불과 3년 사이 5명의 대표가 교체되는 인사난을 겪었다. 현대글로비스 대표 취임 이후 6년째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성장과정에서 핵심보직을 두루 맡았던 현대정공 출신 인재 중 한 명이다. 현대건설,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을 거쳐 현대글로비스로 자리를 옮겼다.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현대글로비스는 2014년 6월 물류업계 최초로 협력사의 안전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현대글로비스 안전관리시스템(GSMS; GLOVIS SAFETY MANAGEMENT SYSTEM)’을 개발했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제조업도 아닌 물류업계에서 안전관련 부서를 헤드쿼터에 두고 운영하는 곳이 드물다”며 “김경배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에서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에 2012년 먼저 안전보안팀을 신설해 이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대글로비스 대표 취임 당시 물류 경험이 적어 경영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컸지만 내실경영으로 현대글로비스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9년 현대글로비스 대표 취임 이후 현대글로비스의 매출성장률은 2013년까지 매년 평균 40%를 웃돌았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90년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에 입사한 뒤 10년간 정주영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수행비서를 맡았다. 이 기간 중 현대건설 차장을 지냈다.

2000년 2월 수행비서를 그만 둔 뒤 현대정공 미국법인의 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00년 현대차 미국법인 최고재무담당자(부장)을 거쳐 2003년 현대글로비스 북미법인 최고재무담당자(이사대우)로 승진했다.

2007년 현대차그룹 비서실장(상무)에 발탁되면서 정 명예회장에 이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까지 2대에 오너를 보좌했다.

2008년 현대차그룹 글로벌전략실장(전무)으로 선임됐다.

2009년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 부사장에 선임된 뒤 2013년 사장으로 승진했다.

◆ 학력

1983년 성남서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90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했다.

◆ 가족관계

◆ 상훈

2012년 매경이코노미 선정 올해의 CEO로 선정됐다.

◆ 상훈

2012년 매경이코노미 선정 올해의 CEO로 선정됐다.

어록


“수행비서들을 마치 친손자처럼 대해 주셨다.” (2001/3, 정주영 명예회장이 별세했을 때)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회사를 만들겠다.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새로운 사업을 찾아 적극 개발해가겠다.” (2010/03, 현대글로비스 직원들에게)

“회사와 직원이 같은 꿈을 꾸면 일하는 것이 즐겁고 꿈도 실현할 수 있다. 올해 지속성장을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물류기업에서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나아가겠다.” (2011/3/30, 매경이코노미와 인터뷰에서)

“우수한 품질의 농산물을 생산하고도 판로를 개척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농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자연찬 을 비롯한 농업분야 사회적 기업을 지속적으로 육성해 나가겠다.” (2011/8/16, 농산물 유통 전문 사회적 기업 ‘자연찬’ 설립 협약식에서)

“이번 성과기반군수지원(PBL) 사업 참여를 시작으로 향후 국내외 군수산업의 3자 물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사업다각화를 모색할 계획이다.” (2012/7/19, 미국 항공우주기업 보잉사와 PBL사업을 위한 국내 물류서비스 계약을 맺는 자리에서)

“세계적인 물류유통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글로벌 물류교육에 강점을 지닌 중앙대와 핵심 물류인재를 양성하기로 했다. 이번 산학협력을 통해 우리나라 물류산업 경쟁력 강화와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하도록 노력하겠다.” (2013/3/12, 중앙대학교 총장실에서 열린 ‘핵심 물류인재 육성을 위한 산학협력’ 협약식에서)

“물류 전문 기업의 노하우를 적극 활용해 구호물자를 신속히 재해지역으로 운송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향후 이재민 구호품 제작 지원 및 사내 재해 구호 봉사단 설립 등을 검토해 어려운 이웃과 사랑을 나눌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겠다.” (2013/5/8, 국내 최대 재해 구호 단체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구호품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협약을 맺는 자리에서)

“스테나쪽이 정주영 회장을 기억하고 있었다. 정주영이라는 사람과 회사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당시 전격적으로 발주를 결정했다고 하더라. 정 회장에 대한 공통된 기억이 이번 북극항로 개척이라는 새로운 시도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 (2013/9/2,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북극항로 사업이) 적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돈이 되는 사업도 아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국가적 사업인 데다 장기적 비전을 보고 참여를 결정했다. 이번 경험 축적이 향후 국가와 회사에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을 확신한다.” (2013/9/2,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초대형 신형 자동차 운반선 운영으로 글로벌 선사와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기존 승용차 외 대형 상용차, 건설장비 등의 화물을 운송하는 글로벌 비계열 영업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 (2013/09/16, 자동차 운반선 ‘글로비스 스피릿’호 명명식에서)

“현대차가 받던 물량을 중소기업에 이전 지원하는 것이 4800억 원으로 가량으로 내년 4월이 되면 다 집행할 것 같다.” (2013/10/15,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해)

“글로벌 선사와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향후 북극 항로개척에 더 힘을 쓰겠다. 최근 북극지역을 중심으로 에너지 자원 개발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향후 북극항로가 세계 에너지 자원의 이동구간으로 널리 쓰일 것으로 보인다.” (2013/10/22, 전남 광양항에서 열린 ‘스테나 폴라리스’호의 북극항로 시범운항 입항식에서)

“물류산업 발전을 위한 초석을 다지기 위해 물류산업진흥재단을 설립했다. 화합과 상생의 철학을 바탕으로 중소 물류업체 지원 및 정책 개발로 국가 물류산업 발전에 기여하겠다.” (2013/12/16, 물류산업진흥재단 설립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지 않은 이유는) 후원이라는 뜻이 뒤에서 지원한다는 뜻이니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묵묵히 지원하겠다.” (2013/12/16, 물류산업진흥재단 설립 기념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내는 너무 좁아 더 이상 확장할 생각이 없다. 해외에서 비즈니스가 계속 생기니 해외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다. 예전에 밝혔듯 해운사업도 확장하겠다. 벌크의 비중을 높이겠다.” (2013/12/16, 물류산업진흥재단 설립 기념식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직 (M&A) 계획이 없다. 해운업계의 기복이 워낙 심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 해외쪽 중소 물류업체들에 대해서 검토를 할 계획이다.” (2013/12/16, 물류산업진흥재단 설립 기념식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만전을 기한 전주KD센터 운영으로 국내 완성차 부품 협력사의 KD(Knock-Down, 반제품)부품 수출물량 증대는 물론 글로벌 완성차 생산의 품질 경쟁력 향상에 최선을 다하겠다.” (2014/3/20, ‘전주KD센터’ 개소식에서)

◆ 평가

정주영 명예회장 수행비서와 정몽구 회장 비서실장을 역임하면서 그룹 내부에서 ‘왕의 남자’로 불린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말년을 가까이서 보필했으며 정몽구 회장의 의중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율이 높은 현대글로비스 대표를 맡으면서 정주영 명예회장의 신임이 두터웠던 그가 정의선 부회장까지 3대를 이어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란 말도 나온다.

수행비서를 맡으며 몸에 밴 진중함과 우직함이 엿보인다. 2010년 7월23일 현대글로비스 대표이사 취임 1주년을 맞았지만 기자간담회나 기념행사 없이 조용히 보냈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경영에 몰두하겠다는 게 김 대표의 의중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너 일가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2007년 8월 상무로 승진한 뒤 2009년 4월 전무로 승진했고 그 뒤 한 달 만에 부사장으로 또 승진했다.

현대차그룹 역사상 ‘최연소 대표’이자 ‘장수 CEO’로 꼽힌다. 2009년 45세의 나이로 현대글로비스 대표로 선임됐다. 현대글로비스는 2007년 이후 그가 선임되기 전까지 불과 3년 사이 5명의 대표가 교체되는 인사난을 겪었다. 현대글로비스 대표 취임 이후 6년째 대표직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성장과정에서 핵심보직을 두루 맡았던 현대정공 출신 인재 중 한 명이다. 현대건설, 현대차, 현대모비스 등을 거쳐 현대글로비스로 자리를 옮겼다.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현대글로비스는 2014년 6월 물류업계 최초로 협력사의 안전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현대글로비스 안전관리시스템(GSMS; GLOVIS SAFETY MANAGEMENT SYSTEM)’을 개발했다.

현대글로비스 관계자는 “제조업도 아닌 물류업계에서 안전관련 부서를 헤드쿼터에 두고 운영하는 곳이 드물다”며 “김경배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에서 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에 2012년 먼저 안전보안팀을 신설해 이러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대글로비스 대표 취임 당시 물류 경험이 적어 경영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컸지만 내실경영으로 현대글로비스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9년 현대글로비스 대표 취임 이후 현대글로비스의 매출성장률은 2013년까지 매년 평균 40%를 웃돌았다.

◆ 기타

좌우명은 ‘태산불사토양 하해불택세류(泰山不辭土壤 河海不擇細流)’다. 태산은 한줌 흙도 마다하지 않고 바다는 작은 개천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2013년 현대글로비스에서 8억4600만 원의 연봉을 받았다. 이 중 급여액은 5억7천만 원, 성과급은 2억7600만 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