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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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도종환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최초의 시인 출신문체부 장관이기도 하다.
문학인이고 현장경험도 풍부해 문화예술인들의 기대가 크다. 정치인으로서도 2선 의원이 되면서 실무능력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되며 교육운동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1954년 9월27일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다. 충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교육학 석사학위와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고향 청주에서 중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시인 활동도 같이 했다. ‘접시꽃 당신’ 등 대표작들을 이 때 발표했다.
국회에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들어가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국사교과서국정화 저지 특별위원장을 거쳐 대변인을 맡는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펼쳤다.
총선에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하면서 재선의원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문화체육부 장관후보로 지명됐다.
추진력이 강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다. 문화예술계에 두루 발이 넓다.
- 경영활동의 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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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랙리스트'와 박근혜 게이트
도종환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만든 ‘블랙리스트’ 의혹을 폭로했다. 이 때문에 2017년 5월 서울환경영화제로부터 ‘블랙리스트 어워드’를 받았다.
2015년 9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블랙리스트 문제를 처음으로 공식 제기했다. 당시 도종환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연극 ‘개구리’의 연출가를 지원대상에서 빼기 위해 심의위원들을 압박했다”고 폭로했다.
2016년 10월 들어 박근혜 게이트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파악되면서 문화체육관광부의 블랙리스트 의혹도 도마에 올랐다. 도종환은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적시된 문화예술위원회의 문건을 공개하는 등 블랙리스트 의혹검증에 앞장섰다. 2017년 1월 열린 '국정농단 청문회'에서도 블랙리스트 문제를 집중 추궁한 끝에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구속을 이끌어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가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지원했다는 의혹도 파헤쳐 성과를 냈다.
도종환은 2016년 9월 유럽 신문들을 뒤진 끝에 삼성전자가 정유라씨의 해외승마 연수를 지원한 사실을 찾아내 발표했다.
2016년 12월에는 삼성전자가 최씨 소유 독일 현지법인인 비덱스포츠의 전신 코레스포츠와 2015년 8월26일 200억 원대 지원을 약속하는 내용을 담은 컨설팅 계약서를 확보해 공개했다. 삼성전자가 밝혔던 승마활동 지원금 80억 원 외에 더 많은 지원을 약속했다는 의혹을 확인한 것이다.
△ 국정교과서 반대 앞장서
도종환은 2012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때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자 당내의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반대에 앞장섰다.
도종환은 2012년부터 교학사의 역사교과서가 ‘일본군이 의병을 토벌했다’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는 문제 도 제기했다. 2013년 12월에는 박근혜 정부가 교학사 역사교과서 등을 바탕으로 국정교과서를 만들려 한다는 의혹을 내놓았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 들어 국정 역사교과서를 공식적으로 추진하자 국회 교육문화위원회의 더불어민주당 간사로서 반대의 최전선에 섰다. 당시 “평균 검정교과서는 375쪽 분량인데 국정 역사교과서는 286쪽 분량으로 현대사 부분이 이전보다 0.4% 줄었다”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2016년 11월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금지하는 내용의 ‘역사교과용도서 다양성 보장에 대한 특별법’을 대표발의했다.
교육부는 2017년 5월31일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발행체제를 국정과 검정 혼용에서 검정체제로 전환한다는 내용으로 고시를 개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국정교과서 폐지라는 도종환의 목표도 확실하게 이뤄졌다.
△ 노무현 지지, 정계 입문의 시작점 되다
도종환은 시인 시절부터 대표적인 ‘친노무현’계 문인으로 꼽혔다. 이것이 정계 입문의 시발점이 됐고 이때 문재인 대통령과 친분을 쌓게 됐다.
도종환은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자 ‘노사모’에 이름을 올렸다. 2003년 1월에는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축하하는 의미로 ‘대한민국이여, 우리는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는 축시를 발표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제관을 맡아 노제와 추모행사의 사회를 진행했다. 이때 연단에 올라 “노무현을 사랑한다”고 외치기도 했다. 그 뒤 노무현재단 이사도 역임했다.
2011년 말 민주통합당 전당대회 당시 다른 친노계 문화인사들과 더불어 ‘한명숙 멘토단’으로 활동했다. 이때의 인연으로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의 외부위원을 맡으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6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때 사무실에 ‘근조’ 리본이 달린 화분이 들어왔는데 도종환은 한 인터뷰에서 이 화분을 키우면서 “시인 도종환은 죽었고 새로운 도종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는 소회를 밝혔다.
의원이 된 뒤에도 친노무현계 인사로 분류됐다. 2017년 5월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8주년 추도식에서도 헌시 ‘운명’을 직접 낭송했다.
이때의 인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부상하자 ‘친문재인’계로도 꼽혔다. 문 대통령은 2011년 내놓은 자서전 ‘운명’ 서문에 도종환의 시 ‘멀리 가는 물’을 인용했다.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경선캠프 이름인 ‘담쟁이’도 도종환의 작품 제목과 같다.
▲ 도종환 시인이 2010년 5월23일 경상남도 김해시 봉하마을 부엉이바위 아래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 추도식에서 추도문을 낭독하고 있다. <뉴시스>
△ 운동가 도종환
도종환은 중학교 국어교사 출신으로 교육운동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77년 청주에서 교편을 잡은 뒤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84년 동인모임 ‘분단시대’를 결성해 군부독재 탄압에 맞서는 동인지를 펴내는 일도 주도했다. 이 동인지 ‘분단시대’에 실린 시들이 도종환의 사실상 첫 작품으로 꼽힌다.
1989년 전교조 충북지부를 결성하는 데 주도적으로 나섰다는 이유로 투옥되면서 교사에서 해직됐다. 그 뒤 전교조 청주지부장과 충북문화운동연합의장 등을 맡아 재야에서 활동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해인 1998년 9월 전교조가 합법화되자 덕산중학교에 복직해 2004년 3월까지 일하고 그만뒀다. 사임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로 알려졌다.
△ 시인 도종환
도종환은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시인이다. ‘접시꽃 당신’은 암으로 투병하다가 별세한 첫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시로서 평범한 중학교 국어교사였던 도종환을 일약 국민시인으로 만들었다.
1986년 펴낸 같은 이름의 시집에도 실렸고 이 시집은 1996년 누적집계를 기준으로 100만 부 이상 팔렸고 그 뒤에도 매년 5천 부 이상 판매되고 있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에 ‘고두미 마을에서’를 비롯한 시 5편을 실었다. 1985년 문학잡지 ‘실천문학’에 ‘마늘밭에서’를 실으면서 등단했다.
그 뒤 ‘울타리 꽃’(1991년), ‘당신은 누구십니까’(1993년), ‘다시 피는 꽃’(2001년),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더 있으랴’(2014년) 등을 내놓았다. 그가 참여한 서적만 98종에 이른다.
도종환은 시인으로서 민족예술상, 거창평화인권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부문 등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 비전과 과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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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전과 과제
도종환은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되면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 논란에 휩싸였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다독이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도종환은 2017년 5월30일 SNS에서 “나도 블랙리스트였다”며 “무너진 조직을 쇄신해 잘못된 정책과 시스템을 바로 세우고 산하기관이 독립적으로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문화예술계 경험이 풍부한 데다 정치인으로서도 국정교과서 채택 저지와 문화중심도시사업 등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추진력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영화 등 문화산업 쪽 대기업들은 도종환이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의원시절 문화체육부와 산하기관을 비판해 왔던 점도 일각에서 걱정거리다.
이에 대해 도종환은 “문화체육부의 산하기관들이 독립성, 자율성, 투명성을 보유하고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 평가
도종환은 문단에서 ‘여리고 결백한 감성’을 지닌 시인으로 평가된다. 세상을 떠난 아내를 두고 애틋하고 절절하게 그리움을 토한 ‘접시꽃 당신’ 등에 그런 감성이 잘 녹아있다.
태도와 화법이 점잖고 온화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러나 교육운동가 출신으로서 강력한 추진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받는다.
재야에서 교육과 문예운동 경험을 오랫동안 쌓은 점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후보로서 높게 평가됐다. ‘박근혜 게이트’의 진상규명에 앞장섰던 점도 높이 사진다.
전교조 결성을 주도하면서 단체활동에 강점을 보여줬다. 국회의원으로 일할 때도 대개의 예술인 출신 정치인들과 달리 행정업무에 능숙한 모습을 보였다.
▲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7년 1월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게이트 관련 7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블랙리스트'에 관련된 질문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사건사고
- 경력/학력/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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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력
1984년 청주 덕산중학교 국어교사로 일하던 중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 뒤 월간 충청리뷰 발행인도 맡았다.
1989년 6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수감되면서 해직됐다. 그 뒤 전교조 충북지부장 등으로 일했다.
1998년 9월 덕산중학교 교사로 복귀해 2004년 3월까지 일했다. 그 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충북지회 문학위원회 위원장, 주성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등을 맡았다.
2006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2006년 7월부터 2009년 7월까지 제4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2008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회장을 맡았다. 그해에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도 역임했다.
2012년 2월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이 됐다.
2012년 5월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했다. 19대 국회에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2015년 8월부터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6년 1월~2월에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으로 일했다.
2016년 5월 20대 총선에 충북 청주시 흥덕구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20대 국회에서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2016년 8월부터 더불어민주당 충청북도당 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7년 5월30일 문재인 정부의 첫 문화체육관광부 장관후보로 지명됐다.
◆ 학력
강원도 원주고등학교를 거쳐 충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충북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이 2017년 1월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교육부의 국정교과서 최종본 발표와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끝낸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 가족관계
군납업자였던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10살 이후 가족들과 헤어져 증평, 청주, 원주 등의 친척집을 전전했다.
첫 아내가 암투병으로 세상을 일찍 떠나자 이때의 그리움을 담은 ‘접시꽃 당신’을 발표했다. 시집을 출판하고 6년 뒤 재혼했다.
◆ 상훈
1990년 제8회 신동엽창작기금을 탔다.
1997년 제7회 민족예술상을 수상했다. 2000년 제2회 KBS 바른언어상을 탔다.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부문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다. 그해 현대 문학부문 충북예술상과 거창평화인권문학상도 수상했다.
2008년 제2회 제비꽃시인상을 탔다. 2010년 제5회 윤동주상 문학부문상을 받았다.
2011년 제13회 백석문화상을 받았다. 2012년 제20회 공초문학상을 탔다.
2014년 제1회 신석정문학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 일치를 위한 정치포럼에서 제5회 국회를 빛낸 바른언어상 상임위 모범상을 탔다. 그해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선정한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올랐다.
2016년에 법률소비자연맹에서 뽑은 제19대 국회 종합헌정대상을 받았다.
2017년 5월 광주에서 열린 제1회 용아박용철 문학상을 수상했다.
◆ 기타
-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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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원도 안 하고 간섭만 했다. 원래 문화정책의 기본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문재인 정부는) 이것으로 돌아갈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예술작품이 검열 받거나 감시당하거나 배제당하거나 탄압받지 않고 작품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국가는 지원하고 투자하고 예술은 예술인들에게 맡기고 판단은 관객에게 맡기면 된다는 뜻이다. 특히 이제 이념적인 잣대로 예술작품을 바라보고 재단하는 일이 없는 문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2017/05/16,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어떤 경우에도 예술작품이 검열받거나 배제당하거나 탄압받아서는 안되고 작품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하고 관객들로부터 평가받아야 한다. 누군가 미리 이 작품은 된다 안된다 미리 평가하는 것은 물론이요, 국가에서 이런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2017/05/13,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공연이 끝난 뒤 ‘예술검열’을 주제로 열린 대담에서)
“최순실씨는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입찰, 승진, 입시 등 우리 사회 시스템을 전부 붕괴시켰다. 국정농단에 대해 반드시 현장에 와서 확인할 것들이 너무 많다.” (2016/12/26,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최순실씨 대상의 ‘구치소 청문회’에서)
“나는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도종환 의원이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만 하지 말고 언론을 통해 공개된 문화인 700인 등 9474명의 블랙리스트 문건을 오늘 중으로 제출하라.” (2016/10/13,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식민지가 되면 한 개인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잃는다. 여성성, 생명, 재산. 그 비극이 아직도 2, 3대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그것을 옹호하고 미화하며 긍정적인 역사관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겠는가.” (2013/12/30,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교학사의 역사교과서 문제를 놓고)
“국회의원 되고 두 달 반 동안 4편의 시를 썼다. 회색 공간에서 정신없이 일하다가 문득 고요해지는 시간, 그럴 때 쓴다.” (2012/08/22,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내 문학의 포즈를 유지하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어린 자식들에게 어머니를 갖게 해 주는 일은 더 크고 중요한 일이었다. 태어나서 한번도 ‘엄마’라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달려올 수 있게 하는 일은 내 이름을 지키는 것보다 몇 배 더 값진 일이었다.” (2011/01/21,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첫 아내와 사별한 지 6년 만에 재혼하게 된 경위를 밝히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몸이 산산조각 났지만, 더욱 산산조각 난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 균형발전, 평화로운 나라를 위한 잔잔한 소망일지 모른다.” (2009/05/29,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에서)
“이번 가을이 지나면 10년의 해직생활도 정리될 것 같다.” (1998/07, 시집 ‘부드러운 직선’의 후기에서 중등교사로 복귀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듯/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중략)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1986, 사별한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 ‘접시꽃 당신’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