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도종환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4·27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한 사이에 조성된 화해 분위기에 맞춰 예술과 체육분야 교류를 이끄는 데 힘쓰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서 박근혜정부 시절 블랙리스트 논란에 휩싸였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다독이고 무너진 신뢰를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평창올림픽과 평창패럴림픽을 성황리에 마쳐 문화체육분야를 담당하는 지휘관으로서 리더십과 운용능력을 보여줬다는 평을 듣는다.

1954년 9월27일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다. 충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교육학 석사학위와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향 청주에서 중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시인 활동도 같이 했다. ‘접시꽃 당신’ 등 대표작들을 이 때 발표했다.

국회에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들어가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더불어민주당의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특별위원장을 거쳐 대변인을 맡는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펼쳤다.

총선에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하면서 재선의원이 됐다.

소탈하고 소통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인관계가 원만하며 문화예술계에 두루 발이 넓다.

경영활동의 공과


△평양공연 예술단·태권도 시범단 이끌고 방북
도종환은 120명에 이르는 예술단과 태권도 시범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해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치고 돌아왔다.

도종환이 이끄는 방북단 본진은 2018년 3월31일 서해 직항로로 평양을 향했다.

공연의 공식 이름은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으로 정해졌으며 남북 관계의 역사적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의미에서 '봄이 온다'는 부제가 달렸다.

도종환은 4월1일 김정은 국방위원장 부부와 함께 방북단 공연을 관람했다.

예술단 단장을 맡은 도종환은 "김 위원장이 남측 공연 중 노래와 가사에 대해 물어보는 등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도종환은 4월3일 통일전선부 초대소인 미산각에서 열린 만찬 모두발언에서 "4월27일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그 평화의 첫 문을 남과 북의 문화예술인과 체육인이 열기 시작한 것"이라며 "이번에 13년 만에 와서 공연을 했다. 다시는 십여 년에 한 번씩 만나는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도종환은 "이 봄꽃이 4월 하순에는 정상회담을 통해 삼천리강산에 가득하게 하고 이 꽃나무들을 잘 가꾸고 결실을 맺게 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안한 대로 가을에는 '가을이 왔다'는 공연을 서울에서 할 수 있도록 하자"고 덧붙였다.
[Who Is ?]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18년 2월9일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했다.

△평창올림픽 성공적 개최
도종환은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힘을 보탰다.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은 흥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남북한 공동 입장,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입장권 판매 수익이 1500억 원을 넘겨 재정면에서도 흑자를 냈다. 평창올림픽으로 모두 107만9천 매의 입장권이 판매됐고 모두 141만 여명의 세계인이 평창 일원을 찾았다. 평창패럴림픽 또한 모두 34만6천 매의 입장권이 판매됐고 모두 74만 여명이 경기장을 방문했다.

도종환은 "평창올림픽과 평창패럴림픽은 선수, 대회 운영인력과 자원봉사자 등 모두의 열정과 헌신, 국민적 성원 덕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블랙리스트'와 박근혜 게이트
도종환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대상으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만든 ‘블랙리스트’ 의혹을 폭로했다. 이 때문에 2017년 5월 서울환경영화제로부터 ‘블랙리스트 어워드’를 받았다.

2015년 9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블랙리스트 문제를 처음으로 공식 제기했다. 당시 도종환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풍자하는 연극 ‘개구리’의 연출가를 지원 대상에서 빼기 위해 심의위원들을 압박했다”고 폭로했다.

2016년 10월 들어 박근혜 게이트의 실체가 본격적으로 파악되면서 문화체육관광부의 블랙리스트 의혹도 도마에 올랐다. 도종환은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적시된 문화예술위원회의 문건을 공개하는 등 블랙리스트 의혹 검증에 앞장섰다. 2017년 1월 열린 '국정농단 청문회'에서도 블랙리스트 문제를 집중 추궁한 끝에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구속을 이끌어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삼성전자가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지원했다는 의혹도 파헤쳐 성과를 냈다.

도종환은 2016년 9월 유럽 신문들을 뒤진 끝에 삼성전자가 정유라씨의 해외승마 연수를 지원한 사실을 찾아내 발표했다.

2016년 12월에는 삼성전자가 최씨 소유 독일 현지법인인 비덱스포츠의 전신 코레스포츠와 2015년 8월26일 200억 원대 지원을 약속하는 내용을 담은 컨설팅 계약서를 확보해 공개했다. 삼성전자가 밝혔던 승마활동 지원금 80억 원 외에 더 많은 지원을 약속했다는 의혹을 확인한 것이다.

△국정교과서 폐지 이끌어
도종환은 2012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때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하자 당내의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반대에 앞장섰다.

당시 도종환은 국정 역사교과서를 두고 “평균 검정교과서는 375쪽 분량인데 국정 역사교과서는 286쪽 분량으로 현대사 부분이 이전보다 0.4% 줄었다”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교육부는 2017년 5월31일 마침내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발행체제를 국정과 검정 혼용에서 검정체제로 전환한다는 내용으로 고시를 개정했다”고 밝혔다.
[Who Is ?]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도종환이 2017년 5월23일 오후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추모시를 낭송하고 있다.

△노무현 지지, 정계 입문의 시작점 되다
도종환은 시인 시절부터 대표적 ‘친노무현’계 문인으로 꼽혔다. 이것이 정계 입문의 시발점이 됐고 이때 문재인 대통령과 친분을 쌓게 됐다.

도종환은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자 ‘노사모’에 이름을 올렸다. 2003년 1월에는 노무현 정부의 출범을 축하하는 의미로 ‘대한민국이여, 우리는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는 축시를 발표했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제관을 맡아 노제와 추모행사의 사회를 진행했다. 이때 연단에 올라 “노무현을 사랑한다”고 외치기도 했다. 그 뒤 노무현재단 이사도 역임했다.

2011년 말 민주통합당 전당대회 당시 다른 친노계 문화인사들과 더불어 ‘한명숙 멘토단’으로 활동했다. 이때의 인연으로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의 외부위원을 맡으면서 정계에 발을 들였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6번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이때 사무실에 ‘근조’ 리본이 달린 화분이 들어왔는데 도종환은 한 인터뷰에서 이 화분을 키우면서 '시인 도종환은 죽었고 새로운 도종환이 되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의원이 된 뒤에도 친노무현계 인사로 분류됐다. 2017년 5월20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8주년 추도식에서도 헌시 ‘운명’을 직접 낭송했다.

이 때의 인연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부상하자 ‘친문재인’계로도 꼽혔다. 문 대통령은 2011년 내놓은 자서전 ‘운명’ 서문에 도종환의 시 ‘멀리 가는 물’을 인용했다. 18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경선캠프 이름인 ‘담쟁이’도 도종환의 작품 제목과 같다.

△교육운동가 도종환
도종환은 중학교 국어교사 출신으로 교육운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1977년 청주에서 교편을 잡은 뒤 전국교직원노조(전교조)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984년 동인모임 ‘분단시대’를 결성해 군부독재 탄압에 맞서는 동인지를 펴내는 일도 주도했다. 이 동인지 ‘분단시대’에 실린 시들이 도종환의 사실상 첫 작품으로 꼽힌다.

1989년 전교조 충북지부를 결성하는 데 주도적으로 나섰다는 이유로 투옥되면서 교사에서 해직됐다. 그 뒤 전교조 청주지부장과 충북문화운동연합의장 등을 맡아 재야에서 활동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해인 1998년 9월 전교조가 합법화되자 덕산중학교에 복직해 2004년 3월까지 일하고 그만뒀다. 사임 이유는 건강상의 문제로 알려졌다.

△시인 도종환
도종환은 ‘접시꽃 당신’으로 유명한 시인이다. 접시꽃 당신은 암으로 투병하다가 별세한 첫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시로서 평범한 중학교 국어교사였던 도종환을 일약 국민 시인으로 만들었다.

1986년 펴낸 같은 이름의 시집에도 실렸다. 이 시집은 1996년 누적집계를 기준으로 100만 부 이상 팔렸고 그 뒤에도 매년 5천 부 이상 판매되고 있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에 ‘고두미 마을에서’를 비롯한 시 5편을 실었다. 1985년 문학잡지 ‘실천문학’에 ‘마늘밭에서’를 실으면서 등단했다.

그 뒤 ‘울타리 꽃’(1991년), ‘당신은 누구십니까’(1993년), ‘다시 피는 꽃’(2001년),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더 있으랴’(2014년) 등을 내놓았다. 그가 참여한 서적만 98종에 이른다.

도종환은 시인으로서 민족예술상, 거창평화인권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윤동주상 문학부문 등 여러 문학상을 받았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Who Is ?]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일국 북한 체육상(오른쪽)이 2018년 8월22일 인도네시아 팔렘방 자카바링 스포츠 시티 조정경기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북 단일팀 조정 경기를 관전하며 대화하고 있다.

도종환은 판문점선언으로 남북한 사이 긴장이 완화됨에 따라 교류협력을 확대해 화해 분위기를 이어 나가는 역할과 과제를 안고 있다.

특히 2019년은 전국 체전이 100번째 개최되는 해로서 남북 사이의 교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이에 도종환은 "체육회는 분단 전에 조선체육회로 출발했다”며 “전국체전 100주년을 맞아 남북 공동으로 행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지휘관으로서 문재인 정부의 통일적 정책 수행을 휘해 다른 부처와 협업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특히 그동안 따로 진행돼 왔던 문화도시 조성사업과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연계하기 위해 국토교통부와 협업을 해야 한다.

또한 한한령(중국의 한류문화 제한)이 완화됨에 따라 중국관광객 유치를 위해 해양수산부와 협력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 평가

도종환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서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 논란에 휩싸였던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다독이고 무너진 신뢰를 회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술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예술인과 체육인 교류를 확대시켜 남북한의 화해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평창올림픽과 평창패럴림픽을 성황리에 마쳐 문화체육 분야를 담당하는 장관으로서 리더십과 운용능력을 보여줬다는 평을 듣는다.

대인관계가 원만하며 문화예술계에 두루 발이 넓다. 소탈하고 소통에 능하다는 평도 듣는다.

도종환의 취임 전 문화산업 쪽 대기업들이 규제가 강화될 것에 걱정섞인 목소리를 냈지만 취임 후 게임 관련 업계 최고경영자와 직접 면담을 하고 규제 완화정책을 시행했다.

태도와 화법이 점잖고 온화하다는 평을 듣는다. 특히 박근혜 게이트의 진상규명을 할 때 국회의원으로서 과장된 모습보다는 논리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문단에서는 ‘여리고 결백한 감성’을 지닌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상을 떠난 아내를 두고 애틋하고 절절하게 그리움을 토한 ‘접시꽃 당신’ 등에 그런 감성이 잘 녹아있다.
[Who Is ?]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17년 6월27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글로벌게임허브센터에서 열린 게임산업 현장 간담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Who Is ?]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도종환 문체부 장관(왼쪽)과 김영춘 해수부 장관이 2018년 7월1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해양관광 활성화를 위한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84년 청주 덕산중학교 국어교사로 일하던 중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 뒤 월간 충청리뷰 발행인도 맡았다.

1989년 6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결성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수감되면서 해직됐다. 그 뒤 전교조 충북지부장 등으로 일했다.

1998년 9월 덕산중학교 교사로 복귀해 2004년 3월까지 일했다. 그 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충북지회 문학위원회 위원장, 주성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등을 맡았다.

2006년 민족문학작가회의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2006년 7월부터 2009년 7월까지 제4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2008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부회장을 맡았다. 그해에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도 역임했다.

2012년 2월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이 됐다.

2012년 5월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했다. 19대 국회에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

2015년 8월부터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6년 1월~2월에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으로 일했다.

2016년 5월 20대 총선에 충북 청주시 흥덕구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20대 국회에서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2016년 8월부터 더불어민주당 충청북도당 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7년 5월30일 문재인 정부의 첫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로 지명됐다.

2017년 6월19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 학력

강원도 원주고등학교와 충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충북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군납업자였던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10살 이후 가족들과 헤어져 증평, 청주, 원주 등의 친척 집을 전전했다.

첫 아내가 암투병으로 세상을 일찍 떠나자 이때의 그리움을 담은 ‘접시꽃 당신’을 발표했다. 시집을 출판하고 6년 뒤 재혼했다.

◆ 상훈

1990년 제8회 신동엽창작기금을 탔다.

1997년 제7회 민족예술상을 수상했다. 2000년 제2회 KBS 바른언어상을 탔다.

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부문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다. 그해 현대 문학부문 충북예술상과 거창평화인권문학상도 수상했다.

2008년 제2회 제비꽃시인상을 탔다. 2010년 제5회 윤동주상 문학부문상을 받았다.

2011년 제13회 백석문화상을 받았다. 2012년 제20회 공초문학상을 탔다.

2014년 제1회 신석정문학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 일치를 위한 정치포럼에서 제5회 국회를 빛낸 바른언어상 상임위 모범상을 탔다. 그해에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선정한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올랐다.

2016년에 법률소비자연맹에서 뽑은 제19대 국회 종합헌정대상을 받았다.

2017년 5월 광주에서 열린 제1회 용아박용철 문학상을 수상했다.

◆ 기타

도종환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관보에 따르면 2018년 3월29일 토지 1억9896만 원, 건물 9억240만 원, 자동차 962만 원, 예금 6억6436만 원, 정치자금법에 따른 예금 6675만 원, 채무 5천만 원으로 모두 17억9209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시집으로 '흔들리며 피는 꽃', '사월 바다', '담쟁이' 등이 있고 저서로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병아리 싸움' 등이 있다.

어록
[Who Is ?]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18년 7월26일 서울 한남동 아마도예술공간에서 미술 작가, 큐레이터, 평론가, 건축가, 디자이너 등, 시각예술 분야 전문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승리했을 때 자만하지 않고 패배 했을 때 주저앉지 않을 당신을 믿는다. 평상시처럼 할 당신을 믿는다." (2018/08/21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코리아하우스 개관식에서)

"케이팝(K-Pop), 드라마, 영화를 비롯한 대중문화와 기초예술 분야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균형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2018/07/26 서울 광화문에서 ‘해외진출 활성화 협의회’ 참여기관장들과 갖은 간담회에서)

"방탄소년단의 음악속에는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고 그들만의 개성적 퍼포먼스와 메시지가 있다. 그것이 공감을 받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2018/05/30 서울 동대문구 홍릉 콘텐츠인재캠퍼스에서 열린 '2018 창의인재양성사업 발대식-아리아리 크리에이터'에서 한 인사말 중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본 북한의 모습은 뉴스나 정보기관을 통해 걸러진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2018년 초부터 직접 만나 대화하면서 (북쪽이) 적극적으로 남북문제 해결 의지를 보여주는 것을 보며 이게 실체라고 생각했다" (2018/05/14 청와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프로그램 '11시50분 청와대입니다'에 출연해서 인터뷰한 내용에서)

"인간은 누구나 감시받지 않을 권리, 검열당하지 않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국가가 지원에서 배제한 것은 물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침해함으로써 수많은 문화예술인과 국민에 깊은 상처와 아픔을 남겼다. 정부를 대표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2018/05/16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정부의 새 문화정책 기조인 '사람이 있는 문화-문화비전 2030'과 '새 예술정책 5개년 계획'(2018~2022년)을 발표하면서)

“이명박 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지원도 안 하고 간섭만 했다. 원래 문화정책의 기본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문재인 정부는) 이것으로 돌아갈 것이다.” (2017/05/16,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어떤 경우에도 예술작품이 검열 받거나 감시당하거나 배제당하거나 탄압받지 않고 작품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국가는 지원하고 투자하고 예술은 예술인들에게 맡기고 판단은 관객에게 맡기면 된다는 뜻이다. 특히 이제 이념적인 잣대로 예술작품을 바라보고 재단하는 일이 없는 문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2017/05/16,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어떤 경우에도 예술작품이 검열받거나 배제당하거나 탄압받아서는 안되고 작품 그 자체로서 존중받아야 하고 관객들로부터 평가받아야 한다. 누군가 미리 이 작품은 된다 안된다 미리 평가하는 것은 물론이요, 국가에서 이런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2017/05/13,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개막한 연극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공연이 끝난 뒤 ‘예술검열’을 주제로 열린 대담에서)

“최순실씨는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입찰, 승진, 입시 등 우리 사회 시스템을 전부 붕괴시켰다. 국정농단에 대해 반드시 현장에 와서 확인할 것들이 너무 많다.” (2016/12/26,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열린 최순실씨 대상의 ‘구치소 청문회’에서)

“나는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도종환 의원이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만 하지 말고 언론을 통해 공개된 문화인 700인 등 9474명의 블랙리스트 문건을 오늘 중으로 제출하라.” (2016/10/13,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식민지가 되면 한 개인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모두 잃는다. 여성성, 생명, 재산. 그 비극이 아직도 2, 3대로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그것을 옹호하고 미화하며 긍정적인 역사관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겠는가.” (2013/12/30,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교학사의 역사교과서 문제를 놓고)

“국회의원 되고 두 달 반 동안 4편의 시를 썼다. 회색 공간에서 정신없이 일하다가 문득 고요해지는 시간, 그럴 때 쓴다.” (2012/08/22,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내 문학의 포즈를 유지하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어린 자식들에게 어머니를 갖게 해 주는 일은 더 크고 중요한 일이었다. 태어나서 한번도 ‘엄마’라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달려올 수 있게 하는 일은 내 이름을 지키는 것보다 몇 배 더 값진 일이었다.” (2011/01/21,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첫 아내와 사별한 지 6년 만에 재혼하게 된 경위를 밝히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몸이 산산조각 났지만, 더욱 산산조각 난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 균형발전, 평화로운 나라를 위한 잔잔한 소망일지 모른다.” (2009/05/29,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에서)

“이번 가을이 지나면 10년의 해직생활도 정리될 것 같다.” (1998/07, 시집 ‘부드러운 직선’의 후기에서 중등교사로 복귀할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처음엔 접시꽃 같은 당신을 생각하며/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듯/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살아온 날처럼, 부끄럼 없이 살아가야 한다는/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중략)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 듯 살 수 있는 길은/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1986, 사별한 아내를 향한 그리움을 노래한 시 ‘접시꽃 당신’의 일부) [비즈니스포스트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