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Who Is ?] 서훈 국정원장
서훈 국정원장.


서훈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원장이다. 국정원에 28년 넘게 몸담으며 국내 최고의 대북전문가로 손꼽힌다.

1954년 12월6일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정원에서 정보관리실 실장, 대북전략실장, 제3차장을 지내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두 차례나 막후에서 추진했다.

국정원에서 물러난 뒤 이화여대 북한학과 초빙교수로 재직했다.

국내에서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을 가장 많이 만난 인물이다. 북한의 협상 스타일을 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영활동의 공과


국정원장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국회 정보위원회가 2017년 5월31일 서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를 두고 ‘적격’ 의견으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인사청문회에서 결정적인 흠결이 발견되지 않은 만큼 여야 합의로 무난히 처리됐다. 국정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은 인준 표결 없이 경과보고서 채택과 본회의 보고로 절차가 완료된다.

△국정원장 내정
서훈은 2017년 5월10일 국정원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훈을 국정원장 후보자로 직접 지명하며 “서 내정자가 남북관계 안정화와 국정원 개혁의 최적임자라고 판단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서훈은 국정원에서도 대북전문가로 손꼽혔으며 북한의 협상 스타일을 꿰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어서 대북 대화채널을 다시 열기 위해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가 필요하다는 문재인 대통령과 대북관이 같다는 점도 인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서훈의 대북·안보관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서훈이 2016년 계간지 통일코리아와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김정은 정권을 보장해 줘야 한다” “선 비핵화는 북한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한 것이 문제가 됐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은 “도저히 국정원장이라는 공직과는 맞지 않는 위험하고도 부적합한 생각”이라며 “이런 인식은 비핵화가 대화 선결조건이라는 기존 방침과 반대되고 세계적 기조와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 문재인과 인연
서훈은 2004년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으로 파견 나왔을 때 문재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었다.


서훈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동문회에도 나가지 않는 등 공직자로서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고 책임감이 강한 분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진영에서 선대위 ‘미래캠프’ 산하 남북경제연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2017년 대선에서는 문재인 캠프에서 선대위 국방안보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서훈은 2017년 대선에서 사드배치 문제 등 각종 안보 이슈에 적절히 대응해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 10·4 남북정상회담
노무현 정권시절인 2007년 국가정보원 제3차장으로 재직하면서 10·4 남북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성사시켰다.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비공개적으로 북한을 방문할 때도 동행했고 정상회담문 작성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2007년 10월4일 서해평화협력 특별지대 조성, 11월중 총리·국방장관회담 개최, 종전선언을 위한 관련 당사국회의 한반도 개최, 경의선(문산-개성) 화물철도 개통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남북관계발전 평화번영선언’을 발표했다.

평화번영선언에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군사적 긴장완화, 남북 경제협력, 민족의 화해와 통일 등 한반도에서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한 각 분야의 합의 내용이 두루 담겼다.

지향점을 주로 설정한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의 ‘6ㆍ15 공동선언’과는 달리 ‘10ㆍ4공동선언’은 합의가 상당히 구체적이라는 데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 6·15 남북정상회담
서훈은 김대중 정권 시절인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성사한 실무책임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때 국정원 ‘KSS라인’의 일원이었다. KSS라'은 김보현(3차장)→서영교(대북전략국장)→서훈(대북전략조정단장)으로 이어지는 대북 협상채널을 뜻한다.


2000년 당시 대북특사였던 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을 수행해 베이징에서 북측과 비밀협상을 했다. 임동원 국정원장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때도 동행했다.

남북 장관급회담 등에서 협상이 꼬일 경우 간접지원에 나서 협상의 물꼬를 트는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6·15 남북정상회담은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한 정상회담으로 회담의 주요내용은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정착,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남북간 교류와 협력 등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이산가족 상봉 및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통일 노력을 위한 6·15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6·15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간 대결의 냉전질서 종식과 화해 및 협력의 역사적인 계기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2년간 북한에 상주
1997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금호사무소 대표로 임명돼 북한 신포 지구에서 2년간 머물렀다.

한국 정부 관계자로는 처음으로 북한에 상주한 것이다.

한국대표로 미국과 일본대표와 함께 북한을 대상으로 다양한 협상을 벌였다. 특히 북한지역에 상주하는 우리 근로자들의 영사보호를 위한 의정서 협상과 신변보호 및 안전활동을 빈틈없이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다양한 북측 관료들을 만나 그들의 협상 스타일을 익힌 것이 향후 북한과 협상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훈은 이때부터 국정원 내에서 대북전문가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Who Is ?] 서훈 국정원장
▲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1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낙연 국무총리(왼쪽 두번째부터), 서훈 국정원장, 임종석 비서실장. <뉴시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서훈은 북핵문제 해결의 물꼬를 터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포용’ 안보정책 기조 안에서 대북관계를 새로 정립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완전히 중단할 때에만 대화할 의지가 있다는 입장이어서 북핵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발을 맞추는 일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2017년 5월14일 탄도미사일 발사하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규탄성명을 만장일치로 채택하고 대북제재 결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훈은 북핵문제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국가안보를 더욱 강화하는 한편 대화채널 재개 등 선택지들을 여럿 준비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서훈은 2017년 5월10일 국정원장 후보자로 지명되자 “지금 남북정상회담을 꺼내는 것은 조금 시기상조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며 “우리에게 시급한 안보 위협이 되는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물꼬를 틀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의 성사 여부도 서훈에게 달려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다만 서훈이 과거 공식·비공식으로 접촉했던 대북라인이 김정은 조선노동당 체제 출범 이후 주요

인물은 사망했거나 영향력이 축소돼 새 대북라인 구축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 개혁도 중요한 과제다.

서훈은 국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날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근절하기 위해 많은 정부에서 노력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왔다”며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보고 국정원의 정치개입·선거개입·사찰 등을 근절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원의 불법 민간인 사찰과 정치 및 선거개입, 간첩조작, 종북몰이 등에 연루된 조직과 인력을 놓고 엄중히 책임을 추궁하고 처벌 형량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는데 서훈도 문 대통령의 의지를 파악하고 있다.

서훈은 국정원의 국내부문 폐지문제를 두고 “제도는 들어가서 살펴보겠다”며 말을 아꼈지만 “어떤 것이 가장 빠르게 효과적으로 국정원을 정치로부터 떼어낼 방법인지 연구하겠다”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뒀다.

국정원장 내정자의 첫 관문인 인사청문회는 2017년 5월29일 열린다.

◆ 평가

서훈은 국정원에서 대북전문가로 손꼽혔다.

국내에서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을 가장 많이 만난 인물로서 북한의 협상 스타일에 통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과 2007년 두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뿐 아니라 남북 공식·비공식 대화를 조율한 경험으로 북한의 협상방식을 꿰뚫고 있는 데다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이 수준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회 위원장은 서훈을 두고 “우리 공화국에는 왜 서훈 같은 사람이 없는가”라며 한탄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국가정보원 내부에서 합리적인 일 처리와 업무장악력으로 인정을 받았다.

상하간에 격의 없이 소통하는 열린 리더십으로 후배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얻었다. 많은 후배들은 서훈을 정보기관의 진정한 역할을 찾기 위해 고민했던 선배로 기억하고 있다.

국정원에서 같이 근무한 관계자에 따르면 서훈은 차분하고 진지한 성격으로 전략을 혼자 고민하는 스타일이다.

국정원에 근무하면서도 꾸준히 공부를 계속하며 자기연마를 통해 전문성을 강화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석사학위를,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북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등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전문가로 평가 받는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에 책임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국제정세와 한반도 안보상황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학문적 안목과 식견을 넓혔다.
[Who Is ?] 서훈 국정원장
▲ 임동원 대북특사가 2002년 4월4일 김정일과 회담을 하고 있다. 왼쪽 테이블에서 가장 먼 인물이 서훈 국정원장이다. <뉴시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0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에 들어갔다.

1997~1999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금호사무소 대표를 지냈다.

1998년부터 2004년 2월까지 국가정보원 단장을 지냈다.

2004년 2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 실장을 맡았다.

2004년 12월 국가정보원 대북전략국(8국) 국장, 2006년 11월 국가정보원 제3차장을 역임했다.

2008년 3월 국가정보원에서 퇴직했다.

2008년 4월부터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초빙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2008년 7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삼성경제연구소 비상근고문을 지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 브루킹스(Brookings)연구소 책임연구원을 맡았다.

2012년 4월부터 12월까지 케이티스카이라이프 전문임원(비상근)을 지냈다.

2012년 10월부터 12월까지 민주통합당 제18대 대통령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남북경제연합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2017년 4월부터 5월까지 더불어민주당 제19대 대통령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국방안보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 학력

1973년 2월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0년 2월 서울대 사법대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5월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8년 2월 동국대 대학원 북한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 가족관계

아내와 딸이 있다. 딸은 2016년 8월부터 독일에서 유학하고 있다.

◆ 상훈

2002년 6월 홍조근정훈장을 받았다.

2008년 12월 황조근정훈장을 받았다.

◆ 기타

2017년 5월 국회 인사청문회 자료로 본인 명의 재산 9억3288만원을 포함해 배우자와 장녀의 명의로 재산을 모두 35억381만원을 신고했다.

2008년 국정원에 재직하며 공직자 재산공개를 할 때는 재산이 24억6500여만 원이었다.

서훈은 1976년 입대한지 7개월 만에 육군 일병으로 전역했다.

서훈은 “형님이 한 분 계시나 신체에 장애가 있어 당시 본인이 아니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상태였다”며 “구 병역법 제42조 1항(본인이 아니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자)에 해당하여 의가사 제대했다”고 밝혔다.
[Who Is ?] 서훈 국정원장
▲ 임동원 국정원장이 2000년 6월3일 6·15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일과 회담을 하고 있다. 왼쪽 맨 끝이 서훈 국정원이다. <뉴시스>

어록


“지금 남북정상회담을 꺼내는 것은 조금 시기상조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 우리에게 시급한 안보 위협이 되는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물꼬를 틀 수 있다.” (2017/05/10, 국정원장 후보로 지명된 뒤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근절하기 위해 많은 정부에서 노력했으나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왔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보고 국정원의 정치개입·선거개입·사찰 등을 근절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2017/05/10, 국정원장 후보로 지명된 뒤 기자들이 국정원 개혁방안을 묻자)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과 아주 세부적 협상을 진행한 뒤에 필요하다면 서로의 공감대 위에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등과 여러 협상을 진행해 나갈 생각이다. 우리의 합의와 동의 없이 일방적인 미국과 북한간 북핵 협상은 없을 것이다.” (2017/04/23,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한반도 비핵평화구상’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박근혜 정부가 주변국과의 관계를 최악의 상태로 만들었다.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현실적 접근만이 세계 정세 속에서 우리를 지키고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2017/04/19.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북핵문제는 압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압박을 느끼도록 하면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는 것은 핵동결로, 단기와 중장기 목표로 세분화해 가용수단을 모두 동원해야 한다. 결코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대화도 한 번 모멘텀을 놓치면 자꾸 놓치게 된다.” (2016/06/15, 뉴시스와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나이도 젊고 아직 김일성·김정일에 비해 권위가 많이 부족하다. 당 위원장에 취임한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 대한 절대 우상화 작업은 이제 시작 단계에 있다.“ (2016/05/11, 미국의소리(VOA) 방송과 인터뷰에서)

“개성공단이 그동안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를 줄여왔다. 개성공단이 폐쇄된 것은 한반도에서는 평화 없이는 경제발전도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걱정되는 상황이다.” (2016/02/16, 한겨레통일문화재단과 한반도평화포럼, 국회 한반도 경제·문화포럼이 함께 주최한 긴급토론회 ‘개성공단의 운명과 한반도 평화’에서)

“김정일이 권력을 잡았을 때와 김정은이 권력을 잡았을 때가 서로 다르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정은의 입지는 과거 지도자만큼 크지 않기 때문에 정권을 유지하려면 불가피하게 경제개선 등 변화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가능성이 농후해졌다. 언제 어느 때 변화로 가느냐는 것은 김정은의 자신감에 달렸고 여러 사람이 논의해 하겠지만 결국 방향은 변화일 것이다.” (2012/09/26,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재단 사무실에서 `김정은 체제와 선군외교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하며)

“전혀 모르는 일로 정권이 바뀌면 정무직이 물러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11/12/22, 일부 언론이 서훈이 2008년 국가정보원 3차장에서 물러난 것이 반 이명박라인이었기 때문이라고 보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