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트진로 국내 주류 둔화 '내실 경영', 장인섭 해외 확대 '공격 경영'

▲ 장인섭 하이트진로 신임 대표이사 내정자. <하이트진로>

[비즈니스포스트] 14년 만의 일이다. 박문덕 하이트진로 회장이 회사의 새 100년을 이끌 사령탑을 전격 교체했다. 장인섭 하이트진로 신임 대표이사 내정자는 최근 10여 년 동안 하이트진로 관리부문 임원을 지낸 ‘관리통’으로 회사 경영 상황에 정통한 인물이다.

장 대표에게 주어진 임무는 명료하다. 국내 주류 시장 정체를 극복하고 해외시장에 적극 진출해 지속적인 성장의 기반을 다지는 것이다. 해외사업 확장의 방향성은 이미 정해졌다. 장 내정자는 하이트진로 수장에 오르며 침체 일로를 걷는 국내 주류 시장에서 성장 돌파구를 찾아야할 시급한 과제를 안게 됐다.

9일 하이트진로에 안팎에 따르면 14년 만의 새 대표 선임은 파격이라기보다는 구조적 업황 둔화 속에 예정됐던 세대교체의 시점이 다가온 데 따른 인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이다.

장인섭 하이트진로 신임 대표이사 내정자는 30년 동안 주류업계에 몸담으며 하이트진로 내부 사정에도 정통한 ‘관리통’으로 평가된다.

1967년생인 장 내정자는 1995년 소주회사 진로로 입사해 2005년 하이트맥주가 진로를 인수하면서 하이트진로에 합류했다. 2006년 경영전략실 경영진단팀장, 2011년 정책팀장을 거쳐 2013년 관리부문 담당 상무를 지내며 법무정책·물류·경영지원·공급망 관리(SCM) 등에서 두루 경험을 쌓았다. 2021년부터는 관리부문 총괄전무를 맡아 경영전략과 법무, 대외협력, 홍보(커뮤니케이션) 등 경영 전반을 총괄했다.

전날 정기 임원인사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해 대표이사에 내정됐다. 30일 임시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정식 선임된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장 신임 대표는 하이트진로에서 대관, 법무, 경영전략실 업무를 오래 이끌었고, 홍보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임원을 지냈다”며 “한 쪽을 딱 얘기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부문을 총괄해왔다”고 말했다.

기존 김인규 대표이사 사장은 하이트맥주와 진로가 합병한 2011년 하이트진로 영업총괄 대표이사에 올라 그룹으로부터 4번의 재신임을 받으며 14년 동안 회사를 이끌었다. 배재고등학교 동문 사이인 박문덕 회장으로부터 깊은 신뢰를 받는 인물로 여겨진다.

이런 김 사장이 고문역으로 물러난 것은 박 회장이 진단하는 주류업계 위기의 골이 그만큼 깊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이트진로의 최근 실적 흐름은 내수 침체 속에 추세적 음주 문화 변화로 인한 주류 업황 하락세와 맥을 같이한다. 

김 사장 체제 아래 하이트진로 매출은 2011년 1조3737억 원에서 2배 규모로 불었다. 하지만 올해는 2021년 이후 4년 만에 매출이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하이트진로는 최근 해외시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월 베트남 타이빈성 그린아이파크 산업단지에 해외 첫 생산기지인 베트남 소주공장을 착공했다. 총 투자금은 1억 달러(약 1470억 원)로 2026년 말 준공을 목표로 한다. 이 공장이 2027년부터 하이트진로의 외형 성장과 주가 상승 동력이 될 것이라는 게 증권업계 공통된 견해다.

국내사업에서 하이트진로는 소주부문에서 60%대 압도적인 점유율을 바탕으로 소폭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맥주부문에서는 뚜렷한 역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하이트진로 국내 맥주부문 매출은 2023년보다 0.4% 늘어나는데 그치며 제자리걸음을 했고, 올해 1~3분기에는 6.8% 역성장을 기록했다. 

하이트진로는 2023년 4월 맥주시장 1위 탈환을 목표로 야심차게 ‘켈리’를 내놨지만 앞서 2019년 출시돼 시장에 자리 잡은 ‘테라’와 좀처럼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켈리 판매 초기 판매관리비 등 증가에 원재료 가격 인상 등이 겹쳐 2023년 하이트진로 연간 영업이익은 2023년보다 35.0%나 빠졌다. 마케팅 효율화 등 비용 절감으로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2023년 수치 이상을 회복했다. 하지만 시장 침체 속에 비용 효율화에 집중하면서 올해 들어 외형과 수익성이 함께 후퇴하고 있다.

이에 하이트진로는 점유율 유지뿐만 아니라 시장 회복을 위한 마케팅 및 영업력 강화에도 힘을 쏟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하이트진로 국내 주류 둔화 '내실 경영', 장인섭 해외 확대 '공격 경영'

▲ 장인섭 하이트진로 경영전략실 전무(가운데)가 2024년 6월10일 베트남 타이빈 그린아이파크(GiP) 산업단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다만 장 내정자는 영업·마케팅보다 경영효율성과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관리부문에 전문성을 지닌 인물이다. 

이번 대표 인사에는 구조적 주류 업황 둔화 속 경영 전반 효율화로 수익 구조를 단단히 하고, 그 바탕 위에 국내외에서 성장 전략을 새롭게 수립하겠다는 박 회장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베트남을 중심으로 대규모 해외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하이트진로로서는 시장 흐름을 이겨낼 새로운 신제품을 내놓기는 힘든 상황이다.

장 내정자는 수익성 중심 내실 경영을 지속하는 가운데 기존 주력 제품 판매 활동 강화로 외형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운영의 묘를 발휘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하이트진로는 창립 100주년을 맞아 2030년 해외 소주 매출 5천억 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지난해 소주 수출액은 2068억 원이었다.

베트남 공장이 완공되면 연간 최대 500만 상자까지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금액 기준으로는 약 1300억 원 수준이다.

장 내정자가 해외사업 확장을 본격화하기에 앞서 예고된 내수 보릿고개를 넘을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하이트진로는 2011년 진로 합병으로 소주와 맥주를 아우르는 국내 최초 소주 맥주 통합 기업이 됐으나 2012년 ‘카스’ 마케팅에 집중한 오비맥주에게 맥주시장 1위 자리를 내준 뒤 지금껏 탈환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국내 맥주 시장점유율은 오비맥주 50% 이상, 하이트진로는 10% 후반대로 추정한다.

금융정보회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하이트진로의 연결기준 매출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지난해보다 1.28% 감소한 2조5660억 원, 내년은 1.32% 증가한 2조5998억 원으로 예상된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