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고환율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해외주식 양도소득세(양도세)와 국민연금 운용 개편이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세제 강화는 '서학개미' 반발을, 국민연금을 포함한 '뉴 프레임워크'는 '연금 동원' 논란을 자극하며 정부의 선택지를 더욱 좁히고 있다
 
해외주식 양도세·국민연금 운용 개편 논의, 정부 '고환율 대응책' 논란에 곤혹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8일 서울시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28일 오후 2시34분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66.40원을 기록했다. 올해 저점이었던 6월30일 1354.00원을 기록한 이후 오름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자칫 1500원 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까지 나온다. 
 
정부는 이런 고환율 국면이 장기화하는 조짐을 보이자 해외주식 양도세 인상과 국민연금 뉴 프레임워크를 환율 안정 방안으로 언급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해외주식에 대해 양도소득세를 강화하는 등 세제를 활용한 환율 안정 방안 여부에 취재진 질문에서 "세제를 활용한 툴은 현재로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여건이 된다면 얼마든지 검토할 수 있고 열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향후 연금이 3600조 원 수준으로 증가하고 해외투자가 늘어나면 우리 시장은 달러가 부족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며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 안정을 조화시키기 위해 '국민연금 뉴 프레임워크' 구축 논의를 개시하겠다"고 말했다. 

한미 관세협상 이후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가 확실시되면서 국내 외환 수급이 장기적으로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정부가 외평기금 운용 등으로 진행했던 정통적 환율 관리책 이외의 다른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한 셈이다.

다만 해외주식 양도세는 반대 여론이 거세 도입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 양도세를 적용받지 않는 국내 주식 투자자에 비해 현재도 상당한 세율을 적용받고 있는데 '추가 차별'은 강한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들은 종목당 보유액 50억 원 이상인 대주주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 양도세를 아예 내지 않는다. 

반면 해외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인 '서학 개미'들은 현재 해외 주식을 팔아 연 250만 원이 넘는 수익을 올리면 기본세율 20%에 지방소득세 2%를 더해 22% 세율을 적용받는다. 

야당 역시 정부의 언급만으로도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구 장관의 발언이 있고 사흘 사이 여섯 건의 논평을 쏟아냈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27일 낸 논평에서 "정부는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매수를 환율 상승의 핵심 요인인 것처럼 몰아가고 양도세 강화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개인 투자자를 사실상 원인 제공자로 지목하고 있다"며 "반복된 추경과 과도한 정책대출로 원화 가치는 이미 약해졌고 여기에 해외투자 확대와 외국인 자금 이탈로 국내 달러 유입이 감소하면서 시장의 달러 수급은 더욱 빠듯해졌다. 은행들의 달러 조달난까지 겹치며 환율이 급등한 것이지 개인 투자자 탓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대통령 명의의 허위 담화문이 확산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27일 공지를 통해 이 대통령이 환율 안정을 위해 해외주식 양도소득세율 40%로 상향, 연 1%의 해외주식 보유세 신설 등을 시행한다는 내용의 담화문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유포된 것에 "해당 담화문을 발표한 사실이 없으며 담화문의 내용은 명백한 허위"라며 "허위 담화문 유포 행위에 대해 강력한 법적 대응을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개로 환율 상승의 배경에 서학 개미의 해외투자가 영향을 미쳤다는 전문가 분석이 제기된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거시금융실 선임연구위원은 2024년 8월2일 발표한 '우리나라의 해외증권투자 현황과 외환시장에 대한 영향 분석'에서 "실증분석 결과 우리나라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는 원화환율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개인투자자의 공격적인 투자행태와 급속한 투자규모 증가로 국내 환율상승 압력 등 외환수급에 미치는 영향력도 점차 커질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한편 국민연금 뉴 프레임워크는 중장기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기재부·보건복지부·한국은행·국민연금 4자 협의체가 구성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국민연금 뉴 프레임워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24일 언론공지를 통해 "기재부와 보건복지부, 한국은행, 국민연금은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 과정에서의 외환시장 영향 등을 점검하기 위한 4자 협의체를 구성했다"며 "앞으로 4자 협의체에서는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의 안정을 조화롭게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야당은 이를 즉각 비판했다.
 
해외주식 양도세·국민연금 운용 개편 논의, 정부 '고환율 대응책' 논란에 곤혹

장동혁 국민의힘 당대표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동혁 국민의힘 당대표는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불난 환율을 잡으려고 국민연금을 동원하려고 한다"며 "국민과 미래 세대의 노후 자금을 털지 말라. 국민과 미래 세대에 대한 명백한 약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각에서는 고환율 때문이라기보다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규모가 커지면서 연금 운용이 환율 안정 논의에서 비켜가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 누리집에 28일 공시돼 있는 자산군별 현황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해외 주식과 해외 채권 투자 규모는 각각 486조4천억 원과 94조3천억 원이다. 이를 달러로 바꾸면 3953억4499만9316달러다.

기획재정부 외환보유액은 7월1일 기준으로 4110억3347만1100달러다. 

국민연금의 해외 자산(주식, 채권 한정) 규모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과 비교했을 때 약 96%에 육박한다.

국민연금이 동원할 수 있는 방식으로는 해외자산 매입·매도 시점 조절, 전략적 환헤지 비중 조정, 외환스왑 활용 구조 설계 등이 거론된다. 

해외자산을 팔거나 살 때 시점을 조절하면 외환시장에 단기간에 몰리는 달러 수요·공급을 완화해 환율 급등락을 줄일 수 있다.

전략적 환헤지를 확대하면 해외투자를 위해 새로 달러를 사야 하는 수요가 줄어들어 환율 상승 압력을 일부 낮출 수 있다. 여기에 외환스왑 구조를 활용하면 당장 현물 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하지 않고도 투자 자금을 마련할 수 있어 시장 충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다만 환헤지에 대해서는 국민연금 내부에서 이미 비판이 나온 바 있다.

김재욱 국민연금연구원은 자산운용연구 제10권 제2호(2022년 12월)에 실린 '국민연금기금의 환헤지 전략에 관한 논고'에서 "환헤지로 인해 국내자산군과 해외자산군의 수익률 상관관계가 증가하여 자연헤지 효과가 상실되며 위험감소 효과, 수익률 증대 효과 모두 존재하지 않아 국민연금기금의 100% 환오픈 정책은 장기적 관점에서보면 적절한 정책인 것으로 평가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외환 스왑시장에서 국민연금의 영향력이 일정 수준 이상 줄어들지 않는 한 대규모 환헤지는 시장 교란 요인을 작용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요컨대 국민연금은 해외투자에서 원칙적으로 '무헤지 전략'을 유지해 왔으며 장기적으로 환헤지를 하지 않는 것이 수익률과 안정성 측면에서 모두 유리하다는 것이다.

기재부는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연금 동원' 논란에도 선을 그었다.

구 부총리는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전략적 환헤지 도입 가능성에 "기금운용위에서 결정할 사안"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구 부총리는 "뉴 프레임워크 논의는 환율 상승에 대한 일시적 방편으로 연금을 동원하기 위한 목적이 전혀 아니다"라며 "기금 수익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장기 시계에서 연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외 시각 문제도 있다. 미국은 한국을 환율정책에 민감하게 개입하는 국가로 보고 있다. 환율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시장 신호를 주면 오히려 높은 환율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미국 재무부는 6월5일(현지시각) 의회에 보고한 '주요 교역 대상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 정책' 반기 보고서에서 한국을 포함한 9개국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미국 재무부는 보고서에서 "불공정한 환율 관행이 포착된 국가에는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를 권고할 수 있다"며 "거시건전성 조치, 연기금·국부펀드를 활용한 환율 조정 등 시장 개입 외에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에 대한 감시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