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슬아 컬리 대표이사는 네이버와 협업해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 ‘컬리N마트’를 내놓고 이렇게 말했다.
네이버와 지분을 교환하지도 않았고 별도의 자금을 투자한 것은 아니지만 인적 자원과 시간을 들였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김 대표는 네이버 협업으로 ‘주문량 확대 → 물류효율 향상 → 성장성 확보 및 재투자’라는 선순환 구조 장착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의 전략이 컬리의 충성고객 이탈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0일 이커머스업계에 따르면 김슬아 대표가 컬리와 네이버의 협업 구체화를 통해 제 2의 창업 기로에 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컬리는 외부 플랫폼과 협업하지 않는 플랫폼으로 유명했다. 식품 제조회사들과 머리를 맞대고 특화·단독 상품을 개발한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이런 움직임들은 모두 자체 플랫폼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 제 1원칙이었다.
컬리가 4일 네이버의 쇼핑 플랫폼인 ‘네이버플러스스토어’에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 ‘컬리N마트’를 출시한 것은 이러한 관행을 깼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벌써부터 이커머스업계에서는 컬리가 네이버에 입점했다는 것을 놓고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무엇보다도 자체 플랫폼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성장하기 힘들다는 한계를 인정했다는 점에 무게를 두는 의견이 많다.
이커머스업계의 한 관계자는 “컬리는 기업공개(IPO)를 하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이커머스 기업”이라며 “하지만 상장에 실패한 뒤 수익성 확보 중심 전략으로 선회하면서 성장성에 문제가 생기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돌파구로 외부와 협업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슬아 대표 스스로도 네이버와의 협업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김 대표는 9일 서울 종로구 네이버스퀘어에서 열린 ‘네이버커머스밋업’ 행사에 직접 참석해 무대에 올랐다. 창립 이후 10년 동안 열렸던 대부분의 대외 행사에 컬리를 상징하는 보라색 옷만 입다가 처음으로 네이버를 상징하는 초록색 옷을 입었다고 설명했을 정도로 컬리와 네이버의 협업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공교롭게도 김 대표가 행사 당일 신었던 신발도 네이버를 연상하게 했다. 김 대표는 옆면에 ‘N’이 선명하게 생겨진 뉴발란스 브랜드의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이는 네이버를 떠올릴 수 있는 철자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행사에서 “컬리도 네이버라는 플랫폼이 처음이고 네이버도 컬리와 같은 유통 서비스와 이런 수준으로 제휴하는 게 많지 않다 보니 어떻게 하면 서로 갖고 있는 강점들을 잘 이해해서 하나의 강결합된 서비스로 녹여낼 수 있을까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실제로 네이버와 손을 잡으면서 컬리가 내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내준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은 네이버의 유료멤버십인 네이버플러스멤버십 가입자에게 컬리N마트 상품 2만 원 주문 시 무료배송을 해주는 혜택을 주기로 한 것이다.
컬리는 이미 자체 앱에서 별도의 유료멤버십인 컬리멤버스 회원들에게 이런 혜택을 주고 있다. 이 역량을 쌓는 데만 적지 않은 노력을 쏟았는데 그 결과물을 외부 플랫폼에 그대로 개방하는 것은 말 그대로 ‘간까지 내주는’ 행보로 읽힐 수밖에 없다.
김 대표는 컬리N마트를 위해 상품 5천여 종을 별도로 내놓기도 했다. 기존에 컬리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소용량 위주였지만 네이버의 주된 고객층을 고려해 별도의 상품들을 기획한 것이다.
김 대표는 이와 관련해 내부 상품팀에 “훨씬 더 대중적이고 친숙한 상품들, 저희도 락스를 잘 파는 회사가 됐다”고 말했을 정도다.
물론 김 대표가 네이버에 주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얻어낼 것 역시 확실하게 얻어냈다.
네이버는 컬리N마트를 네이버플러스스토어 메인 탭의 하나에 배치했다. 그동안 여러 유통기업과 협업하면서 장보기 서비스를 강화했지만 플랫폼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서비스를 대표 화면에 배치한 것은 컬리가 처음이다. 컬리에 ‘최혜 대우’를 해줬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김 대표가 이런 협업으로 기대하는 것은 다름 아닌 물류 효율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대표도 “아직 초기다 보니 이게 얼마나 잘 될지 모르겠으나 이미 투자한 것을 생각하면 무조건 잘 되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며 “저희가 기대하는 바는 그렇게 잘 되면서 컬리도 물류센터가 터져나가고, 배송차가 꽉꽉 차서 빠르게 더 투자할 수 있는 스테이지까지 빨리 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주문량 확대를 목표로 한다는 얘기인데 사실 이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유통기업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해 마진을 최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컬리가 비단 컬리N마트뿐 아니라 네이버의 배송 동맹군이라 할 수 있는 ‘네이버풀필먼트얼라이언스’에 배송 자회사인 컬리넥스트마일을 합류시켰다는 점을 감안하면 김 대표가 그리는 청사진이 좀 더 구체화한다.
실제로 앞으로는 네이버에서 상품을 파는 일반 판매자들도 컬리의 물류망을 활용해 소비자들에게 상품을 배송할 수 있게 됐다.
김 대표는 네이버와의 협업을 놓고 “더 빠르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함으로써 물류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저희랑 거래하는 협업기업들에게도 더 많은 소비자에게 상품을 판매할 기회를 드려 상품의 소싱 마진이라든지 배송 단가가 재무적으로 개선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네이버 역시 컬리의 물류 역량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윤숙 네이버 쇼핑사업부문장은 “컬리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하는 콜드체인과 배송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김 대표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김 대표는 사실 과거 쿠팡보다도 일찍 냉장·냉동 등 콜드체인 관련 물류 역량을 확보하는 데 투자했다. 하지만 충분한 주문량을 끌어오지 못해 현재의 성장률은 과거보다 크게 둔화한 상태다. 컬리가 확보하고 있는 물류센터는 전국 3곳에 그친다.

▲ 컬리는 사업 초창기부터 냉장식품과 냉동식품 등 콜드체인 물류 역량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하지만 충분한 주문량이 뒷받침하지 않아 성장에 애를 먹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진은 경기 컬리 평택물류센터 전경. <컬리>
김 대표가 자칫 컬리의 신규 고객 확보를 위해 목을 매다가는 컬리를 10년 동안 지지해온 충성고객들을 이탈하게 만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컬리N마트에서도 2만 원 이상 주문 시 무료배송을 받을 수 있는데 굳이 컬리멤버스를 유지할 필요가 있나 고민이 된다”는 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는 점은 김 대표의 전략이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혼란스럽게 읽히고 있다는 사례로 여겨진다.
김 대표 역시 컬리와 네이버의 고객층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는 “(네이버와 협업은) 어찌 보면 기존 컬리 서비스와 카니발(신제품의 주력 제품 잠식 현상)이 예상되다보니 컬리N마트의 잠재 고객들이 어떤 분들인지, 실제로 이분들에게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기존의 컬리와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기존 컬리 고객군보다 더 확장된 고객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컬리N마트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컬리 관계자는 기존 충성고객만을 위한 컬래 자체 앱 내 특화 서비스를 강화하는 방안도 충분히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