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국 정부가 미국의 엔비디아 H20 수출 재개에도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향후 무역협상에서 고사양 인공지능 반도체나 고대역폭(HBM) 메모리 판매 허가를 요구하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전자 HBM 기술 홍보용 이미지.
중국 정부가 화웨이를 비롯한 자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노려 미국과 무역협상에서 고대역폭 메모리(HBM) 수입 허가를 요청할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
미국 CNN은 18일 “중국 정부는 미국의 인공지능 반도체 수출 재개를 두고 눈에 띄게 냉담한 반응을 내비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정부는 최근 엔비디아 H20을 비롯한 저사양 제품의 중국 판매 재개를 허용하기로 했다. 중국과 무역협상을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된다.
미국은 바이든 정부 시절에 엔비디아와 AMD 등 기업의 고성능 반도체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트럼프 정부는 더 나아가 저사양 반도체도 판매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H20과 같은 저사양 반도체가 중국의 기술로도 충분히 개발해 생산할 수 있는 제품이라는 이유를 들어 규제를 완화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오히려 자국 기업들이 엔비디아 인공지능 반도체 구매를 자제하도록 요구하고 보안 문제를 이유로 들어 엔비디아를 압박하고 있다.
CNN은 중국이 인공지능 반도체 자급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엔비디아의 제품 판매 재개에 부정적 반응을 보이며 자국 기술력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중국 정부가 미국과 무역협상 과정에서 고성능 인공지능 반도체 수출 허가를 요구하려는 목적으로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을 가능성도 제시됐다.
현재 중국은 필수 산업 소재인 희토류 공급망을 지배하고 있어 미국과 논의에 다소 우위를 차지한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이를 협상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의 인공지능 반도체는 엔비디아나 AMD가 현지 시장에서 판매할 수 있는 반도체와 비교해 우수한 성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CNN은 화웨이 인공지능 반도체에 활용되는 메모리 대역폭이 치명적 약점으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 반도체의 성능을 온전히 끌어내려면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같은 고성능 부품이 필요한데 이는 미국 정부에서 중국에 수출을 규제하고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 화웨이 '어센드' 인공지능 반도체 이미지.
HBM 주요 공급사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도 미국 규제에 따라 중국에서 해당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창신메모리(CXMT)와 같은 자국 기업을 통해 HBM 자체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CNN은 중국의 기술력이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 선두 업체와 비교해 3~4년 정도 뒤처져 있다는 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분석을 전했다.
중국 정부가 궁극적 목표로 삼는 인공지능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엔비디아와 AMD의 제품 수입을 줄이고 HBM을 확보해야만 하는 셈이다.
CNN은 “중국은 미국과 무역협상에서 HBM 수출 규제 해제를 요청해 왔다”며 이는 화웨이를 비롯한 기업이 엔비디아를 대체하는 데 중요한 퍼즐 조각이라고 바라봤다.
자연히 미국 정부가 중국의 HBM 수입을 다시 허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향후 협상 과정에서 이는 충분히 논의될 만한 주제로 꼽힌다.
미국과 중국 정부는 8월까지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으면 상대 국가에 고율 수입관세를 부과할 계획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시한을 90일 연장해 협상을 이어가기로 했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강화를 계기로 자체 공급망 구축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증권사 번스타인은 CNN에 “중국의 반도체 기술 발전 속도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몇 년에 걸쳐 이어진 미국의 규제는 중국에 오히려 자급자족을 추진할 기회를 제공했다”고 전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에서 HBM 수출 재개가 논의될지 여부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도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중국의 인공지능 반도체 잠재 수요가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중국산 인공지능 반도체에 한국 메모리반도체 제조사의 HBM이 탑재되기 시작한다면 자연히 현지 고객사의 막대한 수요를 바탕으로 새 성장동력을 되찾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번스타인은 2027년 중국에서 판매되는 자국산 인공지능 반도체 비중이 2023년 기준 17%에서 2027년에는 55%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