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섭의 뒤집어보기] 오천만 이동통신 가입자 여러분! '호갱' 취급 당할 준비 되셨나요!

▲ 단말기 유통법 폐지 이후, 이동통신사들이 유통점에 가입자 차별을 공공연히 주문하고 있다. '호갱' 양산 우려가 커진다. 사진은 서울 신도림 테크노마트 이동통신 상가 모습.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호갱 취급 당할 준비 되셨나요?'

이동통신 3사가 가입자들을 차별·차등 대우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단말기 유통법(단통법) 폐지로 가입자들을 차별해도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고 유통점들을 몰아부치고 있다.

호갱이란 호구와 고객을 합친 말이다. 때로는 뻔히 알면서도, 때로는 몰라서 자신도 모르게 차별당하고 호주머니를 털리고 있는 고객을 가리킨다.

8일 한 이동통신사의 '단통법 폐지 관련 유통망 설명자료'를 보면, 이용자(가입자) 차별과 차등을 공공연히 주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한 이동통신사 유통점으로부터 이 자료를 입수했다.

이동통신 3사는 단통법 폐지(7월22일)에 즈음해 각각 이런 설명자료를 만들어 유통점에 배포하고, 설명회까지 연 것으로 파악됐다. 단통법 폐지로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설명하고, 유통점 차원에서 무엇을 준비하고 지켜야 하는지를 공유하기 위한 것인데, 가입자 차별을 대놓고 주문하는 문구가 담긴 게 눈에 띈다. 

우선 단통법 폐지로 이용자 차별 허용 범위가 확대됐다고 설명한다.

가입 유형(신규·번호이동·기변), 채널(도매·소매·온라인), 요금제 등에 따라 가입자를 차등화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강조한다.

가입자 유치에 도움이 된다면 단말기 보조금(추가지원금)과 현금 페이백 등을 차등 지급해도 된다고, 사실상 선동하는 꼴이다. 번호이동에 추가지원금을 많이 실어 경쟁업체 가입자를 빼오고, 특정 유통점이나 온라인 매장을 통해 단말기 보조금을 깜짝 올려 가입자들을 새벽에 도심 뒷골목 매장으로 오픈런시키는 것을 해도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동통신 가입자 쪽에서 보면, 기회를 잡으면 단말기를 공짜 내지 싼 값에 손에 넣을 수 있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졸지에 호갱이 되는 셈이다. 같은 요금을 내면서 누구는 비싼 단말기를 공짜로 얻고, 누구는 제 값 다 주고 사서 쓰는 '불공정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이동통신사들은 단통법 폐지로 '공통지원금'(단통법 체제에선 공시지원금)도 '맘대로 책정할 수 있게 됐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사전 공시 의무가 사라져, 언제 어디를 통해서나 주고싶은 대로 줄 수 있게 됐다고 떠든다.

가입자 쪽에서 보면, 같은 요금제를 고르고 같은 단말기를 구입해도 공통지원금과 추가지원금이 다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동통신 사업자의 마케팅 전략에 따라, 그리고 이동통신 유통점의 가입자 유치 전술에 따라 언제든지 차등과 차별을 당할 수 있는 셈이다.

중도 해지자와 요금제 변경자에 대한 위약금 족쇄도 이중으로 채워진다.

단통법 체제에서는, 약정 기간을 채우지 못한 상태로 해지하거나 요금제를 바꿀 때 이동통신사에만  위약금을 물면 됐다. 앞으로는 유통점이 추가지원금에 대한 위약금을 별도로 물릴 수 있게 된다.

유통점 설명자료에 따르면, 새 단말기 구입 조건으로 이동통신 서비스에 가입하며 '추가지원금'(이동통신 본사 공통지원금과 별도로 유통점이 추가 주는 단말기 보조금)을 받은 뒤 6개월(180일) 내에 요금제를 월 정액요금이 낮은 것으로 바꾸려면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이는 유통점에서 따로 물리는 것이다.

유통점 위약금은 개통 시 가입한 요금제 월 정액요금에서 변경하는 요금제 월 정액요금을 빼고 개통 시 요금제 월 정액요금으로 나눈 뒤 추가지원금을 곱하는 식으로 산정된다.

예를 들어 SK텔레콤 가입자들의 경우, 월 10만9천원짜리 프리미엄 요금제에 가입하며 10만원의 추가지원금을 받은 뒤 6개월 안에 월 5만9천원짜리 베이직플러스 요금제로 변경하려면 4만5872 원의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월 6만9천원짜리 레귤러 요금제로 갈아타려면 3만6697원, 7만9천원짜리 레귤러 플러스 요금제로 바꾸려면 2만7523원을 각각 토해내야 한다.

6개월이 지나 요금제를 낮출 때는 추가지원금에 대한 위약금이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5G용과 LTE용 단말기를 구입한 가입자가 약정기간 중 각각 월 4만2천원과 월 2만원 미만 요금제로 갈아탈 때는 가입 기간과 상관없이 추가지원금에 대한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물론 6개월 내 해지 때는 사실상 지원금 전액을 토해내야 한다.

이 날 현재 이동통신사들은 유통점 위약금 제도를 신설하는 내용 등을 담은 이용약관 개정안을 만들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협의 중이다.

이동통신사들은 "단통법 폐지로 '공시지원금의 15% 이내'였던 유통점 추가지원금 상한이 없어졌다. 각 유통점별로 마케팅 전략에 따라 추가지원금을 맘껏 줄 수 있게 된 것"이라며 "혹시 발생할 지 모르는 추가지원금 먹튀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유통점이 추가지원금에 대해 따로 위약금을 물릴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재섭의 뒤집어보기] 오천만 이동통신 가입자 여러분! '호갱' 취급 당할 준비 되셨나요!

▲ 이동통신 3사는 유통망 설명자료 등을 통해, 유통법 폐지로 가입자 차별 허용 범위가 확대됐다고 공공연히 선동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그동안 사실상 25%로 못밖혀 있다시피 했던 선택약정할인율도 다시 '사업자 맘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됐다.

새 전기통신사업법에 따라 선택약정할인 제도는 단통법 페지 이후에도 유지된다. 다만, 할인율 산정 근거로 삼아지던 공시지원금이 사라지며 사업자가 임의로 정할 수 있게 됐다.

유통망 설명자료에도 '선택약정은 유지하나, 할인율은 사업자가 설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단통법 체제에선 '단말기 보조금 대신 요금할인 선택'을 통해 자급제 단말기 시장 활성화 정책에 따라 공시지원금 증가 추이와 선택약정할인율을 연동했다. 애초 12%로 정해졌다가 공시지원금 액수 증가에 맞춰 25%로 높아졌다.

이동통신사들은 단통법 폐지 뒤 첫 이용약관 개정안에선 선택약정할인율을 25%로 유지했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가입자들이 반발할 수 있고 규제 당국의 눈치도 봐야 해 이번에는 25%를 유지했다"며 "앞으로도 유지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제도적으로는 이용약관을 개정하는 절차를 통해 언제든지 할인율을 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환경까지 생각해 단말기를 잘 관리하며 오래 사용하는 습관을 가진 알뜰 소비자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고 박탈감을 느끼는 상황이 다시 발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이동통신 가입자 권익 보호 의지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좀더 적극적인 시장 감시와 이용야관 '유보 신고' 제도 등의 적극 활용을 통해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가입자들의 권익을 훼손하지 않는지를 꼼꼼히 살펴야 한다.

소홀히 하면 또다시 '통신사 2중대' 내지 '사업자 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현재 과기정통부는 이동통신 3사가 제출한 이용약관 개정안의 신고 접수를 보류한 채 유통점 위약금 제도 등이 가입자들에게 불리하게 설계되지 않았는지 등을 살피고 있다고 한다. 사업자들을 불러 설명을 듣고 보완을 요구하는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신대식 과기정통부 통신이용제도과장은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이용자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이동통신 3사는 물론 방송통신위원회와도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응원한다.

곧 이동통신 사업자들의 '언론 플레이'에 따라 '정부가 이용약관 개정안을 볼모로 '통합세대요금제 출시'와 'AI 마중물 사업꺼리 추진' 등을 압박하려는 것 같다'는 식의 언론 보도가 나올 수 있다.

기자이기 전에 이동통신 소비자로써, 부디 사업자들의 언론 플레이에 흔들리지 말고, 앞서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밝힌대로 '통신 이용자 이익을 우선 시 하고, 이동통신 가입자들이 호갱 취급을 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세를 유지해주길 바래본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