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통상 상장폐지 재추진, 염태순 '애국 정서'로 회사 키워 오너만 배 불린다는 비난 거세

염태순 신성통상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신성통상 상장폐지를 다시 추진한다. <신성통상 홈페이지 갈무리>

[비즈니스포스트] 몇 년 전 ‘노(NO) 재팬’ 정서를 등에 업고 애국 마케팅으로 소비자 감성을 자극하며 빠르게 성장했던 신성통상이 상장폐지를 다시 추진한다.

기업이 지속적인 경영과 이익 극대화를 위해 상장을 추진하고 폐지할 수 있지만, 신성통상의 경우 국민 호주머니 돈으로 키운 회사의 이익이 결국 오너 일가의 배를 불리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더욱이 소액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됐던 지난해 상장폐지 시도 이후 정확히 1년 만에 같은 절차를 다시 밟는 점도 논란의 불씨를 키우고 있다. 3천억 원이 넘는 이익잉여금을 두고 오너 일가에게 유리한 ‘회수 설계도’가 이미 그려졌다는 해석이 잇따른다.

12일 신성통상의 움직임을 종합해보면 최근 몇 년간 염태순 신상통상 회장과 오너 일가를 중심으로 비상장사 전환 시나리오가 한층 구체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신성통상의 1·2대 주주인 주식회사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은 신성통상 주식 2317만8102주를 공개매수하겠다고 밝혔다. 매수 가격은 주당 4100원이며 매수 기간은 6월9일부터 7월9일까지다. 주관사는 NH투자증권이 맡았다.

문제는 이번 공개매수에 나선 가나안과 에이션패션이 모두 신성통상 오너 일가가 지배하는 가족회사라는 점이다. 

2024년 8월 기준 가나안의 지분 구조를 살펴보면 염태순 회장이 10.00%, 아들 염상원 사내이사가 82.43%, 에이션패션이 7.57%를 보유하고 있다. 에이션패션 역시 2024년 6월 기준으로 염 회장이 53.3%, 가나안이 46.5%의 지분을 갖고 있다. 사실상 오너 일가가 양쪽 회사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신성통상은 지난해 6월에도 상장폐지를 목적으로 한 차례 공개매수에 나섰지만, 매수가가 지나치게 낮다는 이유로 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당시 회사가 제시한 공개매수가는 주당 2300원이었다.

결과는 시장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염태순 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는 지분 5.89%만 추가 확보하는 데 그쳤다. 지분율은 77.98%에서 83.88%로 늘었지만 상장폐지 요건인 95%에는 한참 못 미쳤다. 결국 오너 일가의 '시장 퇴장' 시도는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염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정확히 1년 만에 다시 상장폐지를 추진하며 두 번째 시도에 나섰다. 이번에 제시한 공개매수가는 주당 4100원으로 1차 시도 당시보다 78.3%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기존 주주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 단순한 주당 가격 인상만으로는 상장폐지 명분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공모시장의 감시망을 벗어나 오너 중심의 지배력 강화와 이익 극대화에 나섰다는 의혹이 주주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신성통상은 자체 SPA 브랜드 탑텐을 앞세워 지난 수년간 눈에 띄는 실적 상승 곡선을 그려왔다. 2019년 ‘노 재팬’ 운동의 반사이익과 코로나19 이후 벌어진 패션 보복소비 흐름이 맞물리며, 국내 SPA 브랜드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성장세를 기록했다.

실제 신성통상의 별도기준 매출은 제53기(2019년 7월~2020년 6월) 1조205억 원에서 54기 1조1994억 원, 55기 1조4639억 원, 56기 1조5384억 원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했다. 다만 유니클로의 국내 재기와 경쟁 심화 영향으로 57기에는 1조5072억 원으로 소폭 감소했다.
 
신성통상 상장폐지 재추진, 염태순 '애국 정서'로 회사 키워 오너만 배 불린다는 비난 거세

▲ 신성통상은 '노 재팬' 운동의 반사이익으로 SPA 브랜드 탑텐 매출이 대폭 성장해왔다. 사진은 탑텐 명일점. <신성통상>


하지만 실적 고공행진에도 불구하고 주주들은 오랫동안 실질적인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 소액주주들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신성통상은 2012년 이후 10년 넘게 무배당 기조를 유지하다가 2023년에야 보통주 1주당 50원, 총 72억 원을 배당했다. 하지만 이는 같은 기간 순이익의 8.6%에 불과해 11년 만의 배당으로는 초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반면 신성통상의 최대주주이자 오너 일가가 지배하는 비상장사 가나안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21년 배당성향 49.44%를 기록한 데 이어 2022년 24.24%, 2023년 12.54%, 2024년에도 5.46%를 배당하며 매년 빠짐없이 오너 일가에게 수익을 안겼다. 지난해에는 이례적으로 한 자릿수 배당성향을 기록했지만, 이는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과 국정감사 등 외부 압박을 의식한 조치로 해석된다.

기업이 클수록 오너 일가의 배당은 두터워졌지만 일반 주주의 몫은 늘 제자리였다는 점에서 이번 상장폐지가 결국 ‘기획된 엔딩’이라는 의심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신성통상이 별도기준으로 쌓아온 이익잉여금은 2012년 712억 원에서 올해 1분기 말 기준 3800억 원까지 불어났다. 상장폐지가 현실화될 경우 이 막대한 내부 유보금이 오너 일가에게 집중 배분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배당뿐 아니라 주가 역시 수년간 제자리걸음을 반복해왔다. 주가는 수년간 대부분 1천~2천 원대에 머물렀으며 최근 공개매수 발표 이후에야 4천 원대로 급등했다. 그러나 실적 규모에 비하면 여전히 저평가 상태라는 지적이다.

특히 주식을 5년 이상 장기 보유한 투자자 입장에서는 배당도 없고 주가 상승도 미미했던 만큼 투자 수익이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이런 상황에서 제시된 주당 4100원의 공개매수가는 긴 시간 투자금을 묶어둔 주주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보상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업계는 신성통상이 무리없이 상장폐지에 성공할 것으로 전망한다. 공개매수를 통해 지분율 95%를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지분율 80% 이상을 보유한 오너 일가는 포괄적 주식교환을 통해 상장폐지를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괄적 주식교환은 최대주주가 3분의 2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상태에서 다른 주주의 지분을 모회사의 주식이나 현금으로 교환하는 것을 말한다. 포괄적 주식교환에 나선다면 신성통상은 가나안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해 상장폐지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신성통상이 상장폐지 수순을 서두르는 배경에 ‘상법 개정’이라는 압박이 깔려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상법 개정안에는 소액주주 권리 강화와 집중투표제 도입 의무화 등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내용이 담겨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공개매수나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으로 소액주주 지분을 정리하는 작업이 한층 까다로워질 수 있고, 배당 확대 요구도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기업 입장에서는 지금이야말로 시장을 빠져나올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실적 악화가 주된 상장폐지 명분이었지만 요즘은 실적이 좋은 기업도 지배구조 이유로 상장폐지를 추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공모시장으로 성장해 놓고 이제는 ‘소수의 회사’가 되겠다는 건 투자자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