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현대 중국의 기획자인 마오쩌둥에게 누군가 물었다. 당신의 삶에서 최상의 가치는 무엇인가? 대장정(大長征)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던 시절이다. 대답은 짧았다.
루안!
‘어지러울 난(亂)’ 한 글자를 마오는 내밀었다. 단 한 글자로 자신의 전쟁관, 인생관, 역사관을 요약했다. 마오는 대륙의 통일을 꿈꿨다. 합치려면 먼저 어지럽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90년 전의 대장정은 무모했지만, 장제스의 중국을 성공적으로 어지럽혔다. 뒤흔들었다.
지난 연말부터 줄기차게 세상을 흔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보다가 마오를 떠올렸다. 트럼프는 ‘위대한 미국’을 외치며 세계를 어지럽히는 중이다.
그의 말만 듣고 있으면 캐나다와 그린란드는 이미 미국 땅이다. 파나마운하도 미국이 관리한다. 중동의 가자지구 역시 미국이 접수해 곧 지중해의 휴양지로 거듭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무례한 ‘구상’에 희한한 방식으로 힘을 싣는다. 역사적 맥락을 살피면 안 될 것도 없는 일들이라 운을 뗀다. 실현되지 않더라도 협상을 위해 훌륭한 포석이라고 퇴로까지 제공한다. 트럼프는 철인급의 노회한 지도자가 된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의 지상파 라디오에서도 중동 전문가 한 명의 트럼프 칭찬을 들었다. ‘가자 구상’에 대해 품평하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왜 아무도 못 했을까요...?
그녀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지독한 학문적 사대에 짜증이 나 채널을 돌렸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운하, 가자에 관한 호언들은 이제쯤 트럼프 본인도 잊은 듯하니, 지난밤 창밖의 소음이라 치면 되겠다. 그보다 현실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물론, 관세다. 트럼프는 당선 직후부터 지구 곳곳에 ‘관세’라는 포탄을 난사 중이다.
노회해서 그럴까. 시간이 갈수록 그는 관세의 ‘부과’보다 관세의 ‘선언’에 무게를 두는 인상이다. 어느 쪽이건 파괴력은 거대하다. 사람들의 ‘기대’는 경제의 주요 변수다. ‘현실이 될 가능성’과 ‘현실’ 모두 현실이다. 부과도, 선언도 세계 경제에 충격이다.
그럼에도 관세라는 트럼프의 무기가 중대한 결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관세 부과는 기본적으로 자충수의 성격을 갖는다. 범위와 정도를 세심하게 조율하지 않으면 부과하는 나라의 경제를 해친다. 고전 경제학의 ‘자유무역론’이 그냥 나왔겠나.
미국 경제는 트럼프의 관세 만능주의가 미덥지 않다는 사인을 자꾸 보낸다. 물가는 오르고, 뉴욕 증시는 오락가락한다. 트럼프는 세계를 흔들다가 자신도 흔들린다.
트럼프가 온몸으로 온 세상을 흔들고 있을 때, 마오의 후예들은 좀 더 은밀하게 ‘어지러울 난’의 신공을 구사하는 중이다.
오픈AI와 소프트뱅크가 추진하고 트럼프가 파격 지원을 약속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힘을 받던 1월 말, ‘듣보잡’에 가까운 중국의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비용 고효율’의 인공지능을 선보이며 빅테크 생태계를 뒤흔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가 DDR5의 양산 소식을 알렸다. 딥시크가 첨단 AI 시장을 흔들었다면, 창신은 여전히 광대한 시장을 가진 범용 메모리 반도체 생태계를 들었다 놨다. 끝이 아니었다.
2월 말 베이징대 교수들이 ‘양자 인터넷’에 관한 논문을 네이처에 실었다. 상온에서 ‘양자 얽힘’을 구현했다는 내용이다. 혁명적 연구다.
이들의 연구대로 빛을 활용한 양자 칩이 상용화되면 지금까지의 통신 기술은 ‘구문’이 되고, 수십 년 인터넷 생태계의 수준은 ‘추억’이 된다.
인공지능과 메모리 반도체와 양자 연구로 중국이 세계의 현재와 미래를 어지럽히는 사이, 현대 중국의 지휘자 시진핑이 슬쩍 나타났다 사라졌다.
베이징에서 열린 민영 기업 좌담회에 나와 연설을 했고, 그걸 CCTV가 편집해 공개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중국의 빅테크 수장이 다 모였다. 45초짜리 영상이었다.
트럼프 1기 때 중국은 미국의 공세에 당황하는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트럼프는 그때도 관세와 철 지난 보호무역 장치와 군사력을 앞세워 중국을 압박했다. 시진핑은 지치고 피곤한 표정으로 수세를 인정했다.
5년이 지나고 상황이 달라졌다. 시진핑은 여전히 트럼프에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아웃복싱을 구사하지만, 유령 같은 펀치 몇 개만으로, 트럼프가 잔뜩 흥분시켜 놓은 링의 분위기를 들었다 놓는다.
마오의 대장정은 1934년 가을에 시작해 이듬해 가을에 끝났다. 홍군(紅軍)은 장제스의 공격을 피해 1만 킬로미터를 걸었다.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열흘을 달려야 1만 킬로미터다.
지구 둘레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거리를, 마오의 군대는 기약도 없이 걸었다. 10만 명에서 시작한 장정이 끝났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6천 명뿐이었다.
마오의 행군을 장제스는 대장정 아닌 ‘대유찬(大流竄)’으로 불렀다. ‘유찬’은 ‘이리저리 도망친다’는 뜻이다. ‘찬’이란 한자엔 쥐(鼠·서)가 숨었다. 장제스의 눈에 대장정은 쥐새끼들의 탈주였지만, 마오에겐 훗날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잉태할 ‘대교란(大攪亂)’의 현장이었다.
마오에서 트럼프, 시진핑에 이르는 100년 역사를 관망하면서 생각한다. 2025년의 세계를 진정으로 흔드는 자, 어지럽히는 자는 누구인가. 미래를 거머쥘 자는 누구인가. 이지형 금융증권부장(부국장)
루안!
![[데스크리포트 3월] 2025년 미국 중국 대결 감상법](https://www.businesspost.co.kr/news/photo/202503/20250304114555_152097.jpg)
▲ 미국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그린 마오쩌둥의 초상. 마오는 인생관을 묻는 질문에 ‘어지러울 난(亂)’ 한 글자를 제시했다.<연합뉴스>
‘어지러울 난(亂)’ 한 글자를 마오는 내밀었다. 단 한 글자로 자신의 전쟁관, 인생관, 역사관을 요약했다. 마오는 대륙의 통일을 꿈꿨다. 합치려면 먼저 어지럽혀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90년 전의 대장정은 무모했지만, 장제스의 중국을 성공적으로 어지럽혔다. 뒤흔들었다.
지난 연말부터 줄기차게 세상을 흔들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보다가 마오를 떠올렸다. 트럼프는 ‘위대한 미국’을 외치며 세계를 어지럽히는 중이다.
그의 말만 듣고 있으면 캐나다와 그린란드는 이미 미국 땅이다. 파나마운하도 미국이 관리한다. 중동의 가자지구 역시 미국이 접수해 곧 지중해의 휴양지로 거듭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무례한 ‘구상’에 희한한 방식으로 힘을 싣는다. 역사적 맥락을 살피면 안 될 것도 없는 일들이라 운을 뗀다. 실현되지 않더라도 협상을 위해 훌륭한 포석이라고 퇴로까지 제공한다. 트럼프는 철인급의 노회한 지도자가 된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의 지상파 라디오에서도 중동 전문가 한 명의 트럼프 칭찬을 들었다. ‘가자 구상’에 대해 품평하는 중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을 왜 아무도 못 했을까요...?
그녀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지독한 학문적 사대에 짜증이 나 채널을 돌렸다.
캐나다, 그린란드, 파나마운하, 가자에 관한 호언들은 이제쯤 트럼프 본인도 잊은 듯하니, 지난밤 창밖의 소음이라 치면 되겠다. 그보다 현실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물론, 관세다. 트럼프는 당선 직후부터 지구 곳곳에 ‘관세’라는 포탄을 난사 중이다.
노회해서 그럴까. 시간이 갈수록 그는 관세의 ‘부과’보다 관세의 ‘선언’에 무게를 두는 인상이다. 어느 쪽이건 파괴력은 거대하다. 사람들의 ‘기대’는 경제의 주요 변수다. ‘현실이 될 가능성’과 ‘현실’ 모두 현실이다. 부과도, 선언도 세계 경제에 충격이다.
그럼에도 관세라는 트럼프의 무기가 중대한 결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관세 부과는 기본적으로 자충수의 성격을 갖는다. 범위와 정도를 세심하게 조율하지 않으면 부과하는 나라의 경제를 해친다. 고전 경제학의 ‘자유무역론’이 그냥 나왔겠나.
미국 경제는 트럼프의 관세 만능주의가 미덥지 않다는 사인을 자꾸 보낸다. 물가는 오르고, 뉴욕 증시는 오락가락한다. 트럼프는 세계를 흔들다가 자신도 흔들린다.
트럼프가 온몸으로 온 세상을 흔들고 있을 때, 마오의 후예들은 좀 더 은밀하게 ‘어지러울 난’의 신공을 구사하는 중이다.
오픈AI와 소프트뱅크가 추진하고 트럼프가 파격 지원을 약속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힘을 받던 1월 말, ‘듣보잡’에 가까운 중국의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비용 고효율’의 인공지능을 선보이며 빅테크 생태계를 뒤흔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가 DDR5의 양산 소식을 알렸다. 딥시크가 첨단 AI 시장을 흔들었다면, 창신은 여전히 광대한 시장을 가진 범용 메모리 반도체 생태계를 들었다 놨다. 끝이 아니었다.
2월 말 베이징대 교수들이 ‘양자 인터넷’에 관한 논문을 네이처에 실었다. 상온에서 ‘양자 얽힘’을 구현했다는 내용이다. 혁명적 연구다.
이들의 연구대로 빛을 활용한 양자 칩이 상용화되면 지금까지의 통신 기술은 ‘구문’이 되고, 수십 년 인터넷 생태계의 수준은 ‘추억’이 된다.
인공지능과 메모리 반도체와 양자 연구로 중국이 세계의 현재와 미래를 어지럽히는 사이, 현대 중국의 지휘자 시진핑이 슬쩍 나타났다 사라졌다.
베이징에서 열린 민영 기업 좌담회에 나와 연설을 했고, 그걸 CCTV가 편집해 공개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중국의 빅테크 수장이 다 모였다. 45초짜리 영상이었다.
트럼프 1기 때 중국은 미국의 공세에 당황하는 모습을 숨기지 못했다. 트럼프는 그때도 관세와 철 지난 보호무역 장치와 군사력을 앞세워 중국을 압박했다. 시진핑은 지치고 피곤한 표정으로 수세를 인정했다.
5년이 지나고 상황이 달라졌다. 시진핑은 여전히 트럼프에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아웃복싱을 구사하지만, 유령 같은 펀치 몇 개만으로, 트럼프가 잔뜩 흥분시켜 놓은 링의 분위기를 들었다 놓는다.
마오의 대장정은 1934년 가을에 시작해 이듬해 가을에 끝났다. 홍군(紅軍)은 장제스의 공격을 피해 1만 킬로미터를 걸었다.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열흘을 달려야 1만 킬로미터다.
지구 둘레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거리를, 마오의 군대는 기약도 없이 걸었다. 10만 명에서 시작한 장정이 끝났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6천 명뿐이었다.
마오의 행군을 장제스는 대장정 아닌 ‘대유찬(大流竄)’으로 불렀다. ‘유찬’은 ‘이리저리 도망친다’는 뜻이다. ‘찬’이란 한자엔 쥐(鼠·서)가 숨었다. 장제스의 눈에 대장정은 쥐새끼들의 탈주였지만, 마오에겐 훗날의 중화인민공화국을 잉태할 ‘대교란(大攪亂)’의 현장이었다.
마오에서 트럼프, 시진핑에 이르는 100년 역사를 관망하면서 생각한다. 2025년의 세계를 진정으로 흔드는 자, 어지럽히는 자는 누구인가. 미래를 거머쥘 자는 누구인가. 이지형 금융증권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