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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명품 플랫폼 ‘파페치’ 인수를 두고 일각에서는 ‘신의 한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다만 일각에서는 비용 절감효과에 따른 결과로 실질적 수요 회복으로 인한 성장과는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파페치가 실제 영업이익을 창출하며 쿠팡의 안정적 수익원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쿠팡에 인수된 글로벌 명품 플랫폼 파페치가 빠르게 재무구조를 개선하며 손익분기점(BEP)에 다가서고 있다. 적자로 허덕이던 파페치는 인수 1년 만에 과감한 구조조정을 거친 끝에 EBITDA 기준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07년 영국에서 출발한 파페치는 1400여 개 명품 브랜드를 190개국에 판매하는 글로벌 플랫폼이다. 하지만 인수 직전 재무 상황은 심각했다. 2022년 1조1680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2023년 상반기에도 5600억 원의 손실을 냈다. 결국 같은 해 하반기 상장 폐지됐고 쿠팡에 인수됐다. 당시 김범석 의장의 파페치 인수를 두고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컸던 이유다.
그럼에도 김 의장은 결정을 굽히지 않았다. 쿠팡은 파페치를 인수한 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비효율적인 사업을 정리하고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섰다. 지난해 초 파페치는 전체 임직원의 25% 이상을 줄였고 럭셔리 브랜드 대상 기술·물류 솔루션을 제공하던 ‘파페치 플랫폼 솔루션즈’ 사업부도 과감히 폐쇄했다.
그럼에도 적자는 쉽게 줄지 않았다. 지난해 1분기 411억 원, 2분기 424억 원, 3분기 27억 원의 EBITDA 손실을 기록하며 김 의장의 인수 결정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커졌다. 그러나 4분기 418억 원의 흑자를 기록하며 반전에 성공했다. 국내 주요 명품 플랫폼인 머스트잇, 트렌비, 발란 등이 자본잠식에 빠진 것과 달리 파페치는 ‘군살 빼기’ 전략으로 수익성을 회복해나가고 있다.
김 의장은 2025년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1년 전만 해도 분기당 1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내던 파페치가 이제 손익분기점 수준까지 개선됐다”며 “운영을 간소화하면서 글로벌 럭셔리 커머스 시장에서 혁신을 주도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일각에서는 쿠팡의 5억 달러짜리 베팅이 가성비 높은 투자였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2018년 뉴욕증시에 상장한 파페치는 한때 기업가치가 230억 달러까지 치솟았지만 명품 소비 둔화와 수익성 악화로 추락을 거듭했다. 결국 5억 달러에 쿠팡의 품에 안기면서 극적인 반전을 맞이한 것이다.
남성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파페치가 EBITDA 기준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중장기 성장 동력인 신사업 부문의 경쟁력을 증명했다”며 “파페치 인수 후 통합 작업(PMI)이 마무리되면서 실적 회복 속도도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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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페치가 EBITDA 기준 흑자전환에는 성공했으나 실질 이익 창출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합뉴스>
파페치가 1년 만에 적자 폭을 크게 줄일 수 있었던 건 과감한 ‘군살 빼기’ 덕분이다. 연간 손실이 1조 원에 달했다는 것은 불필요한 비용이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김범석 의장은 이 점에 주목해 잉여 인력과 비효율적인 사업 부문을 정리하며 1년간 비용 절감에 집중해왔다.
문제는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을 지다. 비용 절감만으로는 수익성 회복에 한계가 있다. 실제 파페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매출도 함께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수요를 되살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명품 플랫폼은 구조적으로 수익성이 높지 않다. 통상 명품 플랫폼이 가져가는 중개 수수료는 10% 안팎이나 자체 쿠폰 발급 등을 고려하면 한 자릿수에 머무르는 경우가 잦다. 직매입을 확대하려고 해도 재고 리스크가 커 쉽지 않다.
과거에는 명품 소비 열기가 뜨거워 낮은 마진율을 높은 판매량으로 만회할 수 있었지만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소비 위축으로 판매량이 줄어들자 명품 플랫폼의 낮은 수익성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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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석 쿠팡Inc 의장. <쿠팡>
업계에서는 파페치가 쿠팡의 최대 강점으로 꼽히는 물류 시스템과 시너지를 내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명품 플랫폼은 직매입보다 오픈마켓 비중이 훨씬 크다. ‘재고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직매입 확대가 쉽지 않다. 특히 명품은 보관 조건이 까다롭다. 가죽 제품만 해도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전문 창고 시설이 필수적이다.
여기에 반품 문제도 복잡하다. 해외 부티크에서 들여온 제품은 반품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국내 고객이 반품을 요청하면 플랫폼이 이를 떠안아야 한다. 제품 하나만 반품돼도 손실이 수천만 원에 이를 수 있다. 오픈마켓 형태로 운영되는 이상 쿠팡의 거대한 물류망을 그대로 활용하기엔 한계가 뚜렷하다.
김 의장은 콘퍼런스콜에서 “파페치는 전 세계 190여 개국에서 매달 4900만 명의 방문자를 유치하고 있다“며 ”이러한 기반을 토대로 글로벌 럭셔리 커머스 부문에서 고객 경험에 혁신적 변화를 가져올 잠재력에 대한 기대가 높다“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