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지원 정책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확대하는 한편 관세 인상을 압박하며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하는 전략을 동시에 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정책을 유지하는 동시에 수입관세 인상 계획을 협상카드로 앞세워 대만 TSMC를 비롯한 기업에 첨단 공정 투자를 압박하는 방식이다.
26일 미국 정치전문지 더디플로맷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 취임으로 바이든 정부 시절에 시행된 산업 정책의 전망이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든다.
바이든 정부는 반도체 지원 법안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기반으로 미국에 반도체와 전기차, 재생에너지 관련 투자를 벌이는 기업에 대규모 보조금과 세제혜택을 약속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캠페인 과정부터 이러한 두 정책이 모두 잘못된 선택이라고 비판하며 취임 뒤 이를 모두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할 가능성을 시사해 왔다.
미국 전기차 구매자에 제공하는 인센티브 폐지가 결정되며 이런 방침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 지원 정책은 트럼프 정부에서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전기차나 재생에너지와 달리 첨단 반도체는 사실상 대안이 없는 산업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공급망은 미국의 인공지능(AI) 경쟁력 향상과 중국의 기술 발전 견제에도 중요하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에서 지원 계획을 원점으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
다만 더디플로맷은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을 고려할 때 반도체 지원 법안이 유지되더라도 미국 정부의 전략은 이전과 확실한 차이를 보일 공산이 크다고 전했다.
TSMC를 비롯한 기업의 미국 내 첨단 반도체 생산 투자 확대를 유도하면서도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새 정책이 자리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더디플로맷은 미국 정부 지원과 수입관세 인상이 모두 해외 반도체 관련 기업의 투자를 이끌 수 있는 방식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모두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바라봤다.
정부 보조금 및 세제혜택과 관세 압박을 각각 당근과 채찍으로 활용해 투자를 더 적극적으로 확대하도록 하는 방식을 쓸 것이라는 전망이다.
▲ TSMC 미국 애리조나 반도체 파운드리 1공장 사진.
트럼프 정부가 반도체에 수입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만 자국 내 투자를 압박한다면 반도체 기업들은 이를 감수하고 미국 내 투자 계획을 재검토할 가능성이 크다.
더디플로맷은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반도체 지원 법안을 추진해 TSMC를 비롯한 기업이 미국에 제조 거점을 더 확대하도록 이끌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보조금 정책을 비판했지만 오히려 이를 더 강화하며 미국 제조업 활성화 및 공급망 강화를 추진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한 셈이다.
다만 이와 동시에 반도체를 비롯한 여러 품목에 수입관세 인상을 예고하며 무역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전략도 동시에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이 이어졌다.
미국 정부는 과거 자동차 수입을 제한하는 정책으로 일본 제조사들의 현지 투자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봤다. 이를 반도체 산업에서도 재현할 가능성이 떠오른다.
더디플로맷은 미국이 TSMC에 첨단 반도체 기술 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있지만 대만 정부가 이를 제한하고 있어 상황이 다소 복잡하다고 전했다.
만약 트럼프 정부가 반도체뿐 아니라 대만에서 수입하는 여러 물품에 관세 인상을 예고하며 압박을 더한다면 대만 정부가 이를 방어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이 미국과 무역에서 큰 폭의 흑자를 보고 있어 이런 압력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군사 지원이 대만의 국가 안보를 지키는 데 중요하다는 점도 트럼프 정부가 협상에서 우위를 쥐고 있는 배경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관련해서도 미국의 지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이며 압박을 더하고 있다.
더디플로맷은 이런 상황이 대만에도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을 더했다. 미국에 TSMC를 비롯한 제조사의 생산 거점을 확대한다면 국가 간 협력도 더욱 강화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미국에 반도체 파운드리 공장을 신설하는 삼성전자와 한국에도 교훈을 남긴다.
삼성전자도 바이든 정부에서 보조금 지급을 확정받았지만 트럼프 대통령 취임으로 전망이 불투명해졌고 미국과 긴밀한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의 안보에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디플로맷은 “대만 정부는 TSMC를 앞세워 트럼프 정부에 로비 활동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며 미국 기업과도 협력을 확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기조에 대응해야 한다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