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국민의힘이 당 지도부 붕괴에 따른 비상대책위원장 인선을 놓고 난항을 겪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로 비상상황에 놓인 당을 이끌기 위해 당 중진들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지만 거론되는 ‘친윤(친윤석열)’ 인사들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인선 난항, '독이 든 성배' 놓고 당내 갑론을박 치열

▲ (왼쪽부터) 국민의힘 권영세 의원, 권성동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 나경원 의원. <연합뉴스>


당권을 쥘 수 있지만 정치적 부담과 책임이 뒤따르는 비대위원장 자리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는 모습이다.

20일 국민의힘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전날부터 가동한 비대위원장 추천위원회에서 당 원내대표가 겸임하지 않고 별도로 비상대책위원장을 선출하자는 데 목소리를 모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에서는 선수별로 모임을 열어 비대위원장 선출을 위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한 당 재선의원 모임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원 마이크보다는 투 마이크가 낫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전했다.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은 3선 모임 직후 "비대위원장이 할 일이 많은데 원내대표가 혼자 할 경우 업무 과부하가 걸려 투톱체제로 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4선 모임 뒤에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은 "경험 많은 원내 인사가 투톱 체제로 지금 당을 이끌어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에 공감대를 이뤘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국민의힘은 이번 주말까지 개별 의원들의 모임과 추천위원회를 통해 다음주 초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다.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19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20일까지 선수별로 추천위원회를 꾸려 의견을 제출하라고 전파했다”며 “주말에 고민을 해서 다음주 초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국민의힘은 지난 14일 최고위원들 전원이, 지난 16일에는 당대표가 사퇴하면서 당헌·당규에 따라 비대위 체제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비대위란 선거패배 같은 당의 위기상황에서 지도부가 조기사퇴할 경우 구성하는 임시지도부를 말한다. 비대위는 원칙적으로 짧은 기간 운영되나 당의 위기가 지속되면 비대위 체제가 장기화되고 비대위원장이 공천을 비롯한 막강한 권한을 가지게 될 때도 있다.

다만 위기상황에서 비대위원장을 맡아 정치적으로 수혜를 입은 경우는 드물며 정치적 타격만 입고 물러날 수 있다는 위험이 있어 ‘독이 든 성배’로도 불린다.

비대위원장 재임 뒤에 정치적으로 도약한 극히 드문 경우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있다. 

박 전 대통령은 2011년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을 맡아 당 쇄신을 이끌었으며 2012년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뒤 19대 총선에서 152석으로 다수당을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듬해인 2013년 대선에서 1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국민의힘은 2020년 미래통합당에서 당명을 변경한 이후 4년 동안 5번이나 비대위를 겪었다. 그동안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주호영 국회부의장,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 한동훈 전 대표, 황우여 전 의원 등이 비대위를 책임졌다.

현재 국민의힘에서는 비대위를 누가 이끌어야 하는지를 놓고 눈치싸움이 치열한 상황이다.

상황이 엄중한 만큼 당 중진들이 맡아야 한다는게 의견이 많다. 원내에서는 5선의 권영세, 나경원 의원과 4선 김기현 의원이, 원외에서는 원희룡 전 국토부장관 등이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권성동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까지 맡으면 된다는 시각도 있었으나 이 방안은 현재로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원석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19일 SBS라디오 김태현의정치쇼에 나와 "비대위원장 당권도 당권이기 때문에 보통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당선될 가능성이 낮은 중진들이 이 자리를 노린다"며 "나경원 의원의 경우를 보면 몇번이나 당대표에 도전했는데 잘 안된 경우이고 적극적으로 다른 중진들을 만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다만 이들 중진들의 친윤 색채가 강하다는 점, 이들이 당 분열을 막고 국민 여론을 되돌릴 수 있는 신선한 인물인지를 놓고는 이견이 없지 않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인선 난항, '독이 든 성배' 놓고 당내 갑론을박 치열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012년 1월2일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 당론으로는 이에 반대했고 최근에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지연시키려는 듯한 행보까지 보이고 있다. 이에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책임여론이 국민의힘에 일정 부분 옮겨붙는 형세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갤럽이 20일 발표한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도는 24%로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최저치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48%)와 지지도 격차(24%포인트)도 두배로 벌어졌다. 

이 조사는 한국갤럽 자체조사로 17일부터 19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이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이같은 여론을 고려할 때 계엄사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친윤 중진들이 비대위원장을 맡는다면 국민의힘이 앞으로 계속 국민에게 외면당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뉴스쇼에서 "비대위의 과제는 첫째로 윤석열 대통령이 잘못됐다고 입장 표명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둘째는 당의 잘못된 부분을 고치고 국민들이 원하는 보수정당으로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YTN라디오 신율의뉴스정면승부에서 "비대위가 해야 될 제일 첫 번째 과제는 윤 대통령과 우리 당을 분리하는 작업"이라며 "거기에 적합한 비대위가 구성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로 인해 당 안팎에서 어떤 인물을 비대위원장으로 내세워야 할 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모양새로 파악된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9일 의원총회 직후 기자들을 만나 "친윤색이 옅은 중진이 비대위원장을 하자는 의견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당내 탄핵반대파와 찬성파, 중진과 초재선 의원들의 소통을 담당할 수 있는 신선한 인물이 비대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상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YTN라디오 신율의뉴스정면승부에서 "국민의힘이 앞으로 아주 절절할 정도의 반성과 또 치열할 정도의 자기 개혁에 나서야 된다고 생각된다"며 "김재섭 의원이 초선이지만 비상계엄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했고 이런 사람이 리더십을 받아 이끄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성동 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20일 현안 브리핑을 통해 비대위원장 인선과 관련해 "이런 저런 의견들이 대립 중이어서 고심하고 있다"며 "당내외 인사를 가라지 않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