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의 경차 '더 뉴 캐스퍼'. <현대자동차>
완성차 업체들이 수익성 높은 차종 판매에 집중하면서 경차 시장은 지난해 단 3개 차종만으로 재편된 데다, 남은 모델들도 노후화하면서 당분간 국내 경차 판매가 늘어나긴 어려워 보인다.
14일 국내 완성차 업계 판매실적 자료를 종합하면 올해 1~10월 경차는 모두 8만2486대가 판매돼 전년 동기에 비해 18.5% 감소했다.
이는 같은 기간 국내 전체 승용차 판매량의 전년 대비 감소율 11.6%보다 높은 것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국내 누적 신차 등록대수는 올해 3분기 누적으로 120만9154대로, 1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누적됐던 이연수요가 작년 대부분 소진된 가운데 경기침체와 고금리에 따른 부담이 소비자의 지갑을 닫고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특히 올해 들어 10월까지 차급별 판매량을 보면 소형차(이하 SUV 포함)는 15만4453대로 1년 전보다 2.4% 소폭 감소했고, 준중형·중형차는 56만139대로 같은 기간 오히려 7.6% 증가했다.
불황에는 값싼 경차가 잘 팔린다는 통설과는 정반대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경차 판매가 부진한 배경에는 국내 소비자의 큰차 선호 추세도 깔려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차종이 가장 직접적 원인으로 지목된다.
2022년 1만 대 넘는 판매실적을 올리며, 국내 경차 시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한국GM 쉐보레 스파크가 단종됐고, 작년 4월 판매를 최종 중단했다. 이에 따라 국내 경차시장은 기아 레이와 모닝, 현대자동차 캐스퍼 등 단 세 차종으로 재편됐다.
더욱이 국내 경차 시장 수요에 한계가 있는 데다 수익성 확보가 쉽지 않아 경형 차급에서 신차 출시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하나의 신차가 출시되면 약 3년마다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을, 약 6년마다 완전변경(풀체인지)을 거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2004년 첫 출시된 모닝은 3세대 모델 출시 6년 만인 작년 7월 2차 부분변경 모델을 내놨고, 2011년 나온 레이는 2017년과 2022년 두 번의 부분변경을 거쳤을 뿐 완전변경 모델 출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기아 모닝과 레이는 본사 공장의 높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해 노사 합의 아래 모두 동희오토가 위탁 생산하고 있다. 캐스퍼 역시 국내 1호 상생형 일자리기업 광주글로벌모터스(GGM)가 위탁 생산한다.
▲ 기아의 경차 '더 2025 레이'. <기아>
국내 경차 시장 규모는 2012년 20만2844대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한 하락세를 보이다 2020년 10만 대 선이 무너졌고, 2021년에도 9만6842대에 그쳤다.
2021년 9월 노후 경차 시장에 10년 만에 등장한 경형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캐스퍼는 소비자 눈길을 잡아끌며 2022년 4만8002대가 팔려나갔다. 캐스퍼 신차 효과에 힘입어 국내 경차 판매량은 2022년 13만3023대, 지난해 12만3679대를 기록했다.
다만 3파전으로 재편된 올해 국내 경차 시장에서 출시 4년차를 맞은 캐스퍼는 올 1~10월 3만706대 판매량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보다 14% 줄었다. 최근 출시된 전기차 모델 '캐스퍼 일렉트릭'이 커진 차체로 소형차로 분류된 영향이 컸다.
생애 첫 차로 경차를 첫 손가락에 꼽는 것도 이젠 옛말이 됐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20대 소비자가 많이 구매한 차종은 준중형 세단 현대차 아반떼(3483대), 준중형 SUV 기아 스포티지(3399대), 소형 SUV 기아 셀토스(3273대), 준중형 SUV 현대차 투싼 순으로 나타났다.
캐스퍼는 2112대로 경차 중 유일하게 '톱5'에 이름을 올렸고, 레이는 805대, 모닝은 296대에 그쳤다.
완성차 업체의 중·대형 SUV 등 고수익 차종 판매에 집중하는 전략과 큰 차를 선호하는 국내 소비자 트렌드가 맞물린 가운데 국내 경차 시장 하락세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불황 때 저렴한 차 판매가 느는 건 당연한 논리이지만, 최근 국내에는 모닝, 레이, 캐스퍼뿐이라 살만한 경차가 없다"며 "수익성이 좋지 않다보니 경차 신차 체인지(부분변경, 완전변경) 간격이 너무 길고, 정부 역시 경차에 대한 혜택을 20년 전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비자 입장에선 신차도 없고, 혜택도 특별히 없다보니 엔트리카(첫차)로도 경차를 사지 않아 국내에서 경차 존재감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