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퇴직연금 증권사로 옮기고 싶은데 회사 계약 사업자가 은행밖에 없네요.”
7년차 직장인 A씨는 31일부터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가 시행되면 현재 은행에서 운용하는 적립금을 증권사로 옮길 계획을 세워뒀다.
▲ 삼성증권이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시행에 앞서 24일 공개한 '바꾸는 게 답입니다' 캠페인 광고 영상. <삼성증권>
A씨는 몇 년 전 회사 퇴직연금 제도가 DB(확정급여)형에서 DC(확정기여)형으로 바뀌면서 상장지수펀드(ETF) 중심으로 투자를 하고 있다. 다만 은행에서는 ETF 실시간 매매를 할 수 없는 불편함이 있다.
증권사는 국내 시장에 상장된 ETF 800여 개를 대부분 취급하고 있어 포트폴리오 선택지를 넓힐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꼽힌다.
다만 A씨의 고민은 의미가 없었다.
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은 같은 유형 안에서 퇴직연금 실물이전을 할 수 있지만 DC형의 경우 한 가지 제약이 더 붙는다.
DC형은 적립금은 회사가 쌓아주고 운용은 개인에 맡기는 유형의 퇴직연금 제도다. 이렇다보니 적립금을 넣어주는 회사와 퇴직연금 계약이 돼 있는 사업자 계좌로만 이동이 가능하다.
DC형인데 이번 실물이전 제도를 이용해 다른 사업자 계좌로 갈아탈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수익률이 어디가 좋은지,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재구성할지에 앞서 우리 회사가 어떤 퇴직연금 사업자들과 계약을 맺고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하는 셈이다.
더불어 회사가 퇴직연금을 알아서 운용하는 DB형은 애초에 개인이 실물이전으로 적립금을 옮길 수 없다.
퇴직연금 실물이전이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했다면 다음 단계는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들 가운데 어디로 이전할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번 실물이전 제도는 기존 계좌의 퇴직연금을 현금화하지 않고 투자하던 상품 그대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예금 등 상품 만기 전 해지 수수료 비용이나 펀드와 ETF 등 상품 환매에 따른 투자 손실 부담 등을 없애 퇴직연금 운용의 편의성을 크게 개선했다.
다만 어디로든 자유롭게 옮길 수 있다고 해서 아무런 제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옮겨가려는 금융사에서도 기존 퇴직연금 운용상품과 같은 상품을 취급하고 있어야 ‘실물’을 그대로 들고 갈 수 있다. 은행들이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를 앞두고 취급하는 ETF 상품 확대에 발벗고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퇴직연금 환승 고객을 유치하려면 상품을 많이 갖추고 있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물이전 대상에서 처음부터 제외된 상품들도 잘 확인해야 한다.
▲ 우리은행은 13일 우리금융그룹 광고모델 아이유씨가 등장하는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관련 광고를 공개했다. <우리은행>
예금과 채권, 원리금보장 파생결합사채 등 원리금보장 상품들은 다 실물이전이 된다. 원리금비보장 상품에서는 채무증권, 펀드(머니마켓펀드는 제외), 상장지수펀드(ETF)은 이전이 가능하다.
다만 주식과 리츠, 주가연계증권(ELS), 금리연동형 보험과 디폴트옵션 상품은 실물이전이 안 된다.
실물이전 제도를 활용하려는 대부분의 수요에서 가장 관심이 높은 수익률과 수수료 부분도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퇴직연금 실물이전이 가능한 DC형과 IRP는 결국 각 개인이 어떤 상품을 선택하고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진다. 전체 은행업권, 증권업권 단순한 수익률 통계 수치보다 개별 사업자의 상품 종류와 수, 운용관리 능력 등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퇴직연금은 장기 운용자산이라는 점에서 수수료가 수익률만큼 중요하다.
단 DC형에서 기업이 넣어주는 적립금, 즉 기업의 부담금에 관한 수수료는 기업이 부담한다.
대신 DC형에서는 개인이 추가로 납입한 금액에 관한 수수료는 직접 부담하는 만큼 추가 납입 계획이 있다면 이를 고려해 상품 전략을 구상하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31일부터 국내 퇴직연금 사업자 44곳 가운데 37곳에서 실물이전 제도를 시행한다. 이는 퇴직연금 적립금 기준 94.2%에 이르는 규모다.
금융감독원 통합연금포털에 따르면 2024년 3분기 기준 국내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400조878억 원으로 집계된다. 이 가운데 은행권 적립금 규모는 210조2811억 원, 증권사는 96조5328억 원, 보험사는 93조2654억 원이다.
퇴직연금업계의 한 관계자는 “각 금융사 및 업권별로 수수료와 유형별 수익률을 비교해 개인의 투자 성향에 가장 부합하는 곳을 선택해야 한다”며 “특히 각 금융사마다 제공하는 상품의 라인업이 다를 수 있고 퇴직연금 계좌 보유자산의 일부만 이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원하는 상품이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 실물이전 가능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