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이 중국산 전기차·배터리·태양광·철강·알루미늄 등 상당수 품목에 대한 관세를 대폭 높임에 따라 국내 산업계가 반사이득을 얻을 것으로 예상이 나온다. 하지만 소재·부품·장비 등 중국 의존도가 높은 업종은 타격이 받을 수 있다. 게다가 미·중 분쟁이 격화돼 글로벌 공급망에 문제가 발생하면 국내 산업 전체가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주요국의 관세전쟁에 따라 한국 기업들이 맞이한 상황을 짚어보고 대응책을 모색하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상]미국 EU 관세폭탄에 중국 '맞불' 태세, 한국 산업 반사이익 낙관 금물
[중]배터리·태양광 글로벌 관세전쟁 한복판에, 중 보복시 공급망 차질 우려
[하]미국의 대중국 관세 폭탄, 자동차 "반사이익 크지 않아" 철강은 "우려"

 
[관세전쟁 격화-중] 배터리·태양광 관세전쟁 한복판에, 중국 보복 때 공급망 차질 우려

▲ 중국을 향한 미국과 유럽의 관세인상 기조에 따라 국내 배터리, 태양광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누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다만 국내기업들은 관세전쟁이 장기화하는 데 따른 불확실성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국내 배터리, 태양광 업계가 글로벌 관세전쟁의 흐름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유럽연합(EU)까지 참전해 관세전쟁 전선이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와 태양광 등은 중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품목인 만큼, 국내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누릴 여지가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외교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미·중 사이에 애매한 위치에 놓인 한국의 상황을 고려하면,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관세전쟁의 부정적 여파에 언제라도 노출될 수 있어 이해득실을 따지기 쉽지 않아 보인다. 

27일 산업계 안팎 취재를 종합하면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적용하는 미국과 유럽 정책 기조에 따라 국내 배터리, 태양광 기업들에게 우호적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중국산 배터리와 태양광 셀에 적용되는 관세가 대폭 오르는 만큼 세계 시장에서 중국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국내 기업들의 제품 수요가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정부는 중국산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셀에 적용되던 관세를 기존 7.5%에서 올해 25%로 인상하기로 했다. 또 태양광 셀에 적용되는 관세는 기존 25%에서 올해 50%까지 올린다. 

전기차에 적용하는 관세는 기존 25%에서 올해 100%로 인상된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로서는 중국산 배터리 셀에 부과되는 관세 인상뿐 아니라 중국산 전기차 관세 인상에 따른 간접적 반사이득도 기대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럽도 미국에 뒤따라 중국을 겨냥한 관세전쟁에 동참할 준비를 하고 있다. EU는 오는 6월6일까지 중국산 전기차 반보조금 조사를 매듭짓고, 7월 관세 인상을 포함한 예비 조치를 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미국과 유럽의 대중국 관세 정책은 단발성에 그치기보다 중장기적 중국배제 정책기조가 자리잡는 과정인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값싼 중국산 제품 공급에 따른 자국 산업 경쟁력이 약해지는 것에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국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자국 내 소재 부품 등 공급망에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도 확대할 채비를 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도 이런 정책기조를 반영하고 있는 사례다.

국내 배터리, 태양광 기업들은 미국과 유럽 현지화 전략을 발 빠르게 추진해왔던 만큼, 자국내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미국과 유럽의 보호주의 기조에도 대응해왔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최근 공격적 증설을 통해 북미에서 가장 많은 생산능력을 확보한 업체들로 꼽힌다. 이들은 매년 조 단위 설비투자를 진행하며, 생산능력을 지속 확대한다는 계획을 마련해 놓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5~2026년에는 북미에서만 연산 300GWh 넘는 배터리 생산능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60kW 용량의 배터리 기준으로 연간 전기차 500만 대에 탑재할 수 있는 양이다.
 
LG에너지솔루션, 미 애리조나주서 원통형과 ESS LFP배터리 단독공장 착공

▲ LG에너지솔루션이 3일(현지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퀸 크릭에서 원통형 및 에너지저장장치 리튬인산철 배터리 전용 생산공장 착공에 들어갔다고 4일 밝혔다. 사진은 애리조나 공장 조감도. < LG에너지솔루션 >

SK온은 2025년 북미에서 연간 185.5GWh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예정이다. 삼성SDI는 2027년까지 북미에서 연산 100GWh에 가까운 생산시설을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배러티 3사는 유럽 현지화 전략을 북미보다 오히려 더 먼저 진행했다. 3사는 유럽에서도 가장 많은 생산능력을 지닌 업체들로 평가된다. 

태양광 업체 한화솔루션도 미국 달튼 공장을 통해 연간 모듈 생산능력 5.1GW를 확보하고 있다. 올해 예정대로 카터스빌 공장이 완공되면 회사의 태양광모듈 연간 생산능력은 8.4GW로 확대돼 북미 최대 규모가 된다. 8.4GW는 미국에서 약 130만 가구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량이다. 

하지만 글로벌 관세전쟁이 장기화하면, 중국 정부의 관세 보복 조치에 따른 공급망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게 걱정거리다. 중국을 향한 관세전쟁을 촉발한 곳이 미국과 유럽인 만큼 당장에는 한국 기업들이 중국 정부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진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중국 정부로서도 배터리와 태양광 등이 경제 성장 청사진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이기 때문에 결국 한국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정부는 미국과 유럽의 관세인상 조치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자국에 공급되는 수입차 관세율 인상을 고려하며, 맞불을 놓을 태세다. 

앞서 중국 정부는 1월 프랑스산 코냑을 비롯한 수입 브랜디 반덤핑 조사를 시작한 데 이어 이달 미국, EU, 일본 등에서 생산한 폴리포름알데히드 혼성중합체(POM. 공업용 플라스틱 원료 물질)에 대한 반덤핑 조사에 착수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국내 기업들이 가장 경계하고 있는 것은 중국 정부의 보복조치가 공급망 통제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배터리와 태양광 산업의 글로벌 가치사슬(밸류체인)에서 중국 기업들은 원료와 소재, 완제품 대부분의 영역을 다루고 있다. 이 가운데 원료와 소재에서 중국 기업 영향력은 매우 높다. 

특히 배터리 산업에서는 단기 중국 원료와 소재 의존도를 낮추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국내 기업들은 산화리튬, 황산코발트, 산화코발트, 황산망간, 흑연, 전구체 등 원료, 소재를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한다. 
 
[관세전쟁 격화-중] 배터리·태양광 관세전쟁 한복판에, 중국 보복 때 공급망 차질 우려

▲ 양병내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왼쪽 두번째)가 지난 24일 서울 중구 달개비 컨퍼런스하우스에서  '미국 무역법 301조 발표에 따른 관련업계 간담회'를 주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실제 중국 정부가 지난해 흑연 수출 통제 지침을 발표했을 때 국내 배터리 셀·소재사들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현재로서는 중국 수출 통제가 실효적 영향을 주고 있진 않지만, 중국 정부가 배터리 소재를 무기화하면 국내 기업들은 언제라도 치명적 상황에 놓일 수 있다. 

미국 정부조차 중국이 흑연 시장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을 고려해 중국산 흑연을 사용한 배터리 제품에 대해 불이익을 주는 규제 시행 시기를 늦추기로 했다. 

국내 기업들이 세계 관세전쟁에 따른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만큼, 우리 정부도 민·관 소통을 긴밀히 하며 각국 소통 채널을 활성화하고 한국산 제품에 대한 수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무역통상과 외교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산업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양병내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는 지난 24일 미국의 대중 관세인상 조치와 관련한 민·관 합동 간담회에서 “글로벌 통상환경이 급변하고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통상 이슈에 대한 세심하고 적극적 대응이 우리 기업의 비즈니스 활동에 더욱 중요해졌다”며 “미국 측 조치와 관련해 업계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우리 기업에 예기치 않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미국 정부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