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역할 강조하는 의장 후보군, 미 하원의장 같은 역할엔 법과 제도적 한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왼쪽),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가운데),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 <연합뉴스/페이스북 갈무리>

[비즈니스포스트] 22대 국회의장직을 놓고 4월 총선에서 압도적 과반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의 중진 의원들의 사이에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국회의장 경선 출마 의사를 밝힌 후보자들은 저마다 국회의 역할과 행정부 견제를 강조하는 선명성 경쟁을 하고 있어 과거 의장이 ‘기계적 중립’을 지키던 기존 관례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인다.

미국의 하원 의장(Speaker of the House)처럼 다수당의 의사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셈인데 우리나라는 법제도가 미국과 달라 국민의힘 측의 반발이 예상된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22대 총선으로 민주당 최다선(6선) 의원이 되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조정식 의원 외에도 정성호·우원식 의원과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 5선 중진들이 차기 국회의장에 도전 의사를 보이고 있다.

차기 국회의장 후보군들은 모두 관행으로 지켜오던 기계적 중립에만 머물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특히 강경개혁론자로 꼽히는 추미애 전 장관은 지난 23일 MBC 뉴스외전에서 “국회의장이 무조건 ‘중립 기어’ 넣으면 안 된다”며 “맹목적 협치가 아닌 위기 타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추 전 장관은 당선 직후에도 “국회의장이 중립은 아니다”라며 “지난 국회를 보면 서로 절충점을 찾으라는 이유로 각종 개혁입법이 좌초되거나 또는 의장의 손에 의해서 알맹이가 빠져버리는 등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같은 6선으로 온건 성향으로 평가되는 조정식 의원 외에도 정성호·우원식 의원, 박지원 전 국정원장까지 후보군들이 선명성을 내세우며 경선에 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기계적 중립을 강조하던 21대 국회의 박병석 전 국회의장과 김진표 국회의장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국회의장은 관례상 국회 1당 최다선 의원들이 맡아왔다. 21대 국회 전반기에는 6선의 박병석 민주당 의원이, 후반기에는 5선인 김진표 의원이 맡았다. 

국회의장 경선에 출마해 당선되면 후보자는 각 당에 탈당계를 제출해 당적을 포기한다. 이는 국회법 제20조2(의장의 당적 보유 금지)에 따르는 것이다. 

국회의장의 ‘당적 포기’를 법제화한 것은 국제적으로도 특이한 경우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이나 일본에서 의장의 당적포기는 법이 아닌 관행에 따른 것이고 미국 하원에서는 당적포기를 하지 않는다. 

국회의장은 국회법 제10조(의장의 직무)에 따라 국회를 대표하고 의사를 정리하며 질서를 유지하고 사무를 감독해야하기 때문에 당적을 포기하는 것이 각 당의 협조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 아래 탈당이 법제화됐다.

그러나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기계적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해온 국회의장들은 거대 양당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국회의장은 민주당으로부터는 원할 때 본회의를 열지 않아 답답함을 일으켰다는 지적을 받는 한편 국민의힘에게는 ‘편파적 국회운영’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22대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민주당 내에선 국회의장이 ‘기계적 중립’을 지킬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행정부 견제뿐만 아니라 입법부 내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미국 하원 의장처럼 다수당의 목소리를 적극 대변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다만 미국과 우리나라는 법제도가 달라 미국 하원 같은 역할을 국회의장이 하는데 무리가 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국회 역할 강조하는 의장 후보군, 미 하원의장 같은 역할엔 법과 제도적 한계

▲  김진표 국회의장이 2023년 11월30일 오후 국회의장실 앞에서 연좌농성 중인 국민의힘 의원들을 지나 본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하원 의장은 한국과 다르게 당적을 포기하지 않고 하원 다수당의 원내대표가 의장을 관례적으로 맡아오고 있다. 

원내대표가 의장으로 취임하면 후임 원내대표를 임명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의장이 다수당 원내대표의 역할을 계속해서 한다. 

현재 하원의장은 공화당 마이크 존슨(James Michael Johnson)으로 4선(임기 2년)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4선 의원이 하원의장이 된 것은 19세기 이후 처음이다. 

마이크 존슨 의장은 직전 의장이었던 케빈 매카시(Kevin Owen McCarthy) 의장의 후임자다. 케빈 매카시 의장은 미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공화당 강경파의 ‘반란표’로 인해 해임결의안이 통과돼 지난해 10월 해임됐다. 
 
케빈 매카시의 하원 의장 불신임 배경은 공화당의 당론을 따르지 않은 점이 꼽힌다. 공화당이 연방정부 셧다운과 예산안 거부 방침을 정했으나 메카시 전 의장이 이에 따르지 않으면서 갈등이 격해졌고 그 결과 해임 결의안 투표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시정연설문을 면전에서 찢어버린 것으로 유명한 낸시 펠로시(Nancy Patricia Pelosi) 전 하원의장 역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하원에서 공공연하게 드러내며 행정부뿐 아니라 하원에서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끼쳤다. 

한국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협치가 어려워지고 있다. 이에 미국 하원 의장처럼 강한 리더십과 결단력을 가진 국회의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민주당 후보자 및 지지자들 가운데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학계에선 한국과 미국의 법제도가 달라 국회의장이 미국 하원 의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무리가 따른다는 시각이 있다.

한국의 국회의장은 당적을 포기하고 의회내 질서를 유지할 법적 의무를 지니고 있는데 양당간 절충안 마련 등 의사조율 없이 한 정당의 의사에 따라 국회를 이끈다면 이를 위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명분으로 국민의힘에서 국회의장 해임 결의안을 올릴 수 있으나 통과될 가능성도 없는 데다 반란표가 나온다 해도 구속력이 없어 정치적 혼란이 커질 위험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

한 정치학자는 비즈니스포트스에 "미국은 하원선례집(Precedents of the U.S. House of Representatives)에 따라 하원의장을 해임할 수 있지만 한국은 국회 선례집에 의장 해임에 관한 내용이 없다"며 "국회 선례집이 미국의 하원선례집에 버금갈 정도의 위상과 구속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서도 민주당 국회의장 후보들의 선명성 경쟁 분위기를 놓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희용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23일 논평에서 민주당 국회의장 후보군들의 최근 강경 발언과 관련해 “기본적인 공직자의 자질마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날을 세웠다. 이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