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대기업 방송 소유·겸영 규제 개선에 나서 태영그룹이 SBS를 품고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하지만 정작 태영그룹 지주회사 티와이홀딩스가 보유한 SBS 지분은 태영건설 워크아웃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됐다. 경영정상화를 이루지 못하면 윤세영 창업회장이 애정이 깊은 방송사업을 지키기 힘들 수 있다.
 
방송소유 규제는 풀리는데 정작 SBS 지분은 담보로, 태영건설 워크아웃 속앓이

윤세영 태영그룹 창업회장이 1월9일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 <비즈니스포스트>


14일 국무총리 산하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 등에 따르면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소유·겸영 규제 개선이 추진되고 있다. 

현재 자산총액이 10조 원 이상인 대기업은 일정비율(지상파 지분 10%, 종편·보도 채널 30%)이 넘는 방송사 지분을 소유할 수 없다. 대기업이 방송을 사유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태영그룹은 2022년 4월 발표된 공시대상기업집단 명단에서 자산규모가 11조2천억 원에 이르러 상호출자제한집단으로 분류됐다. 이에 따라 원칙적으로 티와이홀딩스가 보유한 SBS 지분 36.92%를 정리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정부는 관계 법령상 자산 기준을 높여 대기업의 방송 진출 문턱을 낮추려 한다. 구체적 대기업 기준은 국내총생산(GDP)와 일정 비율에 연동해서 정하기로 했다. 관련 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않은 상황에서 콘텐츠사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규제 완화를 검토하는 것이다.

앞서 양정숙 무소속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의원 9명은 2021년 12월 방송사업자의 주식 또는 지분의 소유를 제한하는 기업의 자산총액을 현행 10조 원에서 국내 총생산액의 0.5% 이상 1.5%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뼈대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은 약 2천조 원가량이었다. 국내총생산의 1% 수준으로 기준을 정하면 자산총액 20조 원 이상부터 규제가 적용돼 태영그룹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SBS 보유 지분을 지킬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다만 태영건설이 워크아웃 신청을 한 상황에서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고 있는 점이 변수다. 방송 규제 완화는 되레 SBS가 비싼 값에 팔리는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방송법에 따르면 방송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자에 대한 제한이 까다롭다. 실제 태영그룹은 지난 1월 채권단이 SBS 지분을 매각을 하거나 담보로 잡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요청에 법적 제약이 따른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방송채널사용사업자는 시장 점유율, 사업자수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범위를 초과해 방송채널사용업을 경염하거나 지분을 소유할 수 없다는 조항이 방송법 8조에 포함돼 있다. 또한 지상파방송사업을 할 때는 방송법 제9조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방송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자에 관한 규제가 완화된다면 SBS 값어치가 높아질 수 있는 셈이다. 14일 SBS 주가는 장중 한때 전날보다 16.36% 높은 2만8450원에 거래되는 등 강세를 나타냈다. 시장에서 지분 매각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윤세영 창업회장이 방송사업에 애정이 깊은 만큼 SBS 지분 매각 사태는 허용하지 않으려 할 것이란 시선에 무게가 실린다. 윤 창업회장은 1990년 국내 최초 민영사인 SBS를 설립하고 대표이사를 맡아 직접 경영에 나섰다. 

노조에서 지속적으로 방송의 소유와 경영 분리를 요구해왔으나 윤석민 태영그룹 회장과 윤 창업회장은 2017년이 돼서야 SBS 경영권을 내려놨다. 

태영그룹이 SBS 지분을 지켜내기 위해선 순조롭게 워크아웃 절차에 진입해 성공적으로 졸업을 하는 방법이 최선으로 보인다.

태영건설은 지난 2월 SBS 지분을 담보로 잡고 채권단으로부터 4천억 원가량의 신규 자금을 지원 받았다. 일시에 지급받는 것이 아닌 마이너스 통장과 같은 개념으로 자금을 쓸지 말지는 상황에 따라 달려 있다고 태영건설은 설명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윤세영 창업회장은 지난 1월 기자회견에서 ‘필요시’ SBS 지분을 담보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현실화가 됐기 때문이다.

태영그룹은 앞서 태영인더스트리, 에코비트, 블루원, 평택싸이로 매각을 통해 1조5천억~1조6천억 원에 이르는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자구안을 내놨다. 자구안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핵심인 에코비트 매각이 늦어지는 바람에 채권단이 신규 자금을 추가 지원했다는 말이 나온다.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은 태영건설 워크아웃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이라 꾸준히 설명하고 있지만 의구심은 지속되고 있다. 

산업은행은 당초 워크아웃 개시 3개월 후인 4월11일에 기업개선계획을 의결하기로 했지만 PF 대주단이 제출한 사업장 처리방안을 분석하는 데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실사법인의 요청에 따라 1개월 내에서 의결 기한을 연장하기로 했다.
 
방송소유 규제는 풀리는데 정작 SBS 지분은 담보로, 태영건설 워크아웃 속앓이

▲ 태영건설 서울 여의도 사옥.


채권단협의회는 실사법인이 수행한 실사 결과를 토대로 태영건설의 정상화 가능성을 평가한다. 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다고 판단하면 자본잠식을 해소할 수 있는 충분한 자본확충 방안을 포함한 기업개선계획을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태영건설은 2023년 결산 결과 영업적자를 보고 자본잠식 상태가 됐다. 티와이홀딩스가 전날 공시한 자료를 보면 태영건설은 지난해 연결기준으로 매출 3조3711억 원, 영업적자 451억 원, 순손실 158억 원을 봤다. 

매출은 29.4% 늘었지만 영업손익과 순손익이 적자로 전환했고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5626억 원으로 2022년 7409억 원가량에서 1조3천억 원가량이 줄어든 것이다. 

윤 창업회장은 태영건설이 13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앞서 1월 밝혔다.

다만 그동안 우발채무로 분류된 PF사업장에 대한 보증채무를 주채무화했다. 또한 태영건설 전체 자산의 자산성을 검토한 결과와 PF사업장의 추가 손실에 대한 충당부채 예측분도 지난해 실적에 반영한 영향으로 풀이됐다. 

자본잠식이 되면 유가증권시장 공시규정(제40조)에 따라 매매거래가 즉시 정지된다. 이에 따라 태영건설 주식은 매매거래가 중지됐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