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ESS 확대에 리튬배터리 화재 위험 재조명, '시한폭탄 무시' 비판도

▲ 2021년 7월30일 호주 빅토리아주에 설치된 테슬라의 ESS '메가팩'에 화재가 발생한 모습. 소방관 150명과 소방차 30대가 동원돼 나흘 동안 진화했다. <빅토리아주 소방당국 >

[비즈니스포스트] 전 세계적인 전기차 및 에너지저장장치(ESS) 보급 확대 정책으로 시장 성장이 빨라지는 과정에서 리튬이온 배터리의 화재 위험성이 무시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다수의 제품이 화재 발생 가능성에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어 시한폭탄과 같은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15일(현지시각) 에너지 전문매체 PV매거진은 컨설팅업체 클린에너지어소시에이츠(CEA) 보고서 내용을 인용해 “전 세계 ESS 가운데 26%가 화재 감지나 진화 기능에 문제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당 보고서는 미국과 한국, 중국 등에 설치된 3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ESS 현황을 조사한 결과를 담았다. 4개 가운데 1개 꼴로 화재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뜻이다.
 
ESS의 발열을 관리하는 시스템에서 문제를 보인 설비도 전체의 18%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CEA는 보고서를 통해 “화재 진압 및 열 관리 시스템은 기능 안전에 매우 중요하며 이러한 시스템의 결함은 화재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에 널리 쓰이는 리튬은 질량과 부피 대비 에너지 밀도가 높고 고속 충·방전에 유리하다는 장점을 갖춰 에너지와 모빌리티 산업에서 사용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전기차와 ESS는 2차전지의 4대 구성 요소인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 가운데 양극재에 리튬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리튬은 화학 반응성이 너무 높아 화재에 취약하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에너지 전문매체 리차지(Recharge)는 테슬라 등 기업의 과거 ESS 화재 사고를 조망한 기사에서 리튬 배터리가 “터지기 직전의 폭탄 같다”는 평을 전했다.
 
전기차·ESS 확대에 리튬배터리 화재 위험 재조명, '시한폭탄 무시' 비판도

▲ 미국 캘리포니아주 몬테레이 카운티에 위치한 발전사 비스트라(Vistra)의 ESS. 1.2GWh 규모로 22만5천여 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용량이다. LG에너지솔루션이 배터리를 공급했다. < LG에너지솔루션 >

실제 사례를 보면 2021년 호주 빅토리아주에 설치한 테슬라 ‘메가팩’ 배터리에 불이 붙어 150명의 소방관이 꼬박 나흘 동안 진화 작업을 진행했던 적이 있다. 

한국에서도 수 년 전까지 ESS에서 다수의 화재가 발생한 사례가 있었다. 당시 ESS 배터리를 공급했던 한국 배터리업체도 화재 원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곤혹을 치렀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이처럼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일반 화재와 달리 물을 이용해 불을 끄기도 어려워 위험성이 더욱 크다.

전기차 배터리에서 발생하는 화재 사고 역시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리튬배터리의 화재 위험성과 관련한 문제가 앞으로 더욱 부각된다면 이는 한국 배터리 3사를 비롯한 전 세계 배터리업체와 전기차 및 ESS 제조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을 비롯한 한국 배터리업체들은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화재 안정성이 높은 배터리 소재를 개발하고 ESS 관리 소프트웨어를 고도화해 화재 가능성 감지 정확도를 높이는 등 방식이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국내외 LG에너지솔루션 ESS 시설에는 특수 소화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고, 신규 소화시스템 및 제품도 지속적으로 개발 및 적용하고 있다"며 "소화 시스템뿐 아니라 배터리 및 EMS(모니터링) 시스템 개발을 통해 안전성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리튬배터리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이 이뤄지면서 화재 발생 비율이 줄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온다.

미국의 비영리 연구기관인 전력연구소(EPRI)는 2019년부터 2023년까지 ESS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가 연간 10건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ESS 설치 대수가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는 만큼 화재가 발생하는 비율은 낮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EPRI 수석 기술 리더인 락쉬미 스리니바산은 리차지를 통해 “언론이 배터리 화재에 주목하다 보니 사고 사례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화재가 발생하는 비율은 감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차지는 배터리 제조 공정이 표준화되고 소재가 고도화되면서 ESS와 같은 배터리 기반 제품의 안전성을 높이는 데 큰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