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24년, 한국 전자산업이 위기에 놓였다. 가격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이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배터리, TV, 가전 등 전방위적으로 국내 기업과 경쟁을 벌이며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오랫동안 침묵하던 일본 전자 기업들도 부활하고 있어 자칫 한국 전자산업이 '넛크래커'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에서도 머지 않아 중국의 도전을 받을 것이라는 위기감까지 생기고 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이 맞딱드린 상황을 짚어보고 이를 해결할 방안을 3회에 걸쳐 싣는다.

[상] 1위 꿰차는 중국과 부활하는 일본, 한국 ‘넛크래커’ 위기
[중] 차세대 성장산업 ‘배터리’마저 중국에 치이고, 일본·유럽에 쫓겨
[하] 제조업 통째로 중국에 밀릴 판, 두뇌산업 승부수 띄워야

 
 
[위기의 한국 전자산업-상] 1위 꿰차는 중국과 부활하는 일본, 한국 ‘넛크래커’ 위기  

▲ 국내 전자 산업이 중국의 약진과 일본의 부활에 어려움이 더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사진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공장. 

[비즈니스포스트] 중국이 전자산업 분야에서 세계 1위를 꿰차는 품목을 늘려가며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오랜 침체기에 허덕이던 일본 전자산업마저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 전자산업은 구조적인 침체를 벗어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어,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여 경쟁에 밀리는 '넛크래커' 위기에 몰리고 있다.
 
1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중국 기업들은 미국의 대중 제재에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세계 시장 곳곳에서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중국 국영매체 신화통신은 “최근 지방 양회에서 발표된 2023년 지방정부 업무보고는 중국이 2024년에도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확신을 더해준다”고 보도했다. 

특히 반도체를 비롯한 전기전자 부문의 중국의 성장세가 거세다.

중국 매체 화웨이센트럴은 지난 1월30일 화웨이가 지난해 9월 출시한 메이트60 시리즈의 누적 판매량이 3천만 대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메이트60 시리즈는 출시 4개월 만에 삼성전자 갤럭시S23 시리즈의 전 세계 판매량을 훌쩍 넘어섰다. 게다가 메이트60 시리즈는 핵심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비롯해 부품 절반 가량이 중국산으로만 구성됐다. 

특히 화웨이가 직접 개발하고 중국 파운드리업체 SMIC이 제조한 7나노 미세공정 AP ‘기린9000S’는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적극 방어하고 있는 미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중국은 미국 정부의 7나노 이하 첨단 미세공정 반도체 생산을 막기 위한 무역규제 조치에도 스스로 7나노 AP 반도체 상용화에 성공한 것이다.

이런 만큼 메이트60 시리즈의 성공은 전반적인 중국 전자산업 역량이 한층 성숙했음을 의미하며, 중국의 반도체 파워가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란 전망을 낳았다.

중국 디스플레이 제조사 BOE는 2023년 4분기 폴더블(접는) 올레드(OLED)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한국 선도기업인 삼성디스플레이를 처음으로 판매량에서 앞질렀다.

시장조사업체 DSCC에 따르면 BOE는 주요 고객사인 화웨의 스마트폰 선전에 힘입어 세계 폴더블 올레드 시장점유율이 2023년 3분기 16%에서 4분기 42%로 상승했다. 

계절적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삼성디스플레이가 지난 2019년 3분기 폴더블 올레드 시장에 진출한 뒤 2021년 1분기를 제외하고 모든 분기에 폴더블 패널 출하량 1위를 지켜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BOE는 단시간에 한국 올레드를 따라잡은 것이다. 

중국은 로봇 부문에서도 산업용과 서비스용 모두 세계 최대로 꼽히는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확장세를 거듭하고 있다. 

중국 로봇산업연맹의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중국 로봇 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점유율은 8%에 불과했지만 2023년 상반기 43.7%까지 높아졌다.

로보락과 에코백스 등 중국 청소로봇 기업들은 중국 내수시장을 넘어 해외로 빠르게 진출했다. 가전업계에 따르면 중국 청소로봇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을 제지고 한국 시장을 거의 장악했다. 

중국은 더 공격적으로 로봇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중국 산업정보기술부(MIIT)는 2025년까지 휴머노이드 로봇을 대량 생산하고 2027년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달성할 것이라는 목표를 밝혔다.
 
[위기의 한국 전자산업-상] 1위 꿰차는 중국과 부활하는 일본, 한국 ‘넛크래커’ 위기  

▲ 일본 라피더스의 홋카이도 반도체공장 예상 조감도 그래픽 이미지. <라피더스>

중국의 성장세가 거센 가운데 일본도 오랜 부진을 끊고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0%로 한국(1.4%)을 제칠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 경제성장률이 일본에 뒤처지는 것은 외환위기(1998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일본의 대표 전자기업이 소니는 2023년 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 영업이익이 1조1700억 엔(약 10조5639억 원)을 기록했다. 2023년(1월~12월) 삼성전자 영업이익 6조5400억 원에 비해 소니가 4조 원 가까이 앞선 것이다. 소니가 삼성전자 영업이익을 앞선 것은 1999년 이후 24년 만에 처음이다.

또 다른 일본의 대표 전자기업인 히타치제작소는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회계연도에 7880억 엔(당시 약 10조2천억 원)의 역대최대 규모 순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엔 7200억 엔(약 6조5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며 부진에서 완연히 벗어난 모습을 보였다.

도쿄일렉트론(반도체 장비)과 키엔스(각종 센서) 등 일본 상위 전자 업체들도 지난해 각각 10%, 20%대 성장률을 보이며 저성장 구간을 빠져나왔다.

게다가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강국 재건을 목표로 국내외 기업들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1980년대 세계 반도체 시장의 절반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했던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일본은 대마 TSMC 반도체 공장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시설 투자금의 40%에 가까운 4조3000억원 가량을 지원했다. 정부 주도로 설립한 자국 반도체기업 라피더스의 연구개발과 생산 투자에도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며 반도체 생태계 부활에 힘을 싣고 있다.

라피더스는 2030년 1.4나노 미세공정 기술을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본 정부의 전폭적 지원에 따라 삼성전자 등 선두기업과의 기술격차를 단기간에 2~3년 안팎으로 좁히겠다는 것이다. 

반면 국내 전자산업은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어 대조를 이루고 있다.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TV·냉장고 등 가전, 로봇, 센서기기 등 산업 전 분야에서 머지 않은 미래에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반도체를 제외한 모든 전자 산업이 10여 년 전부터 정체하며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가격 경쟁력과 일본의 기술력 사이에 끼어 한국 전자 산업이 도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비등하다. 

한국 GDP 성장률은 2021년 4.3%에서 2022년 2.6%, 지난해 1.4%로 크게 떨어졌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2.1%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닛케이는 최근 “한국 경제의 감속이 선명해졌다”며 “반도체 불황 같은 일회성이 아닌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잠재성장률 부진 등 구조적 과제도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나병현 기자 김바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