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올해 '반도체 덤핑' 리스크 현실에 가까워져, 미국정부 규제 강화 불가피

▲ 중국 SMIC의 반도체 생산공장. < SMIC >

[비즈니스포스트] 올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시장에 중국 기업들의 물량공세가 가장 큰 위험요소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중국 반도체기업이 공급과잉을 주도해 업황 악화를 이끌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더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는 일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갈등을 다룬 유명 저서 ‘칩 워’를 쓴 경제학자 크리스 밀러는 2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문을 내고 중국 반도체기업과 관련한 경고장을 냈다.

그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반도체 물량공세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올해부터 반도체 공급 과잉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를 수 있다고 바라봤다.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가 최근 시설투자 금액을 75억 달러(약 10조 원) 증액한다고 밝히며 반도체 생산량을 크게 늘리겠다는 계획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크리스 밀러는 SMIC를 비롯한 중국 반도체기업이 막대한 정부 지원을 받아 의도적으로 공급 과잉을 일으키는 사례가 많다며 시장 논리를 벗어난 전략을 쓸 수도 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가 중국에 첨단 반도체 생산장비 반입을 금지하는 규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자동차와 전자제품, 가전 등에 쓰이는 구형 반도체를 중심으로 투자가 집중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는 대만 TSMC와 같은 주요 반도체기업이 이미 중국의 물량공세를 우려하고 있다며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중국의 태양광모듈 덤핑과 같은 사례가 재현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 기업들이 태양광모듈 생산량을 크게 늘려 저가에 공급하며 전 세계를 장악했던 것과 같은 일이 구형 반도체시장에서 충분히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 밀러는 이런 상황에도 중국의 반도체 덤핑 리스크와 관련한 문제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어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여러 국가가 경각심을 높여야만 하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중국 반도체기업들의 이러한 움직임을 파악하고 중국산 반도체에 고율 관세를 매기는 등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구형 반도체는 일반적으로 제품에 탑재된 상태로 수입되기 때문에 관세를 부과하기 쉽지 않고 완제품에 적용된 반도체 원산지를 모두 파악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크리스 밀러는 결국 미국 정부가 지금과 같이 SMIC 등 중국 반도체기업을 상대로 직접적인 제재를 시행하거나 일부 산업 분야에 집중적으로 규제를 강화해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SMIC의 7나노 미세공정 반도체 등 신제품에 미국 기술이 활용되었는지 면밀하게 조사하는 한편 전기차와 의료기기 등 특정 분야에 중국산 반도체 활용 여부를 확실히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산 반도체를 사들여 활용하고 있던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규제 강화 기조에서 더욱 까다로운 심사를 받게 될 수 있다는 전망도 이어졌다.

블룸버그 등 외신보도에 따르며 미국 상무부는 자국 기업을 대상으로 중국산 반도체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한 전수조사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크리스 밀러는 “구형 반도체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분야가 올해 공급과잉 상태에 놓일 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미국 정부가 다양한 대응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