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옥석가리기에 건설사 우발채무 우려 고조, 서울 강남 사업장도 안심 못 해

▲ 정부가 부실 금융사 및 건설사에 관한 구조조정 방침을 내비치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정부가 PF(프로젝트파이낸싱) 재평가를 통해 자기책임 원칙 진행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내놔 건설사들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금융권 PF 대출 규모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연체율이 크게 오르자 금융사 부실을 막기 위해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PF 대출 신용보강을 제공한 건설사들이 영향을 받아 우발채무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든다.
 
19일 금융당국 안팎에 따르면 정부는 부동산PF 사업장 재평가를 통해 일부 사업장의 부실이 전체 시스템 위험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을 추진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18일 “부동산 PF, 가계부채 등 잠재 취약요인들로 인한 불안요인이 잔존하고 있다”며 “잠재 위험을 엄격히 관리하고 민생경제 부담을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앞서 12일 “사업성이 미비한 사업장이나 재무적 영속성에 문제가 있는 건설사·금융사는 시장원칙에 따라 적절한 조정·정리, 자구노력, 손실부담 등을 전제로 한 자기책임 원칙의 진행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일부 충격을 감내하더라도 전체 시스템 위험으로 번지기 전에 손볼 것은 손봐 부실 사업장을 정리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급격히 불어난 부동산PF 대출과 높아진 연체율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PF 옥석가리기에 건설사 우발채무 우려 고조, 서울 강남 사업장도 안심 못 해

▲ 사진은 서울 지역 아파트 모습. <연합뉴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부동산PF 규모는 2020년 말 92조5천억 원에서 2023년 9월 134조3천억 원으로 45.2% 급증했다. 같은 기간 연체율은 0.55%에서 2.42%로 1.87%포인트 늘었다.

PF는 미래 현금흐름을 담보로 자금을 빌리는 부동산 금융기법이다. 부동산 경기가 호황일 때는 분양성과에 힘입어 대출연장이나 상환 관련 위험이 부각되지 않는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가 악화하거나 금융시장이 경직되면 가장 먼저 채무불이행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토지를 확보하기 위한 브릿지론을 거쳐 사업이 본격화하면 본PF로 넘어간다. 그러나 시행사가 부도가 나거나 대주단이 사업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대출을 회수하려고 하면 본PF로 넘어가지 못하고 경·공매 등의 구조조정이 실시된다. 

9월 말 기준 경·공매 진행 건수는 120개로 지난해 말 70개, 올해 6월 말 100개에 이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만큼 사업이 원만히 진행되지 못하고 막혀 있는 사업장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더욱이 서울 최고의 입지를 자랑하는 강남 청담동에서도 부동산PF 만기연장이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나와 비수도권 부동산 PF 관련 우려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청담동 르피에르청담 채권자 협의회는 4640억 원 규모의 브릿지론 만기를 8월에서 내년 5월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해당 사업은 서울 청담동 프리마호텔에 최고 49층 고급 주거단지를 짓는 프로젝트다. 

최대 채권단인 새마을금고는 브릿지론 만기 연장을 거부해왔으나 르피에르청담 프로젝트가 서울시의 ‘도시건축 창의혁신 디자인’ 시범사업에 선정돼 사업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받아들였다는 말이 나왔다. 

다만 일각에서는 만기 연장에 따른 이자부담만 늘리는 것으로 부실 PF 사업장에 인공호흡기만 달아주는 꼴이라는 비판도 떠오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자기책임 원칙 이행을 강조하며 부실 금융사, 시공사 구조조정을 수면 위에 올린 만큼 건설사들이 긴장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건설사들은 자본능력이 더 낮은 시행사를 대신해 책임준공, 자금보충, 연대보증 등의 방법을 통해 PF 대출에 관한 신용보강을 진행한다. 이는 우발채무로 잡혀 건설사의 재무제표에는 반영되지 않지만 부실이 발생하면 건설사 채무로 전환된다. 

일부 건설사는 우발채무 관련 위험을 조기 차단하기도 한다.

대우건설은 지난 2월 초 울산 동구 주상복합아파트 개발사업 후순위 대출보증(브릿지론) 440억 원을 자체 상환하고 시공권을 포기했다. 사업이 진행될수록 손실이 커진다고 봐 손해를 감수하고 발을 뺀 것이다.

하지만 재무여력이 부족한 건설사들은 이런 방법을 택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으로 파악된다.

신용평가업계는 2024년 건설업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건설사들의 신용등급 하향압력이 커질 것으로 진단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5일 ‘점증하는 PF·유동성 위험 재무적 대응력이 필요한 시점’ 보고서를 통해 “비수도권 분양 및 비주택시장 침체가 장기화 될 것으로 예상되고 수도권도 둔화할 가능성이 보인다”며 “PF우발채무 대응, 고금리 등으로 건설업종 재무적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PF 옥석가리기에 건설사 우발채무 우려 고조, 서울 강남 사업장도 안심 못 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2일 부동산PF 부실과 관련해 시장 원리에 따른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밝혔다.<연합뉴스>


한국신용평가가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16개 건설사의 PF 보증규모는 2020년 16조1천억 원에서 2023년 9월 28조3천억 원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순차입금은 1조3천억 원에서 10조5천억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분양시장이 냉각돼 건설사의 현금흐름 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고금리 환경이 지속된다면 재무적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신용평가 등급을 획득하지 못하고 비수도권에서 사업을 벌이는 중견·중소 건설사들의 경영난은 더욱 심각해질 공산이 크다. 

지난 13일에는 광주 소재 건설사 해광건설이 부도처리 됐다. 최근에는 시공능력평가 16위인 태영건설이 워크아웃 신청을 검토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태영건설은 유동성 문제가 없다고 진화에 나섰는데 그만큼 시장의 우려가 높은 상황이라는 의미로 여겨진다.

나이스신용평가는 15일 "분양경기 침체에 따른 사업성 저하로 PF우발채무의 차환 및 현실화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며 “PF우발채무 규모가 과도하거나 비수도권 사업장 비중이 높은 건설사를 중심으로 신용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바라봤다. 류수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