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방수 커튼' 띄운다, 기후변화 폭우 피해 늘자 '하늘 댐' 개발 나선 일본

▲ 7월 일본 큐슈 사가현에서 홍수 피해자 구조 및 수색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구조대. <연합뉴스>

[비즈니스포스트] 기후변화로 '게릴라 호우(Guerrilla Rainstorm)'가 늘어난 일본에서 연구진들이 하늘에 방수 커튼을 띄워 폭우 피해를 막는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9일(현지시각) 블룸버그는 일본 교토 대학 연구진이 기후를 통제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교토대학 수해 및 수해대책 연구소의 야마구치 코세이 부교수를 중심으로 한 일 연구진은 최근 일본에서 빈번해진 '게릴라 호우'로 발생하는 홍수를 방지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아직 공식 용어가 없어 일본 언론들이 '게릴라 호우'라고 부르고 있는 이 현상은 시간당 50~100mm의 폭우가 '게릴라'처럼 갑자기 쏟아지는 걸 뜻한다.

시간당 최고 80mm 이상의 비가 직경 5km의 좁은 지역에 순식간 쏟아지는 한국의 '국지성 집중호우'처럼 일본의 게릴라 호우도 돌발홍수를 유발한다. 돌발홍수는 집중호우가 주거 지역 등 도심에서 기존 배수시설이 처리할 수 있는 양 이상으로 발생할 때 일어난다.

연구진은 게릴라 호우를 막기 위해 거대한 방수 소재로 된 커튼을 하늘에 띄우는 기술을 해법으로 제안했다. 방수 커튼을 대형 연에 매달아 보트로 견인해 하늘에 띄우면 특정 지역으로 지나친 수분이 유입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아이디어다.

야마구치 교수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이를 "하늘에 댐을 짓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표현했다.

연구진은 추가로 에펠탑 높이에 맞먹는 약 220미터 높이의 대형 풍력 터빈들을 다수 설치해 강력한 상승 기류 현상도 방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릴라 호우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적란운 형성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두 가지 방법 모두 기술적으로 실현이 가능하며 의도한 대로 효과를 내는 것도 확인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야마구치 교수는 "프로젝트를 위한 기계 장비는 향후 3년 내로 완성하고 2031년부터 실제 환경 테스트에 들어갈 것"이라며 "2040년에는 규모를 훨씬 키운 실험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토대 연구진은 ‘구름 씨앗’ 연구도 병행하고 있다.

구름 씨앗이란 특정 화학물을 구름에 살포해 인위적으로 비를 내리게 만드는 기후통제 방법의 일종이다. 중국과 호주, 한국에서도 관련 연구가 진행된 적 있다. 

교토대 연구진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확인한 결과 구름 씨앗을 활용하면 홍수 발생 빈도를 27% 감소시킬 수 있었다. 

미리 비를 내리게 만들어 짧은 시간 내에 강수량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야마구치 교수의 연구 계획에 일본 정부는 국립연구개발법인 과학기술진흥기구에서 운영하는 '문샷형 연구개발사업'을 통해 연구기금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문샷(moon shot)'은 달 탐사선의 발사 같은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뜻한다. 

블룸버그는 이에 "일본 정부와 달리 기후 전문가들은 대체로 교토 대학 연구진의 기술 구현 방식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고 전했다.
 
하늘에 '방수 커튼' 띄운다, 기후변화 폭우 피해 늘자 '하늘 댐' 개발 나선 일본

▲ 9월 태풍 '란'으로 무너진 일본 간사이 지방 교토 인근 가옥. <위키미디아 커먼스>

휴 윌러비 미국 플로리다 국제대학 지구환경부서 연구교수는 블룸버그를 통해 “저들이 말하는 커튼이 솔직히 풍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며 “풍력 터빈 또한 기술 결함이 굉장히 많아 현재 기술로는 날씨를 바꿀 만한 유의미한 출력은 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세계기상기구(WMO) 기술팀에서 재직한 이력이 있는 스티븐 심스 호주 모나쉬 대학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심스 교수는 “굉장히 야심찬 구상이지만 구현하기 어려운 기술”이라며 “컴퓨터 시뮬레이션 상으로는 가동이 잘 되는 것처럼 보이던 기술이 실제 환경에서는 제대로 작동하는 일은 드물다”고 설명했다.

해외 전문가들의 부정적 의견에도 일본 정부가 나서서 이러한 연구를 지원하는 배경에는 기후변화 추세가 있다.

일본에선 매년 홍수가 증가하고 있다. 일본 기상청(JMA) 통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20년 동안 발생한 시간당 50mm 이상의 폭우 사례는 334건이었다.1976년부터 1985년까지 226건이었던 데 비하면 폭우 발생이 몇십 년 사이에 50% 증가한 것이다.

올해 7월 일본 규슈 지역에선 갑작스레 하루에 400mm가 넘는 비가 내려 7명이 사망하고 수백억 엔 규모의 재산 피해를 입는 피해가 일어났다. 정확한 피해 집계는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5월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과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연구진이 공동으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9년 태풍 하기비스가 일본에 입힌 재산 피해 100억 달러(약 13조 원) 가운데 40억 달러(약 5조 원)는 기후변화 때문에 더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이 연구를 주도한 시한 리 옥스퍼드 대학 연구교수는 당시 블룸버그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기후적응을 하거나 탄소 배출을 줄이지 않는 기후변화를 향한 무대응은 이처럼 비싼 대가를 치르게 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 적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