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니의 지하수 보전 방법은 TSMC도 배워갈 정도이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일본 도쿄 = 비즈니스포스트 이근호 기자] “소니시티로 취재하러 오시는 건 어떨까요?”
TSMC도 벤치마크한다는 일본 소니의 물 관리 비법을 묻자, 소니 반도체 솔루션(SSS)의 홍보팀 매니저 야스코우치 요코(安河内 陽子)가 기자를 본사로 초청했다.
소니 반도체가 어떤 곳인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세계 1위 기업인 TSMC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이미지센서 반도체 분야에서만큼은 세계 시장 점유율 50% 이상 차지하는 1위 기업이다.
다른 반도체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물 부족 등 여러 가지 워터리스크에 노출되어 있지만, 이를 잘 극복하고 있는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소니 반도체를 포함한 소니 그룹은 글로벌 기업들의 물 경영 수준을 평가하는 세계적 비영리단체 ‘CDP’로부터는 3년 연속 A등급을 받기도 했다.
10월19일, 소니의 물 경영 노하우를 듣고자 일본 도쿄 미나토구의 소니시티를 방문했다.
◆ 최첨단 소니시티에서 만난 워터리스크의 ‘오래된 미래’
도쿄의 업무지구 중심가 미나토구. 20세기 산업시대 느낌의 콘크리트 빌딩 숲 사이에서 유독 21세기 분위기의 미래형 빌딩이 눈에 띄었다. 외벽 전체를 유리로 두른 ‘소니 시티’ 본사 건물이었다.
‘소니 시티’는 소니 그룹이 자사 건물을 부르는 별칭이다. 미나토구 포함 도쿄 오사키, 요코하마시 미나토미라이 등 3곳에 있다.
영어로 ‘시티(city)’는 단순한 거주지를 뜻하지 않는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정치 활동의 중심지를 뜻한다.
또한 ‘시티즌(citizen)’ 즉 사회 구성원으로서 공공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시민’과도 어원을 공유한다.
자사 건물을 ‘시티’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경제, 사회 구성원으로서 소니가 지니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 소니 본사는 일본 도쿄의 핵심 업무지구 지역인 미나토구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사진은 10월19일 소니 본사 건물인 '소니 시티'의 정문 앞. <비즈니스포스트> |
소니는 1946년 일본에서 설립된 다국적 기업이다. 20세기 중후반엔 전 세계 전자산업의 대표주자로 일본을 상징하는 브랜드 가운데 하나였지만 현재는 엔터테인먼트부터 금융, 반도체, 디스플레이를 넘나드는 다국적 기업 집단이 됐다.
소니시티 로비에서 소니의 역사와 현재를 엿볼 수 있었다. 로비 한 편에는 헤드폰 같은 전자제품부터 일명 ‘소니카’라 불리는 전기차 콘셉트 모델 ‘비전-S 02’ 같은 최첨단 제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인류의 기계 문명을 한 자리에서 보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소니시티에서 요코 매니저한테서 전해들은 소니의 물 관리 노하우는 기계적이지도, 최첨단적이지도 않았다.
물 부족 등 워터리스크가 우려되는 구마모토 반도체 공장 인근 지역에서 2003년부터 소니는 논에 물을 뿌렸다. 농한기에도 논이 물을 흡수할 수 있도록 도와 지하수를 늘리는, 지극히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 지하수 보충 프로그램 성공 비결은 ‘소쿠리 밭’, 투수율 최대 10배 높아
일본 소니에서 ‘지하수 함양(涵養)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이 방식은 영어로는 '지하수 보충 프로그램(grounwater recharge program'이라고 번역된다. 그야말로 사용한 지하수를 재충전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성공한 비결과 관련, 요코 매니저는 “지층 구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니의 반도체 공장이 있는 구마모토현은 규슈섬에 있다. 9개의 활화산이 활동하는 규슈섬은 물이 잘 스며드는 화산 퇴적물로 구성된 지층이 많다. 투수율이 높다는 뜻이다.
구마모토 사람들은 이런 땅을 ‘자루다(ざる田)’ 즉 ‘소쿠리 밭’이라고 부른다.
구마모토현 현지에서 근무하는 무라나카 코우지(村中 浩二) 부장이 비즈니스포스트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전해준 별명이다. 그는 소니 반도체 제조법인의 환경·안전·보건 총무부에서 일하고 있다.
코우지 부장은 “소니와 계약을 맺고 물을 채워두는 논이 주로 위치한 구마모토현 시라카와강 인근 토양은 소쿠리 밭”이라고 소개했다.
구멍 뚫린 소쿠리에 물을 부으면 아래로 다 빠져나가는 듯, ‘소쿠리 밭’에선 물이 지하로 잘 빠져나간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TSMC가 구마모토현의 지하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짚은 10월24일자 보도에서 이 지역에서 물이 땅 속으로 스며드는 비율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 최대 3배가량 높다고 전했다.
요코 매니저는 “구마모토현 지역 당국은 공식적으로 5~10배 가량 투수율이 높다고 발표한 적 있다"고 말했다.
▲ 사진은 일본 구마모토현에 위치한 소니의 협력 농가가 소유한 밭이다. 작물을 재배하지 않을 때 밭에 물을 채워 지하로 스며들게끔 하고 있다. 표지판에는 소니가 2003년부터 지하수 보충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소니> |
TSMC는 소니, 일본 자동차부품회사 덴쇼와 함께 합작법인 ‘JASM’을 설립하고 2024년까지 반도체 파운드리 1공장을 완공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2공장 설립 논의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반도체 공장 신설 땐 수자원 확보를 위한 대책이 필수적이다. 반도체를 세척하는 공정에서 대량의 물이 쓰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 6월9일자 보도에 따르면 이 공장들이 가동되면 매일 1만2천 톤(t)의 지하수가 쓰일 것으로 추산된다. 현지에서 약 5만7천 가구가 쓰는 물의 양에 해당한다.
◆ 1년에 올림픽수영장 1356개 분량 지하수 채운 소니, 지역 환경보전 유공자 표창 받아
일본 공영방송부터 미국 경제매체까지 이 문제를 꾸준히 보도하는 이유는 또 하나 있다. 구마모토현 반도체 공장들과 지역민들이 지하수라는 하나의 수자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170만 명에 달하는 구마모토현의 주민들 가운데 80%가 지하수를 수돗물로 사용한다.
코우지 부장은 “그래서 지하수의 양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은 소니에게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미래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니는 물을 채우기로 한 농가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을 20년째 이어오면서 지역사회와 협력 관계를 다졌다.
환경단체 지하수 솔루션 이니셔티브(GRIPP) 자료에 따르면 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했던 2003년 당시 1천 제곱미터(㎡), 대략 300평 면적의 논에 30일 동안 물을 가둬두는 조건으로 농가에 지원한 보조금 규모는 1만1천 엔(약 10만 원)이었다. 많지는 않지만 적지도 않은 금액이었다.
이 돈은 소니와 농가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됐다.
▲ 소니는 지하수 보충 프로젝트에 참여한 농가에 재정지원 외에도 인력을 파견해서 일을 거든다거나 해당 농지에서 재배한 쌀을 구매해 직원 식당에서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사회와 협력한다. 사진은 2023년 6월 소니와 지하수 보충 프로젝트로 협력하는 논에 소니 임직원들이 찾아가 모내기를 돕는 모습. <소니> |
덕분에 구마모토현의 소니 이미지반도체 공장은 “취수한 물의 양보다 더 많은 지하수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코우지 부장은 “소니가 지하수를 보전하는 프로그램으로 2022년에 보충한 물의 양은 약 339만 세제곱미터(㎥)”라며 “소니 반도체 솔루션이 구마모토현에 운영하는 이미지센서 반도체 생산설비에서 취수한 물보다 많은 양”이라고 자랑했다.
1세제곱미터는 1톤에 해당한다. 즉 2022년 한 해 소니의 프로그램으로 보충된 지하수가 339만 톤에 이르렀던 셈이다. 올림픽수영장 1356개를 채울 수 있는 분량이다.
이런 소니의 노력은 2022년 제3회 구마모토 환경대상 특별상 및 2022년 지역 환경보전 유공자 표창 수상으로 지역사회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 받았다.
현재까지도 소니는 보조금뿐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현지 농가와 협력하고 있다. 모내기철엔 임직원이 직접 논에 방문해 모를 심는다. 농한기에 물을 채워뒀던 논에서 쌀이 수확되면 이를 구매해 사내 식당에서 직원용 식사로 제공한다.
◆ 소니 CDP 수자원 관리 평가에서도 3년째 A등급, 물 관련 리스크에 효과적 대응
소니의 지하수 함양 프로그램이 구마모토현과 같은 특정 지역에서만 가능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화산 지형이 아닌 장소에서는 사용할 수 없는 방식이라서다.
소니는 구마모토현 외의 제조설비에서도 물 사용량을 줄이는 다양한 방식을 도입해 CDP로부터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다.
기업의 환경 관련 활동을 공시하는 지속가능보고서에 소니가 수자원을 관리하는 구체적 방법들이 소개됐다.
소니의 2023년 지속가능보고서에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 발생하는 가스를 제거하고 남은 폐수를 재사용하거나 빗물을 회수해서 화장실 세정수에 활용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 사진은 10월19일 도쿄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시바우라 물재생센터의 모습. 소니는 이곳에서 처리한 생활하수를 본사 건물로 끌어다가 냉각용도로 사용한다. <비즈니스포스트> |
기자가 방문한 소니시티도 인근 시바우라(芝浦) 물재생센터에서 정화한 하수 처리수를 끌어다가 기계장비의 냉각수로 쓰고 있었다.
소니는 지역 특성에 맞게끔 수자원을 관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소니의 지속가능 보고서는 “물은 순환하는 자원으로서 물 관련 문제는 지역성이 높다”며 “소니는 사업장이 위치한 지역별 수자원 리스크에 맞는 활동을 추진하면서 물의 적정 이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명시한다.
요코 매니저는 소니의 물 경영 소개를 마치면서 소니 그룹엔 환경 활동과 관련 크게 두 가지 접근법이 있다고 요약했다. 하나는 ‘책임’, 또 하나는 ‘공헌’.
물 사용이 많은 반도체 기업으로서 소니는 환경에 ‘책임’을 지고 수자원을 돌려놓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지역농가와 상생하는 길을 찾음으로써 사회와 환경에 ‘공헌’하고자 애쓰고 있었다.
특히 ‘공헌’ 개념은 소니의 사업과 기술을 통해 사회와 환경에 있는 다양한 과제 해결에 공헌해 나간다는 목표라고 요코 매니저는 강조했다.
그의 말에서 소니 직원이 ‘시티즌’으로서 갖는 자부심이 묻어 나왔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워터리스크, 물이 산업안보다] 폭우와 가뭄 등 극단적 기후현상은 세계 많은 지역에서 점차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해 9월 한반도에 몰아친 115년 이래 최악의 폭우로 포항제철소 고로는 사상 처음 가동을 완전히 중단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공장 운영에 필요한 수자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투자 계획을 고심하고 있다. 물이 너무 많아도, 부족해도 문제다.
인구 증가와 산업 활성화, 기후변화로 ‘워터리스크(water risk)’, 물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일이 산업 안보에 중요한 과제가 됐다. 워터리스크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반도체, 철강, 화학, 발전 등 주요 산업은 물론 국가와 지역경제도 위험해진다.
비즈니스포스트는 국내외 주요 기업과 물 관리 선진국의 리스크 관리 및 대응사례를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한국위원회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함께 발굴해 보도한다. 최신 동향과 해법 관련 기사들은 비즈니스포스트 워터리스크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