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 보급률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는 북미에서 리튬인산철(LFP)배터리로 저가형 시장도 공략할 준비를 하고 있다. 

완성차업체들이 전기차 대중화를 위해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는 상황에서 공급망 탈중국 기조가 강한 북미에서 LFP배터리 사업 확장을 꾀하는 LG에너지솔루션이 중국 배터리의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LG엔솔 ‘탈중국’ 북미에서 LFP 대안으로 부각, ‘전기차 속도조절론’은 부담

▲ LG에너지솔루션이 북미 시장에서 생산을 준비중인 리튬인산철 배터리가 북미시장의 탈중국 기조에 중국산의 대안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4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중국 배제 기조에 따라 실제 중국 배터리기업의 북미시장 진출이 차단되는 징후가 포착됨에 따라 국내 배터리기업들과 북미 전기차시장에서 점유율을 키우기 원하는 완성차업체들의 협력관계가 한층 깊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미국 완성차업체 포드가 중국 배터리기업 CATL과 함께 미시간주 마샬에 건설하려던 리튬인산철 배터리공장 건설을 중단한 배경 가운데 하나로 중국기업을 배제하려는 미국정부 차원의 정책적 기조가 꼽힌다. 

포드는 공장 건설 중단과 관련해 배터리 생산에 따른 비용 부담이 표면적 이유라고 밝히고 있다. 다만 이전부터 포드가 중국기업과 협력하는 문제를 두고 미국 정가의 비판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포드의 결정이 경영적 관점이 아닌 정치적 관점에 따른 것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포드 역시 공장건설을 추진하면서 중국기업과 협력하는 데 따른 비판적 시선을 의식해 신설하는 배터리공장 지분 100%를 자신들이 확보해 둔 상태에서 CATL은 배터리 생산기술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협력한다는 우회적 방법을 선택하기도 했다.   

포드로서는 CATL과 협력이 여의치 않은 만큼 이전부터 북미에서 협력관계를 구축해왔던 SK온과 밀월관계가 좀 더 공고해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포드는 SK온과 테네시주와 켄터키주에 전기차 배터리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 공장들은 두 회사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를 통해 운영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포드가 CATL과 협력하려던 분야가 저가형 모델로 쓰이는 리튬인산철배터리 쪽인 만큼 북미에서 리튬인산철배터리 생산시설 확대를 빠르게 추진했던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을 도모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원래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GM과 돈독한 관계를 기반으로 북미시장 영향력 확대를 꾀해왔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이 각각 배터리시장 경쟁 관계인 데다 GM과 포드 역시 완성차시장 경쟁자인 터라 자연스럽게 LG에너지솔루션-GM, SK온-포드 동맹이 형성됐다. 

하지만 근래에는 전기차시장 성장과 이에 따라 늘어나는 배터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배터리기업과 완성차기업 사이 동맹관계가 합종연횡식의 복잡한 구도로 형성되고 있다. 전통적 동맹관계를 벗어나 협력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포드가 유럽시장을 염두에 두고 추진했던 튀르키예 배터리 합작공장 건설을 처음에 SK온과 진행하려하다가 올해 초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것도 동맹관계가 복잡다단해 지고 있는 사례로 볼 수 있다. 

포드가 이미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관계를 구축해 놓은 만큼 CATL을 대신할 리튬인산철배터리 협력사로 LG에너지솔루션을 선택할 여지도 큰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이 북미에서 리튬인산철배터리 생산능력 확대에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만큼 향후 저가형 모델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완성차업체들로서는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해야 할 이유가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LG에너지솔루션은 현재 애리조나주에 미국 최초의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전용 배터리 생산공장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3조 원을 투자해 16GWh 규모로 건설되는 이 공장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이 독자 개발한 파우치형 LFP 배터리가 생산된다. 올해 착공을 시작해 2026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LG엔솔 ‘탈중국’ 북미에서 LFP 대안으로 부각, ‘전기차 속도조절론’은 부담

▲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9월 열린 'RE+2023' 에서 ESS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한 4대 핵심 사업전략을 발표하며 LFP배터리 기술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사진은 LG에너지솔루션의 'RE+2023' 전시부스 모습. < LG에너지솔루션 >

일단은 전기차용이 아닌 에너지자장치용으로 리튬인산철배터리를 만드는 것이지만 LG에너지솔루션이 리튬인산철배터리 생산능력을 갖추고 북미에서 관련 공급망을 구축하게 되면 전기차용 리튬인산철배터리로 영역을 확장할 여지가 커질 수 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도 3월 정기 주주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리튬인산철배터리 양산 시점을 묻는 질문에 “올해 일부 에너지저장장치용이 나오고 2025년부터 전기차용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포드가 리튬인산철배터리 생산에 나서는 데는 저가형 모델을 탑재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튬인산철배터리는 삼원계배터리와 달리 비싼 원료인 코발트와 니켈을 쓰지 않아 생산비용이 30%가량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산업이 얼리어답터(초기 구매자)시장에서 대중시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인 만큼 이전보다 가격 경쟁력이 더 중요해진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 초기 구매자들이 전기차 구매를 마치면서 올해 들어 전기차 판매 성장률이 점차 둔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다수 대중으로 전기차 수요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전기차 원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완성차업체들로서는 정치적 부담을 안고 중국기업과 협력해 저가형배터리 채용을 늘리는 대신 고가제품인 삼원계배터리에서 기술력을 입증한 데다 리튬인산철배터리 생산능력도 키우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과 협력을 타진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급변하는 전방 전기차시장 수요에 맞춰 LG에너지솔루션도 배터리 화학구성(케미스트리) 다변화 전략을 구사하며 2026년부터 리튬인산철(+망간), 미드니켈/하이망간 등을 적용해 선제적으로 시장 대응을 할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리튬인산철은 국내 소재기업, 미국 스타트업과 협업으로 양산구조를 조기에 확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전기차 가치사슬(밸류체인)과 관련한 공급망 구축의 어려움으로 전기차시장의 성장률이 예상보다 완만해질 수 있다는 점은 LG에너지솔루션처럼 글로벌 생산능력 확대에 가장 앞서 있는 기업에게는 위험요인(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현 시점에서 공급망 리스크는 여전히 매우 높기 때문에 전기차 육성 정책 역시 속도조절에 나설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배터리 수요 성장의 기울기도 완만해질 수 있음을 고려해야한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미국이 2024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전기차 가치사슬 모든 영역에서 전기차시장의 급속한 성장을 예상한 공격적 투자보다는 불확실성 최소화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공화당 내 60% 넘는 지지율을 확보하며 재집권 행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이 9월 15~20일 진행한 공개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조 바이든 대통령과 가상 양자대결에서 9%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집계됐다.  

대선 결과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의 전기차 확대 정책이 전면 수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해 그동안의 정책기조가 유지된다 하더라도 대선 전까지는 미국 정부 차원의 전기차와 관련된 가치사슬 투자가 미온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디트로이트 연설에서 “전기차는 너무 비싸고 멀리 가지도 못한다”며 “소비자에게 전기차를 사도록 강요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투자매체 ‘바론’은 “트럼프 전 대통령뿐 아니라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 대부분이 전기차산업을 지지하지 않고 있다”며 “이들이 산업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게 진짜 문제”라고 바라봤다.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