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은행들이 지난해 4분기 판매했던 고금리 예금의 만기가 돌아오면서 채권시장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은행이 자금 조달을 위해 은행채 발행 규모를 늘리면 상대적으로 신용 등급이 낮은 회사채가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으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레고랜드 그림자' 고금리 예금 만기 임박, 은행채 더 풀릴까 채권시장 긴장

▲ 은행채 발행이 늘면서 채권시장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여의도 증권사들. 


은행들은 지난해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한 가운데 9월 강원도의 레고랜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로 채권시장이 얼어붙자 고금리 예금을 판매하며 자금을 조달했는데 이 상품의 만기가 돌아오고 있다.

20일 증권가 분석을 종합하면 올해 말까지 은행채 발행 규모는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의 정책 지원으로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나고 있고 지난해 4분기 판매했던 고금리 예금의 만기도 돌아오면서 은행들의 자금 수요도 당분간 증가할 것으로 증권가는 보고 있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낸 보고서에서 “대규모 정기예금 만기 도래와 대출 수요 증가로 은행권의 자금유치 경쟁이 재차 확대되고 있다”고 바라봤다. 

그러면서 “은행 입장에서 고객 선택을 받아야 하는 예금보다 시장성 자금 조달이 즉각적 자금 대응에 용이하다”며 “분기말과 추석 연휴가 겹치며 자금 유출이 많은 시기이기도 하고 차환 발행 물량을 고려했을 때 9월 은행채 발행 압력이 크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은행채는 최근 상환보다 발행이 많은 순발행 기조로 돌아서기도 했다. 올해 들어 은행채는 5월을 제외하고 순상환 기조를 이어왔는데 8월 순발행 기조로 돌아선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은행채는 8월에 3조7794억 원이 순발행됐다. 9월 들어서는 14일까지 3조1900억 원이 순발행된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채 발행 물량이 늘면서 금리도 상승했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18일 기준 은행채 5년물(AAA, 무보증, 평가사 5사 평균) 금리는 연 4.484%로 1달 전(4.345%)보다 0.139%포인트 높아졌다. 

은행채 발행 규모가 확대되는 시점이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 1주년과 겹치면서 채권시장에서는 지난해처럼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최근 한전채 발행을 3개월 만에 재개한 점은 이런 시선에 힘을 보태는 요인이다. 
 
한전채도 은행채처럼 신용 등급이 높은 우량 채권으로 채권시장에 대거 풀리게 되면 자금을 모두 빨아들이면서 채권시장 유동성이 낮아질 수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회사채 매력도를 높이려면 채권 금리를 높여야 하는데 이러면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 부담이 커진다. 

안소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에너지가격 상승 및 투자 부담은 (한국전력의) 실적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이다”며 “불확실성에 대비한 자금조달원 확보는 필수적으로 (한전채 발행이) 공사채 시장에 약세 압력을 높일 것”이라고 바라봤다.

다만 은행채 발행 규모가 늘어나도 지난해 하반기만큼 채권시장이 경색되지는 않을 것으로 점치는 시선도 나온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채권시장 상황을 ‘모두가 리스크로 인식하고 있으면 실제로 리스크가 아닐 수 있다’고 표현했다. 

그는 “지난해 하반기 채권시장은 레고랜드 사태를 겪으며 유동성 위축을 크게 경험했다”며 “정부와 한국은행 모두 이번 단기시장 이슈를 주목하고 있어 과거와 달리 물량 조정 등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