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현대자동차그룹이 내놓은 전기차 모델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며 판매에서 순항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주요시장에서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제치고 주도권을 갖게되는 2030년까지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기존에 내연기관차를 만들어온 현대차그룹이 품고 있는 한계점도 부각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전기차 순항에도 안심 못해, 정의선 퍼스트무버 가는 길 과제 여럿

▲ 현대차그룹이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순항하고 있지만 정의선 회장(사진)은 가까운 미래에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쉽지 않은 과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 현대차 >.


정의선 현대차그룹회장은 전기차 퍼스트무버로 도약하기까지 생산능력 확충, 배터리 공급망 등에서 풀어야 만만치 않은 과제를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7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북미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도 불구하고 최근 현지 전기차 판매에서 호조를 보이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는 5월 미국에서 전기차 8105대를 판매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해 판매량이 48.5%나 증가했다. 이는 월간 기준 역대 최대 판매실적이기도 하다. 전기차 보조금 지급대상에서 제외된 뒤에 거둔 실적이라 의미가 더 크다.

지난해 8월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 한해 최대 7500달러(약 980만 원)의 구매 보조금(세액공제)을 제공하는 IRA가 시행되면서 대부분 전기차를 국내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현대차그룹의 전기차는 모두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에 현대차와 기아는 5월부터 리스 및 구매고객에게 최대 7500달러의 자체 인센티브(판매장려금)을 지급하며 판매량을 끌어 올렸다. 하지만 이 역시 현대차그룹 브랜드 전기차 라인업이 갖춘 높은 상품성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올해 초부터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 본격 판매를 시작한 현대차 아이오닉6은 세계 3대 자동차 시상식 가운데 하나인 '2023 월드카 어워즈'에서 '세계 올해의 자동차'에 선정됐다. 현대차는 지난해 아이오닉5에 이어 아이오닉6로 세계 올해의 자동차 상을 2연패했다.

기아 EV6는 올 1월 '2023 북미 올해의 차(NACTOY)' 시상식에서 SUV(스포츠유틸리티) 부문 '북미 올해의 차'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2022 유럽 올해의 차(COTY)'를 수상해 지난해부터 현대차그룹 전기차는 세계 3대 자동차 시상식을 모두 휩쓸고 있다.

글로벌 에너지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올해 1분기(1~3월) 중국을 제외한 글로벌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 포함) 시장에서 테슬라와 폭스바겐 그룹에 이은 3위를 기록했다.

다만 전기차 투자가 본격화하면서 기존 내연기관차업체로서 현대차그룹이 가지는 한계점과 고유의 특성에 기반한 문제점도 관측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생산을 본격 확대하는데 있어 전용전기차 공장을 신설하는 방법보다 기존 공장을 활용한 혼류 생산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하는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와 올 하반기 착공하는 현대차 울산 전기차 전용공장, 4월 기아 오토랜드 화성에서 착공한 목적기반모빌리티(PBV) 전기차전용공장을 제외하곤 기존 내연기관차 공장에 전기차 라인을 적용하는 방식을 추진한다.

현재 현대차는 기존 울산공장과 아산공장을 비롯해 미국, 체코, 인도의 기존 내연기관차 공장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다. 

기아는 오토랜드 화성 내연기관차 생산라인을 바꿔 EV6를 생산하고 있다. 기아 오토랜드 광명은 상반기 안에 전기차 생산라인을 적용하며 미국 기아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 공장 생산라인도 전기차 전환 작업을 진행중이다.

이런 혼류생산 방식은 투자비용이 적고 짧은 시간 안에 가동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기차 전용공장과 비교해서는 생산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혼류생산 확대를 통한 생산량 증대는 장기 경쟁력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현대차그룹뿐 아니라 내연기관차를 만들어 온 기존 완성차업체들은 공통적으로 전기차 전환기에 혼류생산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제조공정이 바뀌면 부품 공급사 및 인력 배치도 변화해야하는 만큼 레거시 완성차업체들은 테슬라 등 전기차만 생산하는 업체와 비교해 높은 전환 비용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현대차는 20일 CEO 인베스터데이를 열고 기존 완성차업체로서 전기차 전환기에 갖춘 강점을 강조했다.

장재훈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울산공장 아이오닉5와 아산공장 아이오닉6 생산라인을 보면 기존 라인에 병행생산을 가능케 하는 데 약 1달의 시간과 500~1천억 원 수준의 자금이 소요됐는데 이는 레거시 완성차업체가 갖는 분명한 강점"이라며 "병행생산을 하게되면 (시장상황에 맞춰)유연하게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생산량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다른 글로벌완성차업체들과 달리 전기차 등 신규투자에 있어 노조와 협상을 별도로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현대차 단체협약 조약은 신차종을 양산할 때 생산량과 투입인력을 노조와 사전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해외 공장 시설 투자시에도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때는 고용안정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기아 단체협약 조항도 현대차와 동일한 상황에서 '노사 의견을 일치시켜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실제 기아 노사는 경기도 화성에서 목적기반차량(PBV)을 생산할 전기차 전용공장을 착공하는데 1년 가까이 갈등을 빚었다.

기아는 애초 2025년 7월 양산을 목표로 연 10만 대 규모로 준공한 뒤 최대 15만 대까지 생산능력을 늘릴 계획을 세웠으나 기아 노조는 고용 안정을 위해 20만 대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으며 착공이 늦어졌다. 

기아는 올해 1월 고용안정소위원회에서 노조 측이 주장한 20만 대 안에 합의하고서야 4월 착공에 들어갔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8월 미국 IRA 시행 직후 미국 현지 전기차 생산확대를 놓고도 노사 사이 진통을 겪기도 했다.

정의선 회장이 전기차 전환기 관련 투자를 적재적소에 신속히 단행하기 위해서는 노조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을 놓고 배터리 가치사슬(밸류체인)에 대한 투자가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대차그룹 전기차 순항에도 안심 못해, 정의선 퍼스트무버 가는 길 과제 여럿

장재훈 현대차 CEO 사장이 20일 '2023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현대차>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상품성에 대한 호평을 받고 있으나 핵심 밸류체인 배터리 조달에서는 경쟁사보다 느린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짚었다.

현대차그룹은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배터리업체와 지분 각 50%를 보유한 합작회사(JV) 설립을 통한 외부조달에 배터리 공급을 의존하고 있다.

반면 전기차만 생산하는 테슬라는 4680 원통형 배터리의 양산 적용을 앞두고 있고 애초 배터리 제조업체였던 중국 BYD는 이미 배터리를 자체 생산 하고 있다.

기존 완성차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과 포드도 합작회사뿐 아니라 리튬, 니켈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의 직접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하며 가치사슬 수직계열화에 나서고 있다. 

또 포드는 중국 배터리업체 CATL과 기술 제휴 방식으로 100% 배터리 자회사 설립을 추진하고 있고 폭스바겐은 배터리 자회사 파워코를 세워 배터리 자체 개발에 나섰다.
 
정 회장은 2021년 "배터리 업체와 협력해 셀을 연구할 수는 있지만 생산은 배터리업체에서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배터리 자체 생산에 선을 그은 바 있다. 국내에 글로벌 배터리 3사가 포진하고 있는 점을 고려한 판단으로 풀이된다.

최근 현대차는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올해 나올 하이브리드 신차에 자체 설계한 배터리를 탑재하고 LG에너지솔루션과의 인도네시아 배터리 합작회사에 공급할 리튬 공급 계약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기존 정 회장의 발언을 넘어서는 배터리 자체 개발과 관련한 구체적 계획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완성차업체들의 적극적 배터리 자체생산과 가치사슬 구축 시도가 배터리업체와의 협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재일 연구원은 현대차 CEO 인베스터데이를 놓고 "현재 직면한 난관을 타개할 획기적인 해결책은 없었으며 레거시 완성차업체의 딜레마가 부각됐다"고 총평했다.

정 회장은 전기차 시대에 '퍼스트무버'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선제적 투자로 기존 완성차업체 가운데 앞선 전기차 경쟁력을 키워왔다.

글로벌 경쟁업체들이 전기차 생산능력 확대와 배터리 경쟁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현대차그룹을 둘러싼 난제를 뚫어야 할 정 회장의 행보에 자동차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허원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