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ETF시장 100조 원시대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ETF는 2002년 국내에 처음 출시됐으나 코로나 팬데믹 이후 빠르게 성장하며 최근 들어 국내 개인투자자의 투자 습관을 바꿔놓았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ETF시장 100조 원 시대를 맞아 비즈니스포스트가 국내 ETF시장 전반의 현황을 짚어보고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담아본다. <편집자 주>

- 글 싣는 순서
[ETF 100조①] 50조까지 18년 100조까지 3년, ETF시장 본격 성장궤도 
[ETF 100조②] 글로벌 존재감 미미, 규제 개선이 300조 시대 앞당길 수 있다
[ETF 100조③] E린이 입니다, ETF 투자 어떻게 하고 뭘 주의해야 하나요


[비즈니스포스트] ‘0.8%.’ 글로벌 ETF(상장지수펀드)시장에서 자산 기준으로 한국 ETF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국내 ETF시장이 100조 원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지만 세계시장에서 존재감은 이처럼 미미하다.
 
[ETF 100조②] 글로벌 존재감 미미, 규제 개선이 300조 시대 앞당길 수 있다

▲ 자산운용업계에서는 규제 완화가 국내 ETF시장의 300조 원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고 바라본다.


국내 ETF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절대적 시장 규모를 키울 필요가 있는 셈인데 자산운용업계에선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가 국내 ETF시장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바라본다.

20일 글로벌 ETF평가기관 ETFGI에 따르면 5월 말 전 세계 ETF 자산 규모는 9조7천억 달러에 이른다. 같은 시기 한국 ETF시장의 자산 규모는 750억 달러 수준으로 전체 시장 규모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 6조8천억 달러, 일본 4840억 달러와 비교해 봐도 한국시장 규모는 미국의 1.1%, 일본의 16.1%에 그친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미국과 일본,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은 각각 27조7천억 달러와 6조5천억 달러, 2조2천억 달러에 이른다.

국내 증시 시총이 미국의 8%, 일본의 34%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ETF시장이 아직 가야할 길이 먼 셈이다.

규제 개선이 향후 ETF시장 확대를 가속화할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ETF시장은 현재 국내 자산운용사의 경쟁이 가장 치열히 펼쳐지는 곳인 만큼 규제 완화는 곧바로 시장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규제 완화가 시장 확대로 이어진 사례로는 만기형 채권 ETF를 들 수 있다.

지난해 11월 만기가 있는 채권형 ETF 출시가 허용된 뒤 이날까지 모두 16개 상품이 출시됐다. 같은 기간 출시된 전체 ETF 93개의 17%를 차지한다.

자산운용업계에서는 특히 퇴직연금시장 관련 규제 완화가 ETF시장 확대에 속도를 붙일 것으로 바라본다.

퇴직연금시장은 국내 ETF시장 300조 원 시대를 열 동력으로 꼽히는데 파생상품 규제 완화, 디폴트옵션 ETF 상품 포함 등이 이뤄질 경우 연금투자자의 선택지를 넓히는 동시에 ETF시장 유입을 더욱 빠르게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퇴직연금에서는 투자의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장치로 인버스와 금선물, 달러선물 같은 파생상품 위험평가액 비중이 40%를 넘는 ETF는 퇴직연금으로 투자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인버스와 금, 달러 같은 상품은 파생상품이 아니고서는 투자하기 쉽지 않은 상품으로 이를 퇴직연금에서 막는 건 금융소비자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것이다”며 “일례로 지난해 증시가 급격히 하락할 때 인버스 상품이 있었다면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손실 위험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선입견 때문에 그렇지 파생이 곧 리스크는 아니다”며 “파생상품 가운데 인버스와 금, 달러 같은 상품은 현물 투자가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파생상품으로 나온 만큼 퇴직연금에서 충분히 담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TF를 통한 퇴직연금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동적립식 기능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ETF에도 소수점거래가 허용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자동적립식 투자를 위해서는 투자금을 끝단까지 맞출 수 있는 소수점거래가 중요하다”며 “현재 일부 판매사들만 ETF의 자동적립식 투자를 서비스하고 있는데 소수점거래가 허용된다면 더 많은 판매사가 자동적립 기능을 갖출 것으로 본다”고 바라봤다.

액티브ETF 활성화를 위한 상관계수 완화도 자산운용사들이 국내 ETF시장 확대를 위해 줄기차게 요구하는 사안으로 꼽힌다.

현재 국내 ETF시장은 액티브ETF라 할지라도 추종지수와 상관계수를 0.7 이상으로 유지하도록 하고 있는데 액티브 상품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이를 0.5 이하로 낮추자는 것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시장이 크려면 중소형 자산운용사들도 많아져야 하는데 그들은 LP(유동성공급자) 확보가 쉽지 않아 경쟁력 있는 테마형 상품을 만들기 쉽지 않다”며 “그들이 결국 승부를 볼 곳은 액티브ETF시장인데 규제 완화를 통해 운용여력을 넓혀준다면 스타 액티브ETF가 나올 수 있고 이런 상품이 한두 개만 나와도 ETF시장은 더욱 빠르게 클 것이다”고 바라봤다.

국내 ETF시장은 기본적으로 추종지수를 강력히 따르는 패시브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산운용역의 역량이 중시되는 액티브ETF가 허용된 것도 채권형은 2017년, 주식형은 2020년으로 2002년 첫 출시된 패시브 상품과 비교해 역사가 길지 않다.
 
[ETF 100조②] 글로벌 존재감 미미, 규제 개선이 300조 시대 앞당길 수 있다

▲ 규제 완화는 자산운용사의 신상품 출시를 통해 시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사진은 삼성자산운용의 '23-12은행채액티브ETF' 상품의 순자산이 1조5천억 원이 넘어섰다는 것을 알리는 홍보 자료. <삼성자산운용>


국내 ETF시장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지속해서 나온다.

국민연금은 현재 해외 ETF에는 직접 투자하지만 국내 ETF에는 규정상 직접 투자를 하지 않고 있다.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의 ETF 직접 투자가 활성화한다면 시장 성장 측면에서 코로나19 이후 개인투자자들의 시장 참여 이상의 큰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내다봤다.

금융투자협회 쪽에서는 현재 공모펀드를 묶어 ETF로 출시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공모펀드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이지만 현실화한다면 자연스레 ETF시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중장기적 과제로는 금융소비자의 선택지를 넓히기 위해 미국처럼 레버리지 3배 등 좀 더 공격적 투자를 향한 규제 완화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결국 이 같은 규제 완화는 금융소비자의 선택지 확대는 물론 국내 ETF시장 성장을 위한 것인데 이는 자산운용사의 수익성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자산운용사들은 현재 낮은 수익성에도 ETF사업에 힘을 주고 있는데 시장의 파이가 전반적으로 커지면 규모의 경제에 따라 그만큼 개별 상품의 수익성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한 중형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자산운용사들은 현재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수수료 인하 등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며 미래 투자개념으로 ETF사업에 힘을 주고 있다”며 “궁극적으로 시장 성장과정에서 소수의 회사가 전체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양강구도가 깨지는 것도 시장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