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23-04-20 15:4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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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방송에서 욕설이나 막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이 지켜야 한다고 암암리에 합의한 불문율이 아니다. 법적으로도 하면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 홈쇼핑업계가 최근 부적절한 언행의 방송으로 논란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설 방송 논란은 종종 일어난다.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다 흥분한 캐스터의 입에서, PD가 미처 걸러내지 못한 채 송출하는 녹화방송에서,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논쟁하다 감정이 격화한 패널들 사이에서 우리는 가끔씩 부적절한 발언을 접한다.
녹화 프로그램에서조차 ‘비방용 언어’가 제대로 걸러지지 않을 때가 많은데 하물며 생방송은 어떠하랴.
방송 언어를 준수하고 품위를 지켜야 한다고 아무리 강조한다 한들 출연자들이 부적절한 언어를 내뱉으면 그것으로 상황은 끝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주워 담을 수 없다.
방송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각자 사과문을 내걸고 관계자를 징계하는 등 사태 수습에 총력을 기울이는 일뿐이다. 그렇게 해서 시청자들의 비난이 수그러들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 수위가 조금이나마 낮아지면 다행이다.
홈쇼핑업계의 최근 처지도 이와 비슷하다.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유명 쇼호스트들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이 된 생방송을 내보냈던 홈쇼핑기업을 상대로 법정 제재 수위를 고민하고 있다. 현대홈쇼핑과 CJ온스타일이 각각 유명 쇼호스트 정윤정씨, 유난희씨 출연 방송에서 부적절한 언어 사용을 제지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각 기업은 논란 재발을 막기 위한 대안도 마련하고 있다. 홈쇼핑 방송에 등장만 하면 물품을 모두 판매한다는 ‘완판녀’로 유명한 쇼호스트들이지만 가차 없이 ‘무기한 출연 정지’를 결정했고 앞으로 방송 윤리와 심의를 준수하도록 내부 교육을 강화하기로도 했다.
여론만 보면 ‘쇼호스트들의 막말 논란 사태’는 이제 진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홈쇼핑업계가 잘못했다며 바짝 엎드리면서 이들에게 쏟아지던 비난도 어느덧 그쳤다.
사실 이번 논란을 겪으면서 홈쇼핑업계는 한편으로 억울한 마음도 있을 것이다. '사전에 왜 충분히 교육하지 못했냐', '막을 수 있었던 기회가 있지 않았느냐'는 말은 어차피 결과론적 비난일 뿐이다.
시야를 넓혀 보면 이미 홈쇼핑업계의 강력한 경쟁자가 된 각종 라이브방송에서는 부적절한 언행이 차고 넘친다.
판매 채널이 다각화하면서 상품 판매자들은 더 이상 홈쇼핑만을 라이브방송 판매 채널로 보지 않고 있다. 대신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와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강력한 팬덤을 보유한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라이브방송을 진행하며 새 판로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플루언서들은 이런 방송에서 시청자를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 이상 확보한다. 라이브방송을 켠 지 몇십분 만에 상품 수억 원어치를 판매할 정도로 이들의 영향력은 어마하다.
하지만 몇몇 인플루언서들의 라이브방송을 살펴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발언들도 많다. 심각한 수준이 아니긴 하지만 욕설을 섞어가면서 방송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뜻인데 그 중에는 정윤정씨, 유난희씨의 발언을 애교 수준으로 여길 여지도 많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비난이 쏟아지지 않는다. 이유는 SNS의 특성 때문이다.
인플루언서들이 진행하는 라이브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해당 인플루언서의 계정을 팔로우하면서 ‘내적 친밀감’을 형성한다. 내적 친밀감이 높은 만큼 이들이 홍보하는 상품에 대한 신뢰도 높을 뿐더러 그들이 어떤 발언을 하던 상식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아니라면 ‘SNS인데 뭐 어때’라며 용인하는 경우가 많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SNS에서 진행되는 라이브방송까지 직접 제재하지 않는다는 점도 인플루언서들이 보다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배경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정윤정씨의 욕설 발언으로 제재를 받을 위기에 놓인 현대홈쇼핑은 홈쇼핑방송사라는 이유만으로 곤란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볼 수도 있다. 경쟁 방송들은 욕설 방송을 해도 비난을 안 받는데 왜 홈쇼핑업계에만 비난이 쏟아지느냐는 항변도 할 만 하다.
물론 이런 사정들을 살핀다 해도 홈쇼핑기업이 면죄부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방송사업자로서 부적절한 언어 사용을 못하도록 방지해야 할 책임이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논란을 통해 홈쇼핑업계의 고민도 한 번은 상기해보게 된다.
사실 홈쇼핑업계가 어렵게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TV를 보는 시청자 수가 점점 줄어들다보니 새 고객을 유치하지 못하고 중장년층만 보는 채널이 되어가고 있다. 이커머스가 유통 채널을 잠식하면서 홈쇼핑업계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이 와중에 매출의 일정 부분을 송출수수료라는 이름으로 내야 하니 실적 반등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모바일 라이브방송 등으로 활로를 찾으려고 하지만 인플루언서들과 비교하면 표현의 자유에 한계도 있다. 다른 라이브방송과 비교할 때 홈쇼핑방송을 봐야만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다는 젊은 고객들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인플루언서들이 진행하는 라이브방송은 이제 홈쇼핑업계가 수십 년을 쌓아온 노하우를 뛰어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홈쇼핑업계는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
근본적으로 TV홈쇼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싸워야 하는 주인공 입장에서 소비자들을 모을 만한 경쟁력이 잘 안 보인다. 백 번 양보해 SNS 라이브방송과 같은 형태로 표현의 자유를 용인해준다 한들 이미 소비 채널을 옮긴 고객들의 발걸음을 되돌릴 수 있다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홈쇼핑업계가 내세울 만한 무기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을 둘러싼 상황이 참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돌파구가 영 없지는 않을 것이다.
TV홈쇼핑이라는 특성상 규제가 존재하는 탓에 손발이 묶여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홈쇼핑업계는 진입장벽이 높은 방송이라는 플랫폼을 손에 쥐고 있다. 족쇄 탓을 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플랫폼을 재미있게 만들어 소비자들이 찾게 만들지 고민하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과제다. 어렵긴 하지만 과제를 풀지 않으면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업의 본질을 되돌이켜보는 것도 해답이 될 수 있다. 홈쇼핑방송의 본질이 방송인지, 쇼핑인지를 놓고 심사숙고해봐야 한다는 뜻이다.
홈쇼핑사업의 본질을 방송에 둔다면 손밖을 묶고 있는 끈이 많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쇼핑에 둔다면 모든 유통사들이 고민하는 가격 경쟁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 쉬운 해답일 수도 있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