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의 탄소장벽이 더욱 높아진다. 새로운 탄소장벽은 한국의 배터리 산업부터 전기차 등 연관산업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기업들에는 녹록치 않은 위기인 만큼 기술을 통한 돌파구 찾기가 시급해 보인다.
 
CRMA로 더 공고해지는 유럽 탄소장벽, 한국 배터리산업 커지는 긴장감

▲ 5일 외신 등 보도를 종합하면 유럽연합은 16일(현지시각) 핵심원자재법과 탄소중립산업법 초안을 공개한다. 핵심원자재법은 특히 한국의 배터리 산업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벨기에 브뤼셀 유럽연합 본부


15일 외신 등 보도를 종합하면 유럽연합은 16일(현지시각) 핵심원자재법(CRMA, Critical Raw Material Act) 초안을 공개한다.

핵심원자재법 초안 발표는 당초 현지시각으로 14일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이틀이 미뤄졌다.

이번 유럽연합 발표에서는 탄소중립산업법(NZIA, Net Zero Industry Act) 초안도 함께 공개된다.

핵심원자재법의 초안에는 가칭 ‘유럽 핵심원자재위원회’를 신설한다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위원회 활동은 2030년까지 핵심원자재의 10% 이상, 전략수요 물자는 최소 40% 이상을 유럽연합 역내에서 처리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다.

특정 국가로부터 공급받는 원자재의 비중이 70%를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다양한 조치가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탄소중립산업법은 유럽연합 내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과 같은 ‘클린테크’ 역량을 높이려는 의도로 마련된 법안이다.

기존의 유럽연합 반도체법과 유사하게 태양광 등 신재생 및 수소 에너지, 배터리, 탄소포집기술 등에 세액 공제, 보조금 지급, 투자 촉진 등 재정적 지원은 물론 행정절차 간소화 등이 주요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은 올해 1월 세계경제포럼 연설에서 탄소중립산업법 관련해 “유럽도 미국과 중국처럼 청정기술에 투자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핵심원자재법과 탄소중립산업법은 이미 유럽연합에서 본격적으로 입법 절차를 밟고 있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함께 세계 통상환경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탄소장벽으로 꼽힌다.

특히 핵심원자재법은 세계 산업용 희토류의 85%를 공급하는 중국을 비롯해 러시아 등 국가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한국의 통상 환경에도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점이다. 국내 주요 산업 가운데 배터리 산업은 가장 타격이 클 산업으로 꼽힌다.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의 배터리 3사는 중국에서 탄산망간을 100%, 수산화리튬을 84% 공급받는 등 중국산 희토류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아직 핵심원자재법의 구체적 내용이 나오지 않아 국내 업계에 미칠 영향을 예단하기는 어렵다"면서도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유럽에도 공장이 있어 제조 부분에서는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으나 원재료 수급 문제는 단기간에 대응책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통신 기술 등의 발전으로 무선 기기가 늘고 있는 데다 세계적으로 내연기관을 배제하는 흐름이 이어지는 등 배터리 산업의 영향력은 거의 모든 산업에 걸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전기차는 배터리를 많이 사용하는 산업인 만큼 한국의 완성차 업계에서는 이미 유럽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배터리 관련 무역 장벽이 그대로 친환경차 수출에도 장벽이 될 수밖에 없는 데다가 유럽은 국내 완성차기업에는 중요한 수출지역이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으로 현대차그룹이 수출한 하이브리드차, 전기차, 수소전기차 등 친환경차 수출량을 보면 유럽연합 지역에서 29만 대로 미국으로의 수출량 18만 대를 크게 웃돈다.

미국과 유럽이 통상협력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한국에는 부담이다.

탄소국경조정제도, 핵심원자재법, 탄소중립산업법 등은 유럽연합이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안(IRA)에 대응하기 위해 내놓은 조치지만 막상 미국과 유럽연합 사이에서는 ‘핵심광물 클럽’ 창설이 논의되고 있다. 자칫하면 통상환경의 변화에 한국만 ‘낙동강 오리알’ 처지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국내 배터리 3사와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들은 3월 초 핵심원자재법 대응을 위해 직접 유럽연합을 방문하는 등 적극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지하자원을 보유하지 못한 한국으로서는 기술로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미 국내 주요 기업들은 특정 국가에 편중이 심한 원자재의 비중을 줄이기 위해 ‘코발트 프리’와 같은 기술을 개발하고 폐배터리를 재활용하는 등 대응 기술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폐배터리 재활용을 놓고는 유럽연합도 핵심원자재법에 의무화 내용을 담는 등 기술확보에 공을 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윤 대신증권 연구원은 “유럽연합 입장에서도 배터리에 사용되는 원자재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안정적 확보 및 공급원 다변화의 필요가 있다”며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의 가치는 2025년 300억 달러에서 2030년에 338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호 기자